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세단의 풍채와 날렵한 패스트백 스타일 공존
넓고 안락하고 럭셔리한 뒷좌석은 '쇼퍼드리븐' 수요 충족
뛰어난 퍼포먼스와 첨단 운전자보조기능은 '오너드리븐' 지향
현대자동차의 럭셔리 브랜드 제네시스 내에서 ‘허리’를 맡고 있는 세단인 제네시스 G80은 56개 언론사 자동차 담당 기자들이 참여하는 한국자동차기자협회로부터 지난해 출시된 국내외 유수의 브랜드 신차들을 제치고 ‘최고의 차’로 평가받았다.
지난달 열린 최종 심사에서 수십 개의 후보 차종들을 비교 시승한 결과 G80은 단연 ‘군계일학’의 상품성을 보여줬지만, 좀 더 자세한 가치를 느껴보기 위해 최근 3박 4일간 이 차를 별도로 시승해봤다.
제네시스 브랜드가 출범하기 전부터 ‘제네시스’라는 차명을 가졌던 G80은 한때 에쿠스(현 제네시스 G90)와 함께 ‘사장님 차’ 소리를 들었던 ‘쇼퍼드리븐(주인이 뒷좌석에 앉는 차)’ 성향이 강한 차였다. 그만큼 덩치도 크고 뒷좌석도 으리으리하다.
하지만 제네시스 브랜드 출범과 함께 해외 럭셔리 브랜드의 허리급인 벤츠 E클래스, BMW 5시리즈 등 오너드리븐(직접 운전하는 차) 차종들과 경쟁하다 보니 큰 덩치와 으리으리한 뒷좌석은 다소 부담스런 특성이 돼 버렸다.
그렇다고 덩치를 줄이고 뒷좌석을 검소하게 만들 수도 없는 노릇이니 제네시스의 고민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다소의 시행착오가 있었겠지만 지난해 3월 출시된 3세대 G80에서는 제대로 정체성을 찾은 듯하다. 럭셔리한 실내를 유지하되 외양은 날렵하게 뽑고, 파워트레인과 서스펜션 튜닝은 퍼포먼스와 승차감을 적절히 배분해 오너드리븐과 쇼퍼드리븐 수요를 모두 잡은 것이다.
G80의 디자인은 역대 제네시스 최강으로 평가받을 정도로 반응이 좋다. 전면은 큼지막한 크레스트 그릴과 ‘두 줄’ 디자인의 쿼드램프로 제네시스 브랜드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대형 세단의 럭셔리한 분위기를 살렸다.
반면, 옆에서 보면 영락없는 날렵한 쿠페다. 뒷좌석 중간부터 매끄럽게 떨어지는 루프 라인은 패스트백 스타일로 트렁크 리드까지 이어져 이 차의 전장이 5m에 육박한다는 사실을 잠시 잊게 만든다.
뒷좌석에 앉아 보면 영락없는 사장님 차다. 3m를 넘는 휠베이스(축거)를 기반으로 한 넓은 레그룸이 안락한 공간을 제공하고, 암레스트에는 각종 편의장비를 조작할 수 있는 컨트롤러가 배치돼 있다. 옵션이긴 하지만 개별 모니터도 제공된다.
전후 좌우 공간 자체가 쏘나타 정도의 사이즈인 벤츠 E클래스나 BMW 5시리즈에 비할 바가 아니다.
하지만 운전석에 앉으면 뒷좌석의 노곤함은 사라지고 ‘질주본능’이 깨어난다. 3.5 가솔린 터보 엔진이 제공하는 380마력의 최고출력과 54.0kg·m의 최대토크는 거대한 덩치를 가볍게 잡아 끈다.
3.5ℓ의 배기량 자체도 만만치 않은데 거기에 트윈 터보차저를 달았으니 움직임이 더할 나위 없이 가볍다.
여기에 주행모드(스포츠, 에코, 커스텀, 컴포트)를 스포츠로 바꾸면 기어변속 타이밍이나 연료 분사가 퍼포먼스에 최적화돼 급가속시 몸이 뒤로 젖혀지는 짜릿함을 맛볼 수 있다.
