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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망치는 노조②]기업 대항권은 전무한데...ILO 협약 비준 밀어붙이는 정부


입력 2020.12.01 07:00 수정 2020.11.30 16:09        조인영 기자 (ciy8100@dailian.co.kr)

노조전임자 급여 지급·해고자 노조 가입 "노사관계 갈등 증폭"

경영계 호소에도 정부·여당, ILO 핵심협약 비준 관철 '일방통행'

경제계 "기업하지 말라는 소리…일방적 입법 행태 우려" 탄식

민주노총이 11월 24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 교육원에서 '민주노총 총파업-총력투쟁 선포 및 대정부·대국민 제안'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자료사진)ⓒ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코로나 시대 여야가 합심해 기업들의 기(氣)를 살려주는 정책을 해도 부족한데, 국회와 정부는 오히려 경영 활동에 지장을 주는 법안들만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이런 시국에서 어떻게 기업의 생존을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재계 한 관계자의 우려다. 코로나19 여파로 한국 경제가 끝 모르는 불황을 맞이했음에도 불구하고 '공룡'여당과 정부가 노조법 개정안 처리를 밀어붙이면서 경제계의 탄식과 비명이 속출하고 있다.


노조법 개정안은 실업자와 해고자도 노조에 가입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춘 것이 핵심이다. 기업이 최악의 상황에 내몰릴 것이라는 반대에 부딪쳐 지난 20대 국회 당시엔 논의 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폐기됐으나 이번 21대 국회에는 176석을 차지한 '거여' 구도여서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경영계는 가뜩이나 기울어진 노사 관계가 더 기울어질 것을 우려해 대안책까지 제시했으나 정부와 여당은 이를 무시하고 '일방통행'으로 밀어붙이는 상황이다. 경제계는 기업의 제대로 된 대항권 없이 법안이 처리된다면 산업 경쟁력이 대폭 위축돼 한국 경제를 후퇴를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경고한다.


"해고자 노조 가입 못막아…기울어진 운동장 마저 없애려하나"


1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노동조합법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을 이번 정기국회 내에 처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개정안은 △해고자·실업자 등의 노조가입 허용 △노조전임자 급여 지급 △종업원 아닌 조합원의 사업장 출입 여부를 단체협약으로 결정 △생산 주요시설에서의 쟁의 행위 금지 등 주로 노조 측에 힘을 싣는 것을 골자로 한다.


경영계는 특히 '해고자·실업자의 노조가입 허용'을 대표적인 독소조항으로 손꼽는다. 해고자, 퇴직자, 실업자, 사회적 활동가 등 기업과 무관한 이들이 노조원 자격으로 사용자 측과 임금협상 테이블이 앉을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해고자들이 노조 활동을 하게 될 경우 해고자 복직, 실업대책 마련 등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거나 개별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운 정치적·사회적 이슈를 끌어와 노사관계 질서를 무너뜨리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더욱이 이들은 사용자의 인사권에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에 기존 노조원들 보다 얼마든지 대립적인 구도를 형성할 수 있다.


노조전임자 급여 관련 해외 사례ⓒ한국경영자총협회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해고자·실업자가 기업별노조에 가입해 활동할 경우 노조측으로 힘쏠림 현상이 더욱 심화되고, 단체교섭 의제도 기업 내부 문제를 벗어나 정치적·사회적 이슈까지 확대될 우려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해외는 한국의 상황과 정반대다. 영국의 경우 판례상 노조의 사업장 점거를 불법행위로 판단하고 있으며 독일도 사업장 점거 행태의 쟁의행위를 위법한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한국은 노조측의 '행패'에 회사가 적극적으로 대항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경영계는 해고자·실업자의 노조가입 허용이 불가피하다면 노조의 단결권 강화와 상응하도록 사용자의 대항권도 국제 수준에 맞게 개선돼야 한다고 호소한다. 구체적으로 노동계의 파업에 대한 대항수단으로 대체근로를 허용하고, 노조의 쟁의행위시 사업장을 점거하는 행위를 전면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경총 등 경제단체들은 "산업현장에서 발생하는 사업장 점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원칙적으로 '사업장 내 모든 시설'에 대한 점거를 금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회사가 노조전임자 월급도 주라고?…해외선 부당노동행위"


개정안의 또 다른 독소조항은 노조 전임자에 대한 급여 지급 금지규정 삭제다. 노조업무에만 종사하는 자가 사용자로부터 급여를 지급 받을 수 있는 여지가 생긴 셈이다.


