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쇼핑' 나섰다가 주홍글씨
허울뿐인 디지털 혁신 '현주소'
"대출 한도 조회는 신용점수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비대면 대출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든 플랫폼에 적혀 있는 하나의 문구를 둘러싸고 금융사와 소비자 사이의 괴리감이 커져만 가고 있다. 저 한마디의 말만 믿고 순진하게 금리 쇼핑에 나섰다간 자신도 모르는 사이 주홍글씨가 새겨질 수 있어서다.
금융사가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니다. 실제로 대출 한도 조회만으로는 개인의 신용점수에 변화가 생기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소비자들이 금융사의 홈페이지와 어플리케이션을 돌아다니며 마음 놓고 대출 조회 버튼을 누를 수 있는 믿음의 원천이다.
문제는 이렇게 고르고 고른 대출을 최종 신청하려 할 때 발생한다. 짧은 기간 동안 너무 여러 곳의 금융사에서 대출을 알아본 당신이 아무래도 수상하다는 반응이다.
이는 은행권의 오래된 관행이다. 급하게 이곳저곳의 대출을 알아보는 고객은 경험적으로 연체 등 부실에 빠질 위험이 높다는 판단에서다. 실제로 은행은 통상 5일 이내에 3개 이상의 서로 다른 기관에 대출을 조회한 고객들에 대해 비대면 대출 승인을 제한하고 있다.
소비자는 억울하다. 직접 발품을 팔지 말고 온라인과 모바일을 통해 여러 상품을 비교해 보랄 땐 언제고, 막상 물건을 고르려 하니 블랙컨슈머 취급을 당한 셈이다.
한 발 더 나아가 일부 은행들은 이런 고객들에게 지점 방문을 권유한다. 직접 얼굴을 맞대고 앉아 앞으로 돈을 갚을 능력이 충분한 사람임을 입증하면 대출을 내줄 수 있다는 조건이다. 비대면 대출을 받기 위해 대면을 해야 하는 아이러니다.
순진한 소비자 입장에서는 이럴 줄 알았으면 애초에 대출 비교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후회를 하게 된다. 하지만 이는 고객의 잘못이 아니다. 은행 등 금융사가 제공하고 있는 디지털 플랫폼에서 대출 한도 조회 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은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다.
금융권은 지금 언택트 열풍에 휩싸여 있다. 그리고 너나없이 디지털 혁신을 외치고 있다. 명분은 고객이다. 전에 없던 편리한 서비스로 소비자의 권익을 높이겠다는 구호다.
이런 면에서 모바일 대출 한도 체크만으로 간접적 피해를 보게 되는 현실은 어딘가 앞뒤가 어긋나 있다. 어찌 보면 너무도 작은 하나의 사례이지만, 언택트 시대를 외치고 있는 금융권의 모순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기도 하다.
비대면 서비스 경쟁이 가열될수록 금융권 일각에서는 혁신을 위한 혁신이 많아지고 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제는 그 본질이 어디에 있었는지 되돌아볼 때다. 반짝인다고 해서 모두 금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