모드별로 시트 포지션이나 엔진음도 달라진다. 스포츠 모드에서는 시트가 자동으로 낮게 가라앉으며 달리는 재미에 푹 빠질 자세를 만들어준다. 나긋나긋하던 배기음도 기분 좋은 으르렁거림으로 바뀐다.
일정 속도 이상으로 올라가면 시트 등받이 좌우 측면이 옆구리를 바짝 조여 마치 ‘버킷시트’와 같은 안정감을 준다.
상황에 따라 네 바퀴에 구동력을 적절히 배분하는 AWD 시스템은 급회전 구간에서 비교적 높은 속도로 달려도 차체를 안정적으로 유지해준다. 좌우 회전이 급격하게 이어지는 와인딩 코스에서도 언더스티어나 오버스티어 없이 정확하게 운전자의 의도만큼만 방향을 튼다.
고속도로에서는 ‘달리는 맛’도 있지만, ‘방치하는 맛’도 있다. 속도와 차간거리를 설정하고 차로중앙유지장치를 작동시킨 뒤 핸들에 살짝 두 손을 올려두면 IC나 JC 램프로 빠질 때 외에는 딱히 할 일이 없다.
헤드업 디스플레이(HUD)를 통해 주행 방향 안내와 속도 등 차량 정보 뿐 아니라 주변에 주행 중인 차량 상태까지 보여줘 차에 운전을 맡긴 상황에서도 마음이 놓인다.
차로 변경 보조기능도 있지만, 이 부분은 다소 불만족스럽다. 원래의 기능은 차량이 운행을 통제하는 상태에서 원하는 방향으로 방향지시등을 켜면 자동으로 차로를 변경해주는 것이지만, 이걸 실행시키는 과정이 까다롭다. 차로 변경이 가능한 타이밍(옆 차로에 후속 차량이 없는)이 되면 클러스터에 안내가 나오고, 이때 OK 버튼을 눌러줘야 한다.
직접 차로를 변경하는 것 이상의 수고스러움을 요하는 일이라 굳이 이 기능을 뭐하러 장착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도로가 복잡하게 얽힌 램프나 교차로에서는 증강현실 내비게이션이 톡톡히 역할을 한다. 내비게이션을 통해 차량 전방을 카메라로 찍은 실사 영상을 바탕으로 방향을 알려주는 기능으로, 램프가 연속되는 상황에서 특히 유용하다.
도로에 목적지별로 색을 다르게 칠해 놓은 컬러 주행 유도선과 같은 역할을 증강현실 내비게이션이 해준다고 보면 된다.
자동차기자협회 소속 기자들은 G80에 대해 핸들링 및 주행 감성 항목에서 10점 만점에 9.37점을 줬고, 가속 성능에서 9.13점을 줬다. NVH(소음/진동) 항목에서는 9.33점, 가심비 항목에서는 9.13점을 줬다.
운전석과 뒷좌석 모두 높은 가치를 제공한다는 평가를 받았다는 의미다. 당시 평가에 참여했던 기자 중 한명이기도 했지만, 다시 한 번 긴 시간을 시승해 본 결과 역시 기자단의 평가와 일치한다.
G80 가격은 2.5 가솔린 터보 기본 모델이 5291만원, 이번에 시승한 3.5 가솔린 터보 AWD 모델은 6214만원이다. 이정도 고가 차종은 ‘가심비’에서 높은 평가를 받기 힘든 게 보통이지만, G80은 9점 이상의 가심비 점수를 받기에 충분한 가치를 제공해준다.
▲타깃 :
- 대형 세단을 몰고 싶지만 운전기사로 오해받긴 싫은 오너드라이버.
- 가족들을 편하게 모시고 싶지만 달리는 재미도 포기할 수 없는 가장.
▲주의할 점 :
- 벤츠 E클래스나 BMW 5시리즈의 경쟁차라고 해서 크기도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가는 주차장에서 큰 코 다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