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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왜 YS인가-상] 김무성·정병국 "우파 뿌리, 3당 합당 이후부터 시작하자"

  • [데일리안] 입력 2020.05.27 12:00
  • 수정 2020.05.27 14:14
  • 송오미 기자 (sfironman1@dailian.co.kr)

'YS 정치적 아들' 6선 김무성·5선 정병국 '대담'

金 "3당 합당 후 새로운 이념 노선 설정 실패"

鄭 "통합당 뿌리, 3당 합당 이후부터 찾아야"

金·鄭 "쿠데타 세력과 손잡아 민주화 업적 가려져"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의 정치적 아들인 미래통합당 김무성 의원(6선)과 정병국 의원(5선)이 22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의 정치적 아들인 미래통합당 김무성 의원(6선)과 정병국 의원(5선)이 22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YS 정신'을 되짚어보며 한국 우파 진영이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해 대담을 진행하고 있다.ⓒ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최근 들어 미래통합당에서 부쩍 자주 회자되는 인물이 있다.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YS)이다.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5선·대구 수성구갑)는 지난 16일 입장문을 통해 "5·18 민주묘역을 조성한 것도, 5·18 특별법을 제정해 5·18을 민주화운동으로 명명한 것도, 모두 고(故)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에서 시작됐다"며 "통합당은 YS 정신을 이어받은 유일한 정당"이라고 말했다. 장제원 의원(3선·부산 사상구)도 지난 19일 방송 인터뷰를 통해 "통합당은 YS의 민주화 정신을 이어받은 정당"이라며 "부마항쟁을 시작으로 5·18 민주화운동, 6.10항쟁, 6.29 선언까지 그 대장정의 중심에 저희 당이 있었다"고 말했다.


1990년 1월 22일 당시 노태우 대통령(민주정의당)과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 김종필 신민주공화당 총재는 3당 합당을 전격 선언했다. 국회 개헌선을 확보한 거대 여당 민주자유당(민자당)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야당과 재야 민주세력은 군사독재 세력에 맞서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던 YS의 이 같은 결정에 대해 "군사정권 세력과의 야합"이라는 비난을 쏟아냈다. 그러자 YS는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 굴에 들어간다"는 말로 복잡한 심경을 대신했다.


YS는 3당 합당으로 "군사독재 세력과 손을 잡았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1993년 대통령 취임 후 하나회 척결, 금융실명제 실시, 지방자치단체장 직선제 도입, 5·18 특별법 제정 등을 통해 군사독재 세력과 그 잔재를 청산하려고 했던 민주주의자였음은 틀림없다. 또, 공화주의의 기틀을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YS의 정신을 이어 받은 통합당은 잇따라 전국 선거에서 패배하며 민주화 세력과는 거리가 먼, 오히려 5·18 민주화운동을 폄훼하는 집단으로 국민들 뇌리에 박혀있다.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데일리안>은 YS의 '정치적 아들'을 자임하는 김무성(6선)·정병국(5선) 통합당 의원을 지난 2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나 YS 정신을 되짚어보며 3당 합당에 대한 평가, 보수당 계열 인사들이 민주화 투쟁 세력으로 부각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 통합당이 정체성을 상실한 채 표류하고 있는 이유, 4·15 총선 참패 원인, 개헌 방향, 향후 정치적 행보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날 현장에는 YS의 손자 김인규 씨도 방문해 두 거물급 정치인의 대담을 경청했다.


-두 분의 첫 인연이 궁금하다.


김무성 의원(이하 김)="1987년 13대 대선 당시 YS 재정을 관리하는 통일민주당 선거대책본부 재정국장을 하고 있었다. 그때 정병국이가 민주화 투쟁하다가 감옥을 갔다 온 뒤에 통일민주당 자원봉사자로 들어왔다. 일 하는 모습을 봤는데 탐이 나더라고. 그래서 대선 끝나고 (당시 공보비서였던) 박종웅이한테 '정병국이 데리고 와라'고 했지. 그래 가지고 상도동 비서로 입문하게 된 거지."


정병국 의원(이하 정)="그 당시 서울대 대학신문 편집국장을 지낸 홍승권이라는 친구가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뒤쪽에 사무실을 얻어서 YS 대선 관련 홍보물 담당 일을 하고 있었다. 나한테 자기 일 좀 도와달라고 해서 사무실에 가서 상황을 살펴봤더니, 엉망이었다. 업자들이 가격을 두 세배로 뻥튀기 하고, 물량도 안 맞고. 그래서 내가 업자들이랑 네고(협상)하고, 창고와 사람을 얻어 달라고 해서 관리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형님이 잘 본 것 같다. 대선이 끝난 뒤에 나를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박종웅 비서가 만나자고 해서 만났더니, 같이 일을 하자고 하더라. 처음에는 거절했다가, '개인적인 일'이 있어서 상도동으로 들어가게 됐다. 비서 생활을 한참 하다가 나중에서야 형님이 나를 추천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김 의원이 정 의원을 천거했는데, 정 의원의 첫 인상은 어땠나.