경영계는 이 역시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노조의 자주성과 독립성 차원에서도 어긋난다는 이유에서다. 더욱이 노조전임자 급여는 노조 스스로 부담하는 것이 글로벌 스탠다드인 상황에서 이 같은 입법 예고는 노사관계 선진화에 역행하는 조치라고 경영계는 반발한다.


실제 미국은 사용자가 노조에 금전 등을 제공하는 행위를 부당노동행위로 간주하며 독일은 산별노조 전임자 급여를 산별노조 자체 재정으로 지급한다. 일본 역시 사용자측의 경비원조를 부당노동행위로 본다.


노조법 현행법과 개정 입법예고안 비교ⓒ한국경영자총협회

더욱이 경영계는 노조전임자 급여지급 금지규정 삭제 문제는 ILO 협약과 무관한 사안이며 오히려 ILO 규정에 위배되는 결과로 귀결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경총 등 경제단체들은 "정부안대로 노조전임자 급여지급 금지규정을 삭제하고 노사 자율에 맡긴다면 힘의 우위에 있는 노조 요구를 사용자가 거부하기 어려워 노조전임자 급여지급이라는 잘못된 관행이 확대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다 죽으라는 얘기냐…기업 입장도 제발 반영해달라"


이렇듯 노조법 개정안은 노조 가입 대상과 자격을 대폭 완화하면서도 재계가 요구한 사항들은 대부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경영계 입장을 반영한다고 했지만 단체협약 유효기간을 현행 2년에서 3년으로 늘리고, 노조가 사업장 내 주요 시설을 점거하지 못하도록 한 것 정도다.


경영계는 이 정도로는 무리한 파업, 사업장 불법 점거 등 막대한 피해를 미치는 행위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어렵다고 본다. 그럼에도 정부가 해고자·실업자 등에 대한 단결권 보장을 관철시키고자 한다면 기업의 방어권도 반드시 선진국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구체적으로 해고자·실직자의 사업장 출입 원칙적 금지, 파업시 사업장 점거 금지, 노조전임자 급여지급 금지규정 현행 유지, 파업시 대체근로 허용,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직접적인 형사처벌규정 삭제 및 노조의 부당노동행위 신설 등이다. 그렇지 않으면 파업에 대항할 수단이 없어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노조의 부당 요구를 들어주는 악순환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박지순 고려대학교 노동대학원장은 지난달 24일 열린 '노사관계발전자문위원회'에서 대체근로 금지와 관련해 “장기분쟁으로 경영에 타격을 주는 노동조합의 쟁의행위에 대해 기업들이 시장 위험 확대에 대처할 수 있도록 현행 대체근로 전면금지 규정을 합리적 범위에서 변경·개선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남성일 서강대 명예교수는 “지난 20여년간 우리나라 노동환경은 갈수록 노동조합으로 힘의 우위가 기울어져 있고 노동조합은 노동자의 대변기구를 넘어 정치권력집단으로 노동시장과 노사관계를 지배하고 있다”면서 “정부의 노조법 개정안은 가뜩이나 ‘기울어진 운동장’을 더욱 기울어지게 만들고 기업활동은 더욱 위축시켜 일자리 감소는 물론 나라경제를 전반적으로 쇠퇴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류재우 국민대 경영학부 교수는 “해고자와 실직자들은 이미 해고된 상태라 해고될 위험이 없고, 기업에 대한 책임감이 없으므로 이들이 노조에 가입해 과격한 조합활동을 한다면 노사관계가 파탄으로 향하고, 산업평화를 크게 해칠 것”으로 지적했다.

조인영 기자 (ciy8100@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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