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사 배터리 사업 지속 위해서는 소송 보다 합의 유리
내년 2월 최종판결 앞두고 합의금 등 양측 물밑 협상 가능성
작년부터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이 다투고 있는 전기차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소송이 또 해를 넘기게 됐다. 기업들의 명운이 달린 법적 분쟁 결론이 코로나19 여파로 세 차례나 미뤄지면서 양사의 부담 역시 커진 모습이다.
다만 최종 결론까지 두 달 여간의 시간을 확보하게 된 만큼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이 합의 시도를 재개할 여지도 커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조 단위 규모의 대형 투자를 지속하기 위해서라도 소송 리스크를 덜어낼 것이라는 관측이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9일(현지시간) 양사의 영업비밀 침해 소송 최종결정 심결(determination)을 당초 이번달 10일에서 내년 2월 10일로 연장하기로 결정했다.
앞서 지난해 4월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자사의 배터리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며 ITC와 델라웨어주 연방지방법원에 제소했다. ITC는 지난 2월 SK 조기패소 결정(예비결정)을 내렸으나 SK의 요청으로 4월 전면 재검토 결정을 내렸다. 당초 ITC는 10월 5일 최종 결론을 내릴 예정이었으나 세 차례나 미룬 끝에 내년 2월 10일 최종 발표를 예고했다.
ITC 측에서는 이번 연기 사유를 따로 밝히지는 않았다. 다만 올해 ITC 판결이 코로나 영향 등으로 50건 이상이나 연기됨에 따라 이번 최종 판결 역시 같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미 업계에선 코로나 재확산세가 심상치 않은 데다 미국 대선 후폭풍으로 대내외여건이 급속히 악화된 만큼 미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LG-SK 뿐 아니라 메디톡스와 대웅제약간 영업비밀 침해 소송도 두 차례 연기된 바 있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은 입장문을 통해 "소송에 성실하게 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합의를 위한 대화 가능성을 시사했다.
SK이노는 이날 "소송이 햇수로 3년에 걸쳐 장기화되면서 이에 따른 불확실성을 없앨 수 있도록 양사가 현명하게 판단해 조속히 분쟁을 종료하고 사업 본연에 매진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특히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고 있는 SK이노는 하루 빨리 합의를 이뤄내는 것이 유리하다. SK이노 입장에선 예비결정에 이어 조기패소가 확정될 경우 배터리 소재를 원칙적으로 미국에 수출할 수 없다. 현재 건설중인 조지아주 배터리 공장 역시 가동에 제한을 받게 된다.
조지아 1공장은 2022년 1분기부터 양산에 돌입할 계획으로, 정상 가동을 위해서는 하루 빨리 협상을 마무리지어야 한다.
한창 키워야 할 배터리 사업이 이번 소송으로 전면 차단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LG에너지솔루션과의 합의로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사업 성장성을 도모하는 것이 최선이다.
LG에너지솔루션 역시 글로벌 시장 지배력을 확대하기 위해 투자금 확보가 시급하다. 지난 1일 공식출범한 LG화학 배터리 자회사 LG에너지솔루션은 출범 이후 ITC에 원고 추가 등록을 하고 관련 침해 소송건을 이어 받았다.
LG에너지솔루션은 전기차 배터리 사업에서 수주잔고 150조원 이상을 확보했으며 2023년까지 총 배터리 생산능력을 260GWh(기가와트시) 이상으로 확장하겠다는 중장기 플랜도 공개했다.
아울러 해외 완성차업체들과의 합작법인 설립도 단계를 밟고 있는 만큼 재무 부담 완화를 위해 SK이노베이션과 손을 잡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특히 이번 영업비밀 침해 소송과는 별개로 특허침해 소송 등 국내외 10건의 소송이 잇따라 진행중이다. 소송 장기화에 따른 피로감 누적과 수 백억원 단위의 소송 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는 합의에 나서는 것이 양사 모두에게 이득이다.
국내 대형사들이 다투는 사이 중국, 일본 등 경쟁국들의 추격이 예사롭지 않은 점도 문제다. 중국의 경우 정부가 보조금을 주면서 배터리 기업을 직접적으로 지원하는 상황이다.
양사 모두 중장기 투자가 시급한데다 글로벌 시장 지배력을 확대해야 하는 공동 목표를 두고 있는 만큼 막판 합의를 적극적으로 시도할 것으로 점쳐진다. 다만 선결 조건인 합의금 액수와 납입 방법 등은 관건이 될 전망이다.
LG에너지솔루션측은 미국 영업비밀보호법 판례에 따라 경쟁사의 부당이득, 미래가치 등을 근거로 합의급을 산정해야 한다고 본다. 미국 영업비밀보호법은 손해배상액은Actual Loss(수주금액 등 실제 피해), Unjust Enrichment(R&D 절감 비용 등 부당 이득), Future Royalty(향후 수주액 등 미래 가치) 등을 고려한다. 모토로라-하이테라 소송도 영업비밀보호법에 근거해 배상액이 산정됐다.
반면 SK이노베이션은 유출된 기술 입증과 피해금액 산정이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회사측은 구체적으로 영업비밀 침해에 대한 명확한 규명이 없는 상황에서 거액의 배상액을 일방적으로 내주는 것은 배임 소지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양사는 기술 탈취 여부에 대한 사과 등 대응 수준과 합의금액을 놓고 막판까지 고심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 관계자는 "최종 판결이 또 다시 미뤄진 것은 양사에게 부담이자 기회"라며 "두 기업 모두 조 단위 투자가 이뤄지고 있는 데다 배터리 사업 지배력 확대를 위한 의지가 확실한 만큼 이제는 현실적인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