김="어깨에 각이 진 바바리코트를 입고 있던 그 모습이 아직도 잊혀 지지 않는다. 일단 잘생겼잖아. 하하하. 자세도 아주 반듯했다."


1978년 성균관대 사회학과에 입학해 학생운동에 몸을 던진 정 의원은 졸업 후 '세인출판사'를 운영하며 서울 지역 대학교 총학생회에서 필요로 하는 거의 모든 인쇄물을 공급했다. 1987년 6월 안기부(국가안전기획부)에 의해 검거돼 1년 6개월 실형을 선고받고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정 의원은 6·29 선언 덕분에 집행유예로 풀려날 수 있었는데, 그 당시 민추협(민주화추진협의회) 소속의 조승형 변호사의 도움을 받았다. 이후 홍승권과 함께 YS 홍보물 관련 일을 하다가, 대선이 끝난 후 박종웅 비서로부터 같이 일하자는 제안을 받는다. 처음에는 거절했다. 그러나 결혼을 약속한 후배의 부모님이 직업이 없었던 정 의원과의 결혼을 반대하자, 정 의원은 제도권 정치에 들어가야겠다고 결심한다. 후배와의 결혼은 성사되지 못했지만 정 의원이 여기서 언급한 '개인적인 일'은 '사랑'이었던 셈이다.


동해제강 상무와 삼동산업 대표를 역임하며 사업가로 이름을 날리던 김 의원은 YS가 1984년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를 결성하자 창립 멤버로 참여하면서 본격적인 정치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YS의 단식을 계기로 84년 5월 YS의 상도동계와 DJ(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교동계가 주축이 돼 결성된 민추협은 87년 6월 항쟁을 승리로 이끄는데 주요한 역할을 했다. 1987년엔 통일민주당 창당발기인으로 정당 활동에 발을 담갔다.


김 의원은 22일 정 의원과의 대담에서 "3당 합당을 했으면, 거기에 맞는 새로운 이념 체계와 노선을 만들었어야 했는데, 우리는 그걸 실패했다. 그래서 통합당이 여전히 제대로 된 방향 설정을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데일리안 박항구 기자김 의원은 22일 정 의원과의 대담에서 "3당 합당을 했으면, 거기에 맞는 새로운 이념 체계와 노선을 만들었어야 했는데, 우리는 그걸 실패했다. 그래서 통합당이 여전히 제대로 된 방향 설정을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두 분은 적극적으로 민주화 투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권의 운동권 세력만 민주화 운동을 한 것처럼 비쳐지기도 한다.


김="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고생한 거는 지금 다 말 못한다. 쿠데타 세력과 민주화 세력이 같이 손을 잡고 3당 합당을 했는데, 그때 야합이라고 비판이 많았다."


정="3당 합당 할 때 YS가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 굴에 들어간다'고 하면서 투쟁의 대상이었던 군사 세력과 손을 잡게 됐는데, 이런 부분이 보수당 인사들이 민주화 운동 세력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태생적인 한계로 작용하는 것 같다. 3당 합당 과정에서 민주화 운동을 함께 했던 상도동계와 동교동계는 여야 간 경쟁 관계로 바뀌게 됐다. 이때 DJ(김대중 전 대통령)는 상대적으로 재야 시민세력과 손을 잡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진보를 내세우고, 우리는 보수를 표방하게 되면서, 더욱 더 그런 인식이 고착화된 것 같다.


그런데 실질적으로 YS는 3당 합당을 통해서 호랑이를 잡았다. 대통령이 되신 후 전광석화처럼 하나회 척결, 금융실명제 실시, 지방자치단체장 직선제 도입 등을 통해 민주주의의 기반을 닦고 공화주의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YS 덕으로 DJ도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이런 부분들이 IMF 외환위기 사태 때문에 많이 훼손됐지만, 그래도 잘 계승이 되면 괜찮은데,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면서 회귀하게 됐다.


