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가디슈' 올해 개봉한 영화 중 최초로 200만 돌파
류승완 감독 신작
배우 조인성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여러 가지 얼굴들이 스쳐 지나간다. 드라마 '별의 쏘다'의 어리숙한 성태, '발리에서 생긴 일'의 사랑만 보고 내달린 재민, 영화 '비열한 거리'의 조직폭력배 병두, '더 킹'의 권력에 목말라 하는 태수, '안시성'의 고구려 양만춘 장수 등은 모두 조인성을 대표하는 얼굴이다. 이는 곧 조인성이 매 캐릭터를 자신의 것처럼 소화해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리고 그를 상징하는 또 하나의 작품이 생겼다. 바로 '모가디슈'다.
'모가디슈'는 1991년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에서 내전 때문에 고립된 사람들의 탈출을 그린 영화로, 조인성은 극중 소말리아 한국 대사관 참사관 강대진 역을 맡았다. 강대진은 대한민국이 UN 회원국 가입을 성공시키기 위해 파견한 인물이다.
조인성이 '모가디슈' 출연을 결정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매번 선두에서 영화를 끌어가던 조인성은, 이번에 김윤석, 허준호와 함께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강대진의 옷을 입었다.
"어느새 활동하다 보니 어느새 선배의 위치가 됐는데 이번 현장은 저보다 영화적 경험이 풍부한 분들과 함께 할 수 있으 기뻤어요. 그동안 활동하면서 가지고 있던 의문, 방향성에 대한 모호함이 있었는데 그걸 물어볼 수 있는 선배가 있다는 게 참 좋더라고요."
이어 조인성은 김윤석의 '잘하고 있다, 믿고 있다'라는 말을 듣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들었다고 털어놨다. 조인성의 고민은 무엇이었을까.
"나이가 든다는 건 책임질 일이 많아진다는 걸 뜻하죠. 그러면 용기가 안 나는 일도 있고 조심스러워져요. 자꾸 움츠려드는데 이게 맞는 건가 싶었는데 선배님이 자연스럽게 당연한 거라고 하더라고요."
'모가디슈'는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전, 여행금지 국가인 소말리아 대신 모로코에서 올로케이션으로 진행했다. 당시 내전으로 혼란스러웠던 소말리아의 아픈 역사를 이국적인 풍광 속에 담아냈다. 조인성은 쉽지 않았던 도전이었지만 이 모든 건 류승완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기에 가능했다고 존경심을 표했다.
"류승완 감독님의 열린 귀, 경험에 의한 판단, 스태프들을 아우르는 힘과 결단력이 아니었다면 '모가디슈'를 해낼 수 없었을 겁니다. 많은 중압감에 시달리셨을 거예요. 짠해 보이기도 했어요."
4개월 모로코란 낯선 땅에 머물면서 힘들기도 했지만 배우로서는 귀한 기회였다. 또 오랜만에 고등학생 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돼지고기를 못 먹어서 힘들었지만 그래서 소고기를 많이 먹을 수 있었습니다.(하하) 올로케이션 촬영이라 좋았던 건 온전히 몰입하기 좋았던 현장이란 점이었어요. 숙소에서 현장까지 5분 거리였거든요. 그리고 일반 촬영장이었다면 촬영이 끝난 후 여기저기 흩어질 텐데, 이번에는 한곳에 모여서 작품이나 촬영에 대해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점이 좋았어요. 또 고등학생 때 이후 자유로운 환경에 놓여 있던 적은 오랜만이었어요. 먹고 싶은 것 먹고, 궁금한 곳도 가보고요. 서울에서도 물론할 수 있지만 함께 다니는 스태프들이 불편할 수 있어서 잘 하지 못했거든요."
영화가 공개된 휴 UN 가입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강대진 참사관 역의 조인성을 향해 호평이 이어졌다. 내전 한복판에 고립된 상황에서 생존을 위해 추진력과 결단력을 보여주는 강대진은, 그동안 우리가 봐왔던 안기부 캐릭터의 전형성을 띠고 있지 않았다.
"다행이란 생각이 들어요. 제 연기가 괜찮았다면 호흡을 맞췄던 선배님, 동료 배우 덕분입니다. 연기는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꽃이 피려면 밭이 있어야 하고 비도 내리고 관심도 받아야 하죠. 연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동료 배우들과 감독님의 사랑과 관심 때문에 그런 연기가 나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특히 도움을 청하러 간 소말리아 대사관에서 머리에 총구가 겨눠졌음에도 불구, 자신의 판단을 믿고 밀어붙이는 강대진의 모습이 인상 깊었다. 생사를 오가는 팽팽한 긴장감이 유지되며 강대진의 배포가 고스란히 전달됐다.
"총이 실제로 겨눠지면 안전하단 걸 알면서도 이상한 공포심이 생겨요. 내가 이길 수 없는 상대와 마주쳤을 때의 느낌이더라고요. 공포감을 이겨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걸 보여드리려 했어요. 그런 것들이 연기할 때 표현이 된 것 같아요. 실제 감정을 투영하기 때문에 원활하게 진행됐어요."
조인성이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은 카 체이싱을 통해 탈출을 감행하는 장면이다. 자신이 보여주고자 했던 강대진의 감정과 얼굴이 잘 드러나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그 때 제 얼굴이 가장 마음에 들어요. 생존 앞에서 꾸밀 필요 없는 얼굴이 나오잖아요. 그걸 표현한 본능적인 얼굴인 것 같아요."
'모가디슈'는 극장에서 개봉했지만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신작들이 OTT 플랫폼에서 공개되는 등 영화계 변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조인성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영화가 OTT에서 공개돼도 그건 분명히 영화거든요. 경계가 사라지며 더 자유로워질 것 같아요. 옳고 그르다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좋은 방향으로 발전해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동안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했지만, 아직 악역의 조인성은 만나보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악역을 기대해봐도 되느냐 물었다. 당분간 회색빛의 조인성의 얼굴을 보는 건 힘들 것 같다.
"제가 악역을 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아요. 보기에도 선해 보이잖아요.(웃음) 관객들이 극장에 오신다고 약속해 주시면 한 번 도전해 보겠습니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