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니저는 배우가 최고의 컨디션에서 작품에 임할 수 있도록 하나부터 열까지 챙겨야 한다. 배우의 일거수일투족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봐야 하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인 셈이다. 남모를 고충도, 지켜야 할 비밀도 많은 매니저가, 최근 함께 해온 배우들에게 등을 돌리고 있다.
# 이순재-신현준-김서형 매니저들의 폭로로 '이미지 하락'
배우 이순재, 신현준, 김서형이 잇따라 매니저들의 폭로로 논란이 됐다. 지난달 29일 이순재 전 매니저 김모씨가 두 달동안 쓰레기 분리수거, 배달 생수 옮기기, 장보기 등 배우 가족의 사적인 일까지 했다며 '갑질'이라고 폭로했다.
이에 이순재는 지난 5일 입장문을 통해 "일련의 사태에 대해서는 자신에게 철저하고 타인을 존중해야 한다는 오랜 제 원칙을 망각한 부덕의 소치였음을 겸허히 인정한다"고 사과했다.
지난 13일 신현준과 오랜 시간 일해왔던 전 매니저 김모씨도 13년 동안 비합리적인 수익 배분과 폭언과 갑질 등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신현준 측은 전 매니저 김모씨를 허물없는 친구라고 표현하며 "서로 어머니께도 자주 인사드리기도 했다. 김씨의 가족 중 몸이 아픈 분을 위해 개별적인 도움을 주기도 했다. 단순히 배우, 매니저 관계 이상 개인 가족에게도 도움을 주고받는 사이"라고 해명했다.
갑질폭로는 프로포폴 불법투약 고발로 이어졌다. 김모씨는 신현준이 지난 2010년 강남구의 한 피부과에서 프로포폴을 과다 투약한 정황으로 검찰 수사를 받았다며 어떻게 마무리 됐는지 조사를 요청했다. 신현준은 치료목적이었으며 종결된 사안이라고 해명했지만 계속되는 논란에 KBS2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자진 하차, 김모씨의 폭로에 맞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14일 김서형이 소속사 마디픽쳐스에 전속계약해지 소장을 보내면서 갈등이 시작됐다. 김서형은 지난해 10월 마디픽쳐스와 계약했지만 1년도 되지 않은 시점에 소속사에 계약 해지를 요구했다.
마디픽쳐스 전성희 대표는 정산이나 매니지먼트 진행과정에서 큰 문제가 없었지만 김서형이 일방적으로 해지통보하고 연락을 끊었다고 주장했다. 김서형 측은 "전성희 대표가 신뢰관계를 저해하는 언행을 제3자에게 했고, 이후 전 대표가 먼저 계약해지를 제안했다"고 반박했다.
그러자 전성희 대표가 김서형의 갑질을 폭로하고 나섰다. 김서형이 매니지먼트 과정에서 욕설과 갑질을 일삼았으며 불합리한 수익배분으로 금전적 손실을 입었다고 밝혔다.
# '배우들의 갑질' 정말로 있을까?… 현직 매니저들의 생각은?
배우와 매니저 관계는 정말 '갑과 을'일까. 현재 배우를 담당하고 있는 매니저 10명에게 직접 이 사태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들어봤다.
13년차 경력의 한 배우 A 매니저는 "매니저가 이상하단 생각을 했다. 배우들은 커피 하나 사러만 가도 불편한 상황이 생긴다. 잔심부름은 해줄 수 있다. 우리의 일은 배우 케어다. 작품 뿐만 아니라 배우의 모든 컨디션을 관리해야 한다. 작품이나 광고도 배우가 매니저가 일을 가져온다고 꼭 해야되는건 아니다. 자기 생각을 교환할 수 있는 부분을 개인적인 영역으로 끌고 오면 안된다. 꼭 해야 한다면 설득을 해야 하고, 그 설득을 해내는 것도 매니저의 능력이라고 생각한다"고 갑질 논란을 바라봤다.
톱스타들을 주로 담당한 한 B 매니저 역시 "이순재 선생님 같은 경우는 매니저의 생각이 조금 짧지 않았나 싶다. 이순재 선생님이 팔순이 넘으셨다. 충분히 도와드릴 수 있는 부분이라고 본다. 이건 기본적인 예의인 것 같다. 4대보험 안들어준 걸 왜 이순재 선생님한테 말하는지도 이해가 안된다. 학원에다 항의를 해야 하는 부분이다. 그럴 분이 아니시다. 기사로 접했을 때 이상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긴 시간 매니저 생활을 한 매니지먼트사 C 대표는 "나는 솔직히 갑질이나, 폭력, 폭언을 당해본 경험이 없다. 이해해주는 배우들이 많았다. 스케줄 조정이나 계획 짜는 일에 스트레스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배우 인성으로 인해 상처 받은 적은 없었다. 배우가 힘든 걸 이야기할 순 있다. 해결은 못해도 도움은 줘야 하니 같이 들어준다. 주변 이야기를 들으면 갑질 하는 배우가 있긴 하다고 한다. 부정적으로 보면 매니저를 배우의 심부름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라고 자꾸 문제가 되는 갑질과 열악한 매니저들의 환경을 안타까워했다.
이같은 논란이 불씨가 되자 자신을 되돌아본 매니저도 있었다. D 매니저는 "언급된 배우와 같은 작품을 한 적이 있다. 자세히 말 할 순 없지만 매니지먼트에 문제가 있었다. 이번 사태를 지켜보며 나부터 잘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내 배우와 따로 이 문제에 대해선 이야기해보지 않았다"고 전했다.