또, 통합당 당사에 이승만·박정희·YS의 사진이 나란히 같이 걸려 있는 걸 보고 아주 기함을 했다. YS가 저걸 보시면, 도대체 뭐라고 생각하실까. 지금도 너무 혼란스럽다. 우리당이 정통성·정체성 확보에 실패했다는 걸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라고 본다. 박정희는 YS의 투쟁 대상이었고, 박정희 정권은 이승만 정권을 부정하면서 탄생했는데, 어떻게 세 사람을 같은 선상에 놓고 볼 수 있나. 우리당이 타겟층으로 생각하는 중도층이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해야 한다. 그것에 대한 명확한 방향 설정을 안 하면 우리는 앞으로 어떤 선거에서도 이길 수 없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정권은 군사독재 세력이다. 3당 합당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보수·진보라는 이념 정당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 3당 합당을 하면서 보수와 진보를 대변하는 정당들이 자연스럽게 생겼다. 우리당의 뿌리를 찾으려면 3당 합당 이후부터 찾아야 된다."


김="정 장관 지적도 맞는데, 이승만·박정희·YS는 우파 정당의 대통령으로 분류할 수 있다. 저쪽(민주당)은 좌파 정당이고. 3당 합당을 했으면, 거기에 맞는 새로운 이념 체계와 노선을 만들었어야 했는데, 우리는 그걸 실패했다. 그래서 통합당이 여전히 제대로 된 방향 설정을 못하고 있는 거다. 또, JP(김종필)를 쳐내면서 우파가 분열되기 시작한 거다. JP 혼자 나갔나?, 충청권을 다 데리고 나가버렸다."


-3당 합당은 '구국의 결단'인가, '밀실 야합'인가.


김=(갑자기 목소리 커지며) "당연히 구국의 결단이다."


정="공개적으로 했는데 그게 왜 밀실 야합인가. 구국의 결단이다."


-87년 양김 분열이 안 됐으면, YS가 군사독재 세력과 손잡는 3당 합당이라는 선택을 안 했을 수도 있을까.


김="뭐, 지금 또 DJ를 비판할 수는 없으니까…민주화 세력이 통합했어야 했다. 1987년 당시 노태우 민정당(민주정의당) 대표로부터 '직선제 개헌'을 수용하는 6·29 항복 선언을 얻어냈다. 87년 13대 대선은 우리 민주화 세력이 무조건 이기는 선거였는데, '1노 3김'(노태우·김영삼·김대중·김종필)으로 분열돼서 결국 졌다. 그래서 YS는 DJ와 손잡고 연합을 형성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고, 어쩔 수 없이 호랑이굴에 들어가겠다고 하신거지."


정="YS도 군사독재 세력과 손을 잡으면 어떤 비난을 받게 될 지 다 아셨다. 그래서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 굴에 들어간다'고 하신 거다. 이 길이 아니면 군사독재 세력으로부터 나라를 구할 방법이 없다고 판단하신 거다."


정 의원은 22일 김 의원과의 대담에서 "우리당(통합당)의 뿌리를 찾으려면 3당 합당 이후부터 찾아야 된다"고 말했다.ⓒ데일리안 박항구 기자정 의원은 22일 김 의원과의 대담에서 "우리당(통합당)의 뿌리를 찾으려면 3당 합당 이후부터 찾아야 된다"고 말했다.ⓒ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일각에선 3당 합당은 '호남 대 비호남 지역구도'를 고착화시켰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3당 합당을 계기로 YS와 결별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서전 <운명이다>에서 "3당 합당은 호남이 정치적으로 고립되었고 영남은 보수 정치 세력의 손아귀에 완전히 들어갔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정="YS의 의도는 그게 아니었고, 지역주의는 87년 대선 때 더 심했다. 그 당시 YS는 광주에 들어가지도 못할 정도였다. 광주에 가면, 돌팔매질을 당했다. (옆에 있는 김무성 의원을 쳐다보며) 여기에 직접 겪으신 분이 있지 않나."


김="87년도에 광주에 선거 벽보를 붙이러 갔다. 벽보를 붙이면, 뒤따라오는 깡패들이 째뿌고(찢어버리고), 또 붙이면 째뿌고 그랬다. 두들겨 패기도 하고. 주유소에서는 '김대중 선생님 만세' 삼창을 안 하면 기름을 안 넣어줬다. 실화다. YS가 광주역 광장 큰 무대에 연설을 하러 올라가셨는데, 군중들이 YS를 향해서 돌하고 캔, 불 붙인 '베니어판'(합판)을 막 던졌다. 그래도 돌하고 캔은 일정한 포물선을 그리면서 날아오니까 피할 수 있잖아. 근데 불 붙은 베니어판은 피하기가 어렵다. 맞으면 죽는 거지. 그래서 YS 옆에 서 있던 최형우 (통일민주당 부총재) 이런 분들이 '이러다가 큰 일 납니다. 갑시다. 총재님'이라고 해도 YS는 안 움직이는 거야."


