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페이스북
X
카카오톡
주소복사

통일부의 역기능


입력 2021.07.12 09:01 수정 2021.07.12 08:30        데스크 (desk@dailian.co.kr)

“성과 없이 관성으로 수십 년 존속”

남북 간 화해·협력론 득세의 시절

남북행사 뒤치다꺼리가 본업?

ⓒ데일리안 DB ⓒ데일리안 DB

통일부·여가부 폐지는 이미 이명박 전 대통령에 의해 시도됐었다. 상당히 의지가 강했으나 결국 성공하지는 못했다. 찬반을 싸고 사회적 갈등이 깊어진데다 제1야당인 통합민주당이 적극 반대하고 나선 결과였다. 새 정부는 야당으로부터 해양수산부 폐지를 받아내는 선에서 타협했고, 여성부와 통일부는 살아남았다.


“성과 없이 관성으로 수십 년 존속”


그 논란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에 의해 다시 점화됐다(여가부 문제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 우선 통일부 폐지론만 들여다보자). 그는 “성과와 업무 영역이 없는 조직이 관성에 의해서 수십 년 간 유지되어야 하는 것이 공공과 정부의 방만이고 혈세의 낭비”라고 페이스북에서 지적했다. 말인즉슨 옳다. 예컨대 개성에 우리 돈으로 짓고 전력 등 운영비용을 부담했던 개성 남북연락사무소 빌딩을 북한이 폭파해 버린 상황에서 통일부의 역할은 무엇이었는가.


이 대표는 이런 지적도 했다.


“미수복 대륙영토를 이야기하는 대만에 통일‘부’와 같은 조직이 있는가? 대륙‘위원회’다. 북한에서 통일부를 상대하는 조직이 ‘부’인가? 조국평화통일‘위원회’다. 심지어 조평통은 원래 내각이 아니라 조선노동당 산하의 조직이었다.”


통일을 목표로 한 정부의 의지와 노력을 굳이 상대주의적 관점에서 파악해야 하느냐는 비판이 있을 수도 있지만 이 또한 경청할 부분이다. 양측의 의도와 인식의 언밸런스가 구조화하면 인식과 태도에서 주종관계가 형성되고 만다. 지금 남북한 정부의 관계가 보여주는 게 그 단적인 예다.


사실 이런 경향은 보수정권에서 비롯됐다. 국토통일원은 박정희 정부가 1967년 설치했다. 박 당시 대통령과 정부가 평화통일을 민족적 사명으로 분명히 인식하고 또 적극 추진할 의지를 가졌음을 대내외에 밝히는 간판 같은 것이었다. 무력통일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제도적 보증이기도 했다.


노태우 정부가 1990년 국토통일원을 통일원으로 개칭했다. 뿐만 아니라 장관을 부총리로 격상시켰다. 노 전 대통령은 당시 급속히 진전되던 공산체제들의 도미노식 붕괴 상황에서 빌리 브란트 구서독 총리의 동방정책을 벤치마킹한 북방정책을 제시했다. 평화통일이 가시권에 들어왔다고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통일대통령’이 될 수도 있다는 희망에 부풀었을 수도 있다.


남북 간 화해·협력론 득세의 시절


김대중 정부 들어 통일원은 통일부로, 통일부총리는 장관으로 격하됐다(1998년). 통일전문가로 자처했던 김 전 대통령이 통일 과제를 경시했기 때문은 물론 아니었다. 전략이 달라진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은 통일문제 담당 체계를 자신이 직접 관장하는 시스템으로 바꿨다. 노 전 대통령은 남북 관계를 정부 대 정부의 차원에서 정립하려고 했지만 김 전 대통령은 자신과 김정일의 직접협상이란 틀 안에 집어넣었다. 이후 소위 진보정권의 대북정책은 대통령과 그 측근참모의 개인기에 의존하게 됐다. 그 탓에 남북관계가 더 심하게 왜곡 굴절되고 말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도 김 전 대통령의 충직한 제자의 길을 걸었다. 자연 제도로서의 통일부는, 국민의힘 이 대표의 지적처럼 ‘관성’에 의해 유지돼 왔다.


