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KCGI 가처분 기각…빅2 합병으로 글로벌 경쟁력 기대
독과점 논란과 노조 반발 극복 과제 남았지만 해결 가능성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최대 고비를 넘기며 한층 탄력을 받게 됐다. 법원이 행동주의 사모펀드 KCGI의 신주 발행금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하면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초대형 항공사 탄생이 속도를 내게 됐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 50부(부장판사 이승련)는 1일 KCGI 산하의 투자목적회사인 그레이스홀딩스가 한진칼을 상대로 낸 '신주발행금지 가처분' 신청에 대해 기각 결정을 내렸다.
가처분 신청은 본안 소송 전 긴급히 법리적 다툼 사항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을 구하는 절차다로 권리가 누구에게 있는지를 판단하는 본안 소송과 달리 현저한 손해 또는 급박한 위험을 막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KCGI는 지난달 18일 KDB산업은행에 배정하는 제 3자 배정 유상증자를 위한 한진칼 신주발행 결정에 반발해 가처분 신청을 낸 바 있다.
법원은 이번 제3자 배정 유상증자가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경영권 보호를 위한 것으로 이를 막을 필요가 있다는 KCGI측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 글로벌 톱 10 초대형 메가 캐리어 탄생 기대감 '업'
이번 가처분 신청이 기각되면서 산은이 한진칼에 투자할 수 있게 돼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가능해지면서 국내 양대 항공사간 합병은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아직 본안 소송 가능성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양사간 인수합병(M&A)에서 최대 걸림돌은 제거된 상황이다.
KCGI가 이번 가처분 신청 기각에도 바로 본안 소송에 들어갈 가능성이 있지만 승소해도 소송의 목적인 권리를 상실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수단이 가처분 신청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기각으로 사실상 합병을 막기는 어려워진 상황이다.
또 본안소송을 내더라도 최종 판결이 나올 때까지 길게는 몇 년이 소요될 수 있는 상황이어서 소송 제기의 효용성에 대한 고민도 없을 수 없다.
특히 가처분 신청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향후 본안 소송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데다 본안 소송과 동시에 이사회 무효 확인 소송이나 손해배상 청구 소송 등을 통해 법적 대응을 지속한다고 해도 이미 합병이 진행되는 상황을 막기에는 역부족일 것으로 예상된다.
양대 항공사간 M&A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초대형 항공사 탄생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산은은 한진칼에 8000억원(제 3자배정 유상증자 5000억원, 교환사채 3000억원)을 투입하고 한진칼은 이 자금으로 대한항공이 진행하는 유상증자 금액 2조5000억원 중 7300억원을 넣는다.
대한항공은 이렇게 마련된 자금으로 아시아나항공에 1조8000억원(신주 1조5000억원·영구채 3000억원)을 투입해 최대주주(63.9%)로 올라서게 된다.
산은과 한진그룹은 양사간 M&A에 걸림돌이 사라진 만큼 더욱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이동걸 산은 회장은 지난달 19일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을 하나로 통합하는 국내 항공산업 재편의 첫걸음을 내딛게 됐다"며 "연내 (인수 작업을) 마무리할 계획"이라고 강조한바 있다.
항공업계에서는 두 대형항공사간 빅딜 성사로 전 세계 10위권의 ‘메가 캐리어(Mega-Carrier)'가 탄행하면서 글로벌 경쟁력도 한층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양사의 매출은 각각 12조2000억원(대한항공)과 6조9000억원(아시아나항공)으로 합병 회사는 총 20조원 매출과 자산 40조원 규모로 재탄생하게 된다. 규모의 경제 실현으로 수익성 향상을 꾀하면서도 비용 절감이 가능한 구조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도약을 꾀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가 발간한 '세계 항공 운송 통계 2020'에 따르면 지난해 국제 여객 RPK(항공편당 유상승객 수에 비행거리를 곱한 것) 기준 세계 항공사 순위에서 대한항공은 18위, 아시아나항공은 32위를 차지했는데 양사를 합치면 현재 10위인 아메리칸항공과 비슷한 수준이 된다는 점에서 규모의 경제 효과는 확연히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또 국제 여객 수송 인원수 기준으로는 대한항공이 19위, 아시아나항공이 36위인데 합치면 이 역시 10위 수준으로 올라설 수 있다. 특히 국제 화물 수송량 순위에서는 대한항공(5위)과 아시아나항공(23위)을 합치면 캐세이퍼시픽을 제치고 세계 3위로 도약할 수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법원의 기각 결정으로 초대형 글로벌 항공사 탄생이 가능해졌다”며 “국내 항공산업의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긍정적인 일”이라고 강조했다.
◆ 양사 합병 위해 향후 극복해야 할 과제는
다만 국내 시장에서의 독과점 논란과 양사 노동조합의 반발, 대기업 특혜 논란은 앞으로 극복해 나가야 할 과제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지난해 말 기준 국내선 점유율은 각각 22.9%와 19.3%지만 양사 저비용항공사(LCC) 자회사(진에어·에어부산·에어서울) 등까지 합하면 62.5%에 달한다.
이 때문에 독과점 논란이 일 수밖에 없고 기업결합을 심사하는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반대할 수 있는 명분이 된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국제선 노선을 중심으로 외항사들과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는 항공업의 특성을 감안하면 국내선 점유율이 60%를 넘는다는 이유만으로 독과점이라 판단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또 공정위가 회생이 불가능한 기업과의 결합은 경쟁 제한성이 있더라도 예외적으로 기업결합을 허용하고 있는 만큼 큰 무리가 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노조의 반발도 해소해야 할 과제다. 대한항공 노조와 아시아나 열린노조는 회사의 인수합병 결정을 존중하고 찬성하는 입장이지만 양사 조종사 노조, 대한항공 직원연대지부, 아시아나노조 등은 이번 인수 과정에서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반대하고 있어 이들에 대한 설득 과정이 필요한 상황이다.
특히 양사간 합병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구조조정은 언제든지 노조의 반발이 일으킬 수 있는 요인이다. 산은과 한진그룹이 인위적 구조조정은 없다는 점을 재차 천명하고 있지만 직원들의 불안감은 여전하다.
이와함께 국내 항공산업 재편을 위한 합병임에도 결과적으로 대기업에게 특혜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정부와 산은 모두 국내 항공산업의 조기 정상화와 대규모 인력 고용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지만 향후 초대형 항공사 탄생으로 인한 수혜가 한진과 대한항공에 돌아갈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