정="YS는 그 정도로 무서운 분이셨다."


김="그래서 그때 YS 옆에 있던 최형우가 YS한테 '후크'를 한번 넣었어. YS의 배를 한 번 쳤어."


정="YS가 움찔할 때 모시고 내려오려고. 하하하."


김="그래서 최형우가 나한테 '내가 뒤에서 막을 테니, YS를 모시고 가라'고 하더라고. 참 대단한 양반이지. YS를 무대 뒤에 있는 그라나다(승용차)에 모셨어. 뒷좌석에 '각하'랑 나랑 같이 탔지. 근데 막 군중들이 달려들면서 돌로 유리를 막 치는 거야. 그래서 내가 YS 보호하려고 YS 위에 올라타다시피 했다. 차 본네트 위에 바위 같은 돌이 떨어지기도 했다. 그 당시 차 운전하던 이충일이가 크락션을 막 치면서 섬진강 휴게소까지 잘 빠져나갔지. 하하하."


김 의원은 87년 광주역 광장 유세 현장의 기억을 회상하며 그 당시 급박하게 돌아갔던 상황을 매우 열정적으로 묘사했다. '베니어판', '후크' 등의 이야기를 할 땐 그의 동공과 함께 몸짓도 커졌다. 김 의원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정 의원도 적절하게 추임새를 넣으며 김 의원 이야기에 재미를 더했다. 김 의원의 이야기를 들으며 당시 YS의 모습이 생생하게 상상이 됐는지, 정 의원은 한바탕 웃어젖히기도 했다. 정 의원은 김 의원이 말이 끝나자, '3당 합당, 지역주의 심화'는 잘못된 해석이라고 다시 한 번 지적하며 "오히려 YS는 ('호남 대 비호남'이라는) 지역주의 완화를 위해 노력하신 분"이라고 말했다.


정="'3당 합당, 호남 고립'은 그 사람들의 합리화다. YS는 지역주의 완화를 위해 굉장히 노력하신 분이다. 문민정부의 첫 총리(황인성)는 호남 사람이었다. 또, 5·18 특별법 제정, 5·18 민주묘역 조성 등을 하면서 의도적으로 지역주의 완화에 굉장히 심혈을 기울이셨다."


김="광주폭동, 광주사태라는 용어를 '5·18 민주화 운동'으로 바꾼 게 YS였다. YS 이전까지는 광주폭동, 광주사태가 공식 용어였다. YS는 1983년 5·18 3주년 때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널리 알리고 군사독재 정권에 대한 항의 표시로 단식 투쟁에 돌입하기도 했다. YS의 단식은 1984년 민추협(민주화추진협의회) 구성의 계기가 됐다. 또, YS는 5·18 민주묘역을 4년에 걸쳐 조성해 국립묘지로 승격되도록 했다. 5·18 특별법을 제정해 전두환·노태우 등 신군부 세력을 처벌한 것은 물론 1997년에 5·18 기념식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되도록 했다. YS 재임 시절에 광주 민주묘역에 가려고 했는데, 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에서 데모를 하고 반발하면서 재임 중에는 결국 못 갔고, 퇴임 이후에 유족들의 초청을 받아서 가게 됐다. 내가 (2015년 새누리당) 대표 할 때도 5·18 (35주년) 기념식 때 광주에 가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는데, 그 노래를 불렀다가 우파 세력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비난을 당했나. 전야제에 참석했더니 과격 분자들이 나한테 막 돌 던지고."


김 의원은 매우 격앙된 목소리로 그 당시 자신이 겪었던 일을 묘사했다. 울분이 가시지 않은 모습이었다. 김 의원은 2015년 새누리당 대표 시절 5·18 민주화운동 35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당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등과 함께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했다. 당시 박근혜 정부는 이 노래의 제창을 공식적으로 반대했었다. 김 의원은 기념식 전날(17일) 광주 금남로 옛 전남도청 앞 5·18 민주광장에서 열린 5·18 전야제에 참석했었다. 그러나 일부 시민들의 격렬한 항의를 받고 행사 도중 철수했다. 시민들은 김 의원에게 욕설을 하고 물을 뿌리며 돌을 던지기도 했다.


-YS는 각자에게 어떤 존재인가.


정="정치적 아버지이자, 스승."


김="YS는 정치적 아버지고, 나는 (정치적) 큰 아들이다."


정="손주가 저기서 보고 있는데, '우리 아버지는 뭐냐'고 질투하겠다. 하하하."


김=(박장대소하며) "하하하."


▶(下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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