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장바구니 물가 ‘비상’걸려
신신식품부터 가공식품 등 일제히 올라
소비자, 앵겔지수 최고치…갈수록 부담↑
전문가 “치솟는 물가 선제대응 필요” 조언
올 여름 다양한 악재가 맞물리면서 우리나라 밥상 물가가 30년 만에 가장 많이 올랐다. 과거 가격을 올렸다 철회하며 정부 눈치만 살피던 업체들까지 가격 인상에 동참했다. 정부는 경기 정상화에 따른 일시적 현상으로 일축했으나, 하반기 전망 역시 암울하다. 농축수산물부터 가공식품까지 도미노 가격 인상 배경과 이에 따른 소비자들의 어려움을 짚어본다. [편집자 주]
장바구니 물가에 비상이 걸렸다. 연초부터 식탁 물가에 직접 영향을 줄 수 있는 신선식품을 비롯해 즉석밥, 통조림 등 가공식품의 가격이 큰 폭의 상승세를 보인데 이어 최근에는 라면도 가격 인상을 결정하면서 소비자들에게 어느 때보다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2.6% 오르며 9년1개월 만에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다. 지난해 여름 긴 장마와 잦은 태풍이 이어졌고 올 초 한파와 조류인플루엔자(AI)까지 겹치면서 식자재값이 껑충 뛰었다. 여기에 올 여름 폭염까지 겹치면서 다시 한 번 영향을 미쳤다.
신선식품발 가격 인상은 곧바로 가공식품으로 옮겨붙었다. 전문가들은 임대료 부담, 인건비 상승 등의 악조건이 겹쳐 하반기에도 소비자 물가 불안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빵, 제과, 라면의 원재료로 쓰이는 밀가루도 올랐다. 대한제분, 삼양사 등 주요 밀가루 제조사들이 가격 인상을 추진하자 라면3사(농심·오뚜기·삼양) 역시 주요 제품 가격을 인상했다. 일각에서는 서민식탁의 ‘최후의 보루’로 여겨지던 라면 가격이 오르자 가공식품 줄인상의 신호탄이라는 관측마저 나왔다.
여기에 원유(原乳)값 인상에 따른 유제품업체들의 가격 인상도 초읽기에 들어갔다. 원유가격의 인상 여파는 유제품 가격에만 미치지 않고 연관된 식음료 산업으로 파급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소비자 부담과 직결된다. 빵, 커피, 아이스크림 등의 가격이 줄줄이 오를 수밖에 없는 구조다.
대두유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것도 문제다. 올해 초 기준으로 대두유는 지난해 저점 대비 70% 이상 상승했다. 대두유 가격이 지속적으로 치솟을 경우 이를 사용해 만드는 제품군 가격이 줄인상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과자가 대표적이다.
특히, 물가 상승의 진원지인 농산물 가격 고공행진이 당분간 진정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농산물 가격 예측정보 시스템인 팜에어·한경의 농산물가격지수(KAPI)는 지난 2일 기준 110.48을 기록했는데 8월 31일엔 131, 9월 30일엔 149까지 치솟을 것으로 전망됐다.
다만 농축수산물 값을 잡기 위한 정부의 조치는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다음달까지 달걀 2억 개를 수입해 절반 이상을 대형마트에 풀 계획이다. 지난달 달걀 가격은 57.0% 뛰었다.
추석 전 축산물 수입도 늘린다. 평년 대비 소고기는 10%, 돼지고기는 5% 수입을 확대한다.
소비자들은 당장 추석이 두렵다. 매달 소득은 같은데 가계 소비지출에서 식료품비가 차지하는 비중인 ‘엥겔지수’가 갈수록 치솟고 있어서다.
코로나19 장기화로 가뜩이나 힘겨운 상황에서 ‘장바구니 물가’까지 고공행진을 하면서 서민들의 한숨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특히 농산물 가격이 안정돼도 한번 올린 가공식품 가격을 다시 내리는 일은 거의 없어 장바구니 물가 부담은 계속될 예정이라는 점이 가장 큰 걱정거리다. 이렇게 어려운 시기 가격 인상을 단행한 식품 업체들에 따가운 눈총을 보내는 이유이기도 하다.
직장인 김모(30대)씨는 “명절에는 가뜩이나 부모님 용돈부터 시작해 지출이 큰데, 최근 생필품과 외식비, 기름값까지 고공비행을 하고 있어 숨 쉬기도 무섭다”며 “물가가 너무 올라 마트에 가도 집어 올 것이 없다. 장보기가 무서울 지경”이라고 했다.
집밥용 식품이 전반적으로 상승세를 그리는 데에는 복합적인 요인이 얽혀 있다. 우선 밀 등 국제 원재료 가격이 급등한 점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여기에 전분당, 설탕 등의 가격이 모두 올라 인상분을 반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게 관련 업체들의 입장이다.
미국과 캐나다 등에서 폭염과 가뭄으로 인한 작황 피해가 심각한 데다, 코로나19로 생산, 유통인력이 원활하게 공급되지 않아 공급 자체가 심각하게 줄어든 탓도 있다.
출렁이는 유가와 환율, 폭등한 해상운임 등이 더해져 당분간 물가상승이 이어질 것이라는 게 업계의 한결같은 예상이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가 계속되는 한 원자재 가격, 물류비 상승 등 리스크는 꾸준히 이어질 것”이라며 “가격 인상 압박은 계속되는데 정부와 소비자 눈치도 봐야 하니 다들 부담감이 말도 못 할 정도”라고 귀띔했다.
정부는 하반기에는 물가가 안정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폭염과 태풍 등 기상여건이 악화하거나 국제원자재 가격이 추가 상승할 수도 있어 불확실성이 크다는 관측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물가안정을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공급대책 마련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코로나19로 집밥을 먹는 비중이 늘어나면서 식품 물가 상승은 가계 부담에 더 큰 부담으로 다가올 것으로 보인다”며 “추석을 앞두고 있는 만큼 공급측면을 철저히 검토해서 가격 인상이 예상되는 식품에 적극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밥상물가 대해부②] 고삐풀린 외식물가…하반기 가계부담 더 커진다>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