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제출 시한 D-3...제출하되 민감정보 제외될 듯
반도체 패권주의 강화 나선 美 추가 압박 우려 여전
기업→산업별…정보 수준 완화 조짐에 귀추 주목
미국 정부가 요구한 반도체 주요 공급망 관련 정보 제출 시한이 사흘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제출할 정보 범위를 놓고 고심이 깊어지는 모습이다.
고객사 공급 물량과 제품 재고 현황 등 민감 정보 제출 여부가 관건으로 당초 높은 수준의 정보를 요구했던 미국 정부가 한 발 양보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5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 정부가 요구한 제출 시한인 8일(현지시간) 내에 반도체 관련 정보를 제출할 전망이다.
앞서 미국 정부는 지난 9월 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전 세계 반도체 기업들에게 오는 8일까지 제조 가능한 반도체 제품 유형부터 제품별 월별 매출, 3대 고객사 리스트와 공급 제품 예상 매출과 비중, 현재 일별 재고 수준 등에 대한 정보를 제출해 줄 것을 요구한 바 있다.
형식적으로는 자발적인 제출 요청이지만 45일 이내라는 시한을 정해놓고 제출하지 않을 경우 별도의 조치에 나설 수 있다는 점까지 언급하면서 사실상 반강제적 성격을 띠면서 대상 기업들에게 고민스러운 문제였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이후 미국 정부가 요구한 정보 제출과 관련해 지속적으로 검토 중이라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견지한 채 구체적인 언급을 자제해 왔다.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DS부문장)은 지난달 26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제16회 전자·IT의날 기념식'에서 정보 제출 여부와 관련 "여러 가지를 고려해 차분하게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석희 SK하이닉스 사장도 지난달 28일 코엑스에서 열린 '반도체대전 2021'에서 "내부에서 검토 중이며 정부와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있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업계에서는 미국 정부의 반도체 정보 제출 요구를 아예 무시할 수 없는 만큼 어떤 방식과 내용으로든 시한에 맞춰 제출은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정부로부터 동일한 요청을 받은 다른 국가 기업들이 이를 수용할 뜻을 내비치고 있는 점도 이러한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이미 미국 인텔과 독일 인피니온 등이 정보 제출에 협조할 것이라는 의사를 전달했고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타이완 TSMC도 여러차례 입장 번복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정보 제출에 응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상황이다.
하지만 고객사 관련 정보 등 영업 기밀에 해당하는 민감한 내용은 제외할 것이라는게 중론이다.
제품 생산량과 재고, 공급처와 공급 물량 등의 세부적인 내용이 노출되면 향후 거래나 협상에서 타격을 입을 것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고객사와의 계약시 체결한 기밀유지협약(NDA)을 위반할 소지가 있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다만 미국 정부의 요구에 응해야 하는 기업들로서는 제출하는 정보가 미국 정부가 원하는 수준에 못 미치면서 재차 정보를 요구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부분이 없지 않다.
특히 미국이 반도체 자급론과 자국주의를 주창하며 공급망 주도권 확보에 나선 터라 기업들에 대한 압박이 커질 수 있는 실정이다.
미국은 자국을 중심으로 공급망을 재편하면서 반도체 굴기를 외쳐온 중국을 배제해 반도체 패권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겠다는 국가적 전략 차원에서 반도체 문제를 접근하고 있어 미국과 중국을 모두 시장으로 삼아야 하는 우리 기업들의 우려는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정부가 당초 요구한 정보 수준을 다소 완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업계 소식통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는 당초 제출을 요구한 정보 중에서 개별 기업별이 아닌 자동차·휴대전화·컴퓨터용 등 산업용도별로 구분한 제품 공급현황 등의 자료를 제출받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반도체 기업들이 극도로 민감하게 여기는 개별 고객사 관련 정보가 노출되지 않도록 해 정보 제출의 명분을 더욱 확보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정보 수준을 다소 완화해 그동안 제공에 난색을 표해온 기업들의 요청을 수용하면서 어느 정도 원하는 정보는 얻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반도체업계에서는 제출 정보 수준 완화가 기업들에게 다소 안도감을 줄 것이라면서도 미국 정부의 정보 요구가 지속적으로 이뤄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 우려의 시선은 여전한 상황이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지난해부터 반도체 공급난을 겪으면서 자급론과 자국주의를 표방하고 있고 이번 정보 제출 요구도 공급망의 투명성 확보 차원에서 이뤄진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미국 정부가 당초 요구보다 정보 수준을 완화한다면 이는 기업들에게 요구했던 정보 수준이 높았다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라면서도 “기업들이 제출하는 정보가 미국 정부가 원하는 수준에 부합할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