반면 배우들의 폭언과 갑질을 직접 겪은 매니저들은 이번 논란을 계기로 배우와 매니저의 의식변화와 처우가 개선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0년 경력의 E 매니저는 "매니저 생활을 하면서 배우 갑질을 안느낀 사람 많지 않을 것이다. 아예 없는 이야기가 아니다. 특히 개인 매니저는 비서나 다름 없다. 나도 예전에 갑질 아닌 갑질을 겪었다. 내가 질려서 오죽하면 기존 톱스타들과는 일을 안하려고 한다. 매니저란 직업이 연예인을 가장 가까이서 접하기 때문에 많은 것들을 보고 느낄 것이다. '내가 왜 이러고 있나'란 생각도 많이 했다. 그렇다고 이걸 어디가서 이야기 할 순 없지 않나"라고 말했다.
이어 "배우들과 매니저는 갑을 관계가 아니다. 조금만 인지도가 생기면 본인들이 갑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건 매니저과의 파트너쉽 때문인거다. 계속 그런 상황이 이어진다면 매니저도 배우를 상품으로 밖에 대할 수 없다. 상호 존중을 해줘야 한다. 배우가 원한다고 다 들어줄 것이 아니라 관계 부분에서 분명히 이야기를 해야한다"고 힘줘 말했다.
또 다른 F 매니저는 "어떤 배우는 현장 매니저에게 모질게 군다. 때리기도 한다. 그리고 용돈 주며 무마시키는 걸 많이 봤다. 매니저들은 또 그걸 못견디면 앞으로 더 큰 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해 묵묵히 견뎌온거다. 그러니 상황이 여기까지 온 것 같다. 요즘 현장 매니저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다. 촬영 시작하면 현장 매니저가 24시간 함께 있는데, 몸종처럼 생각하니 다들 안하려고 한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힘든 일 안하려고 한다. '분칠한 사람 믿지말라'는 말이 왜 나왔겠나. 안그런 배우도 있을 거다. 그런 배우 매니저들이 너무 부러웠다. 서로에 대한 믿음과 의리가 있어야 롱런 할 수 있다"고 솔직한 생각을 전했다.
20여년 경력의 G 매니저는 "잘못된 관행이다. 기본적으로 필요한 업무만 도와주는 개념으로 일을 해야한다. 이외의 업무 시키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 배우들이 이사를 할 때 매니저들이 도와주는 경우가 있는데, 이 부분도 적당하게 임금은 주고 시켜야지 않나. 다들 그 정도는 할 여력이 되는 배우들이었다. 개인이 여행을 가는 것도 매니저 픽업이 비일비재하다. 사생활에서 도움을 받으려면 부탁을 해야 한다. 설사 근무시간이더라도 개인적인걸 당연하게 시키면 안된다. 회사에서 매니저 급여가 나가니, 자기가 부려도 되는 사람처럼 생각하는 성향의 배우들이 많다. 특히 이 바닥에 오 래 있었던 사람들은 그런 일을 많이 도와주고, 당연한 것처럼 살았다"며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그래도 요즘 자기 일은 자기가 하려는 20대 배우들이 많다. 매니저 도움 안받고 지하철을 타고 다니기도 한다. 좋은 마인드라고 생각한다. 이런 영향력이 자연스럽게 퍼지다 보면 매니저들의 근무환경도 자연스레 나아지지 않을까 싶다"고 앞으로의 개선 가능성을 점쳤다.
잔뼈가 굵은 매니지먼트 H 대표 역시 "갑질은 지금도 있다. 언급된 배우들은 문제가 원래 많았다. 그런 배우들의 특징이 있다. 바로 주위사람들은 좋아한다는 것이다. 가까이 있는 매니저만 힘들어한다. 두 얼굴인 거다. 매니저란 직업이 가사도우미는 아니지만 매니저가 기분 좋게 할 수 있으면 그건 도와주는 거다. 하지만 고마움을 모르고 당연히 시키면 그건 문제가 있는 거다"고 배우들의 이런 관행을 충고했다.
I 매니저는 "소위 말해서 순식간에 인기 얻는 배우들은 안하무인처럼 군다. 매니저한테 두 손가락으로 가져다대면 거기에 담배 꽂아주고 불까지 붙이라는 배우도 있다. 아마 갑질 폭로 기사가 뜰 때마다 노심초사하는 배우들 꽤 있을 거다. 이런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진 않다. 매니지먼트는 을이 될 수 밖에 없다. 매니지먼트 입장에서는 유명한 배우가 있어야 하니 배우에게 계속 맞춰주게 되는 거다. 톱스타가 되면 집안일부터 개인적인 걸 요구한다. 촬영없는 날에도 매니저는 배우를 케어하러 가야한다. 배우들은 이 모든 걸 매니저의 업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걸 누가 바꿀 수 있을까 싶다"고 빠른 시일 내에 환경이 바뀔 가능성은 낮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J 매니저는 "공정거래위원회 계약서 폼에 적힌 룰들이 있다. 그러나 딱 정해져 있는 규칙은 없다. 상황과 당사자들의 상호 협의가 크게 작용되는 업계다. 본인들의 규칙을 각자 잘 만들어 진행해야 할 것 같다. 배우마다 생각이 다 다르다. 누구는 사생활도 업무의 연장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누군 사적인걸 끌어들이지 않으려 할 것이다. 케어가 많이 필요한 직업이다보니 배우가 헷갈려 할 때가 많은 것 같다. 배우와 매니저가 서로 소통해서 일을 진행해야 원활할 것 같다"면서 배우와 매니저의 각자 입장에서 확실히 원하는 바를 소통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