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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논리 우선해온 당정, 우한폐렴에 발목 잡히나


입력 2020.01.30 05:37 수정 2020.01.30 05:37        정도원 기자

천안서 아산·진천으로…석연찮은 수용지 변경

주민들 극렬 항쟁…복지부차관 봉변 당하기도

'무신불립', 당정 평소 행태가 스스로 발목잡아

김강립 보건복지부 차관이 29일 저녁 중국 우한 교민의 국내 격리수용 장소로 결정된 충북 진천군 덕산면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을 찾았다가 격앙된 진천군민의 거센 항의 속에 인파에 파묻혀 괴로워하고 있다. ⓒ뉴시스

집권여당 더불어민주당과 문재인정부가 우한 폐렴(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대처 방안을 두고 국민들의 강한 반발 앞에서 당황하며 우왕좌왕하고 있다. 그간 모든 사안에 정치논리만을 우선해온 모습에 국민의 신뢰를 잃은 게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29일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로부터 전세기편으로 귀국할 우리 교민들을 격리 수용할 지역으로 충남 아산과 충북 진천을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당초 충남 천안의 두 곳으로 결정했다가 변경된 것이다.


이에 충남 아산·충북 진천 지역 주민들과 정치권은 집단 반발하고 있다. 아산에서는 이장단과 주민자치위원회, 새마을지도자들이 나서서 트랙터와 경운기를 동원해 격리 수용지 진입로를 막고 항쟁에 돌입했다. 이장단 관계자는 "처음에 천안으로 정했다가 그쪽에서 반발하니 아산으로 바꾼 것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아산시의원들은 "갑작스럽게 아산으로 변경한 것은 합리적 판단이 아니라 힘의 논리"라며 "시민과 함께 반대 운동을 강력히 펼치겠다"고 가세했다. 충남 아산갑의 이명수 자유한국당 의원도 "격리 수용지는 인근에 아파트단지를 비롯해 수많은 시민들의 거주지가 있어 적합하지 않다"며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진천에서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진천 주민 200여 명도 트랙터를 동원해 격리 수용지 정문을 봉쇄하며 반발하고 있다.


송기섭 진천군수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격리 수용시설의 결정은 인구밀도와 격리의 용이성, 의료기관 연계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는데, 이번 결정은 이런 원칙이 결여된 불합리한 의사결정"이라며 "천안에서 반발하니까 진천으로 변경하면 선뜻 수용할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진천군의원들도 "정부의 일방적인 결정은 충북도민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거들었다. 충북 진천·증평·음성의 경대수 한국당 의원은 "정부가 현지 실정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격리 시설을 결정했다"며 "주민들이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격리 시설을 변경하라"고 촉구했다.


이같은 집단 반발은 그간의 집권여당과 현 정권의 행태가 얼마나 국민의 신뢰를 잃어왔는지 여실히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국민들이 격리 수용지가 애초 천안에서 아산과 진천으로 변경된 것을,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 진정으로 더 나은 수용지를 찾았다기보다는 그간 해왔듯이 으레 정치논리로 결정됐거니 라고 생각하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충남 아산 주민들이 29일 오후 정부가 중국 우한에서 국내로 이송하는 교민과 유학생을 2주간 임시 수용할 것으로 검토중인 경찰인재개발원 출입로를 트랙터 등을 동원해 차량 출입을 막고 있다. ⓒ뉴시스

지역 정가에서는 충남 천안은 갑·을·병 3개 국회의원 선거구가 걸려 있는데다 3석이 모두 더불어민주당 현역 의원인 반면, 격리 수용지로 변경된 충남 아산시 초사동은 아산갑 지역구로 한국당 의원이 있는 지역구이며, 충북 진천도 지역구 의원이 한국당 의원인데다 인구가 적어 3개 군이 한 지역구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 변경 배경이 됐을 것이라는 설이 공공연히 흘러다니고 있다.


우리 교민들을 격리 수용하는 지역 결정에 있어서도 집권여당이나 정부가 최적지를 선택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4·15 총선을 앞두고 조금이라도 정치적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결정을 했을 것이라고 국민이 의심하는 게 당연한 단계에까지 접어들었다는 뜻이다. 결국 그간 각종 현안 해결 과정에서 정치논리만 우선해왔던 당정의 행태가 민생 현안에서 스스로의 발목을 잡게 된 셈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그간 현 정권과 민주당이 보여준 모습이 허울좋은 명분을 내세우면서 실상은 어떻게든 자기편만 챙기고 조금이라도 정치적으로 이득이 되는 점을 찾아헤맸던 것이 사실"이라며 "정치개혁은 단 몇 석이라도 자기들 편인 군소정당에 퍼주는 방향으로, 검찰개혁도 청와대 의혹에 대한 수사를 저지하는 것으로 악용되고 말았다"고 진단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다보니 이번 격리 수용지 결정과 변경 과정에서도 무슨 정치적인 손익이나 다른 고려가 개입된 것이 아니냐고 국민이 의심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며 "'무신불립'이라는 말대로, 국민의 신뢰가 무너지고나니 어떤 일을 해도 국민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로 수용지 결정을 변경하는 과정에서 정치적 고려가 있었다는 말도 나온다.


정부가 처음에 충남 천안의 두 곳을 격리 수용지로 고려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여권 일각에서 반대 목소리가 강하게 나왔다는 것이다. 충남 출신 여권 유력 인사가 "두 개 시설을 충남에 두는 것은 (정치적으로) 부담이 된다"는 뜻을 정부에 전했고, 이를 정세균 국무총리가 받아들여 결국 관계부처회의에서 충북과 충남의 각 1개 소로 분산이 됐다는 설명이다.


이날 행정안전부 국장급 관계자가 주민들이 농성하는 현장을 찾아 대화를 시도했지만, 거센 반발만 샀을 뿐 전혀 설득 시도가 먹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강립 보건복지부 차관은 격리 수용지를 발표하며 "국민들의 정부의 조치에 대한 신뢰를 부탁드린다"고 거듭 강조했는데, 이는 바꿔말하면 현 정부의 조치를 국민들이 전혀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실토한 셈이라는 분석이다.


지역 정가의 한 관계자는 "설령 격리 수용지 변경과 관련한 소문이 만들어졌더라도, 평소 정부·여당이 진실되게 정치논리보다는 민생을 우선하는 모습을 보여왔더라면 소문이 생명력을 잃지 않고 주민들 사이에 널리 퍼질 수 있었겠느냐"라며 "당정이 겪고 있는 곤란은 그동안 정치논리에만 몰입해왔던 행태가 자기 발목을 잡은 것"이라고 꼬집었다.

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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