이 대표는 “통일을 하지 말자고 하는 게 아니라, 외교와 통일 업무가 분리된 게 비효율일 수 있다”며 “외교의 큰 틀 안에서 통일 안보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통일부는 외교·국방·안보의 측면에서는 오히려 부담이다. 우리의 지정학적·국제정치적 입지는 아주 불안정하다. 특히 안보·국방 환경의 취약성은 비교할 대상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다. 게다가 북한 김 씨 왕조는 극단적 폭정으로 인한 체제위기를 폭력에 의지해서 버티고 있다. 그런 북한의 변화를 운위하는 것은 인식의 바탕부터가 허구다.


이런 상황에서도 통일부는 남북화해와 협력체제가 이뤄질 것이라는 꿈을 포기하지 않고 거기에다 조직의 존재 의의를 두고 있다. 정말로 그렇게 믿어서라기보다는 그 믿음을 국민 사이에 전파해야 조직의 유지가 가능하다는 계산 때문이라고 본다. 안보·국방의 요구와는 상충될 수밖에 없다. 어느 쪽이 우위에 서느냐는, 집권자의 의중에 달렸다. 지금은 ‘국가안보·국방의 포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남북화해·협력론 득세의 시절이다.


남북행사 뒤치다꺼리가 본업?


정권 측에서는 통일부가 마치 통일의 민족적 사명을 전적으로 수탁한 부처인 듯 주장한다. 통일부를 폐지하는 것이 헌법정신과 규정에 위배된다는 심리적 압박도 멈추지 않는다. 그간 통일부는 남북관계와 관련한 대통령의 행사 전담기관, 생산된 문건의 대독(代讀)기관, 통일지상주의 선전기관일 뿐이었다. 거기에서 그친 것도 아니다. 북한 김정은 집단의 용납할 수 없는 행패·도발·위약·협박·조롱·모욕 등 온갖 기괴한 행태에 대한 변호인을 자처해 왔다.


현실적으로 남북관계는 대통령이 청와대 국가안보실과 국정원을 이끌면서 주도해 왔다. 그런데 통일부가 왜 그처럼 필요하다는 것인가. 지금까지 보여준 역할과 기능 정도라면 굳이 장관이 이끄는 조직일 필요가 없을 텐데 정부 여당이 펄쩍 뛰는 것은 마당쇠라고 같은 마당쇠가 아니라는 확고한 충성신조(?) 때문인지 모르겠다.


김정은에겐 평화통일 같은 것은 의식의 어느 구석에도 없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통일’이라는 말만 나오면 웅변가로 돌변하거나 눈물을 흘리는 것은 조건반사적 반응인 듯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반민족 분자로 낙인찍힐 것 같은 두려움에 길들여진….


유감스럽지만 통일은 현실적 과제가 되기 어렵다. 체제의 극단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연방제 통일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거짓말쟁이이거나 몽상가다. 통일은 반드시 이뤄져야 하지만 그걸 정책 과제로 삼아서는 후유증만 양산한다. 그 점에서 통일부는 국가안보 및 국방의 짐이다.


반드시 정치체제와 법제의 통합만을 통일로 인식할 필요는 없다. 민족적‧제도적‧이념적 동질성이 회복될 수 있다면 통일은 이뤄지게 마련이다. 그 전제조건이 성립되지 않으면 ‘통일’은 정치적 선전 용어에 불과하게 된다. 거기에 너무 맛을 들이는 것은 위험하다. 그간 남북대화 퍼포먼스로 ‘재미’를 많이 보지 않았는가. 그 선에서 그칠 줄도 알아야 하는 것 아닐까?


ⓒ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를 네이버에서 지금 바로 구독해보세요!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댓글 0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