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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인디그라운드(82)] 음악으로 투영되는 ‘홍이삭’의 마음


입력 2021.12.15 15:55 수정 2021.12.15 15:55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새 EP 앨범 '마음이 내려 쌓이면' 12월 10일 발매

예능 ‘슈퍼밴드’ 출연,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 ost, 영화 음악은 물론 출연까지, 다양한 활동을 해온 싱어송라이터 홍이삭이다. 스스로를 “노래 만들고, 쓰고, 이것저것 하려하는 홍이삭”이라고 소개한 것처럼 그가 보여주는 활동들에 한계는 없어 보인다.


그런 그가 오랜만에 EP 앨범 ‘마음이 내려 쌓이면’을 들고 대중을 찾았다. 이번 앨범에는 그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음악을 통해 투영되는 그의 마음들에는 온기가 가득하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또 내일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전하는 작지만 따뜻한 위로를 안기는 앨범이다.


ⓒ본인제공

-버클리 음대에 다니셨죠. 흔히 ‘엘리트 음악인’으로 부르던데요.


아, 저는 제가 엘리트라고 생각해본 적 한 번도 없어요. 오히려 한국에서 음악으로 대학을 다니시는 분들 중에 엘리트가 정말 많다고 생각해요. 저는 한국 문화 속 입시보다 서양의 문화에서 면접을 보는 게 저에게 좀 더 유리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해서 나름 전략적인 선택을 한 거죠.


버클리에서 앙상블 수업을 했을 때가 생각나요. 기말고사로 부를 곡을 정해오라 해서 한국 곡을 정해서 들려드렸는데, 교수님이 곡이 좋다고 막 칭찬을 하시더니 ‘너 미국에서 음악 하려고 미국 학교 온 거 아냐? 그러면 영어로 된 곡으로 해야 하는 거 아냐?’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때 아차 싶었죠. 저는 한국에서 인정받고 싶었는데 미국에서 음악을 하는 것이 이후에 한국에서 음악 생활할 때 단점이 될 수도 있겠다고 말이에요. 그리고 한동안 그랬어요. 음악적으로 친한 친구가 적어서 한국에 와서 초반에는 많이 헤맸어요.


-휴학을 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이유도 그래서인가요?


휴학은 단순히 돈이 없어서였어요. 학비가 너무 비싸기도 했고 부모님이 대학교까지는 도와주고 싶어 하셨는데 그게 너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대부분의 한국 학생들이 장학금을 받고 왔는데 저는 그때 아무런 장학금도 못 받던 학생었거든요. 그래서 어느 순간 휴학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됐어요.


-그런 현실적인 문제들에 부딪히다 보면 음악을 포기하고 싶기도 할 것 같아요.


맞아요. 매번 그런 순간들을 가지고 사는 게 현실인 것 같아요. 불안정한 생활의 연속이기도 하고 사실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일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거잖아요. 요즘 하는 음악에는 참 여러 감정이 들어가 있는 것 같아요. 행복과 절망을 함께 안고 가는 삶 같아요. 그래서 저의 요즘 이런 마음에 대한 처방은 그냥 다 끌어안고 가는 거예요. 현실을 망각하는 것도 이질감 있고 그렇다고 눌려 사는 것도 억울하잖아요. 오히려 벌거벗은 느낌을 받아들이기를 결정할 때 주는 그 나름의 자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국내에서 ‘유재하 음악 경연대회’(2013)에서 동상, 동문회상도 수상하셨는데요. 이런 수상 이력이 이삭 씨에게도 의미가 클 것 같아요.


저에게 ‘유재하음악경연대회’는 처음으로 내가 쓰는 음악이 아무도 모르는 누군가에게도 울림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준 곳이에요. 우리나라의 뮤지션들에게 음악을 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은 느낌이랄까요? 대학교 때부터 로망이기도 했고요. 고등학교 대학교 모두 지방에 있는 작은 학교에 다니면서 내가 잘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불안함이 있었거든요. 버클리는 영어나 서구 정서 속에서 나의 위치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면, 이 수상 이력은 한국에서 음악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는 계기가 되었죠.


ⓒ본인제공

-얼마 전 발매된 새 앨범 ‘마음이 내려 쌓이면’에 대한 소개 부탁드려요.


‘마음이 내려 쌓이면’은 멜로디와 노래의 분위기는 20년도 겨울에 이미 완성이 된 곡이에요. ‘The Christmas Song’과 같은 편안한 곡을 하나 써보자는 생각으로 용준이 형과 같이 멜로디를 썼어요. 그 곡을 쓸 때 나는 어떤 마음이었는지는 확실했지만, 구체적인 그림이 떠오르지 않아서 고민 중일 때 유재하 동기인 강희에게 연락했어요. 강희가 고민하더니 ‘마음이 눈처럼 내리면 어떻겠냐’고 이야기를 했고 이후엔 노래를 부르는 사람의 마음에 집중했어요.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감정이 마음속에 눈처럼 쌓이면 어떨까 하는 내용에서 둘 다 너무 멋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해서 지금의 노래가 완성됐어요. 가사에 관한 이야기를 얼마나 했는지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어떤 날은 오후 한 시에 만나서 새벽 세 시에 집에 들어갈 정도로 가사 작업에 시간을 많이 썼어요.


‘나쁘지 않아’ 같은 경우는 만들어 놓고 한참 건드리지 못했던 곡이에요. 미발표곡이지만 무대에서 많이 불렀어요. 팬분들에게는 너무나 익숙할 테지만 저에게는 어떻게 음원으로 담아야 할지 너무 어려웠던 숙제 같은 곡이었어요. 그러다 작·편곡을 도와주던 용준이 형에게 이 곡에 관해 이야기를 했고 같이 편곡을 하면서 방향을 잘 잡을 수 있던 것 같아요. 이 곡 같은 경우는 어떤 분이 ‘위로’에 대한 이야기를 주제로 공연을 해달라고 했는데 제 입장에서 위로를 생각하면서 쓴 곡이에요. 위로라는 단어가 참 많이 쓰이잖아요. 제가 위로받을 때는 사실 직접적인 공감이나 말에서 오지 않거든요. 그냥 존재하고 있어 주고 기다리고, 그런 생각들을 바탕으로 돌려서 말해봤어요.


‘지금은 아무것도 몰라도’는 생각해보니까 정말 직접적인 위로네요. 하하. 예전부터 이 곡을 좋아했고 제 주변 친 구들도 이 노래를 좋아했어요. 이런 직접적인 위로 별로 안 좋아하지만 그럼에도 멜로디가 주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계속 듣게 되더라고요.


-‘마음’의 존재에 대한 중요함을 깨닫고 있다고 하셨는데요. 이런 깨달음을 줬던 사건들 중 예를 들어 주실 수 있을 까요?


가장 큰 깨달음은 결국 내 마음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변하지 않는 환경 속에서도 많은 것이 변할 수 있다는 것이었어요. 너무나 쉬운 말이고 뻔한 말이지만 그게 요즘엔 저를 살리고 있어요. 이번 작업의 대부분 과정이 그랬거든요.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시작하면서 디테일한 방향을 정하고 순간순간의 판단 때문에 이후에 작업이 전부 결정 되고 그런 상황들이 생각해 보면 아슬아슬하고 무책임해 보이지만 그만큼 자유롭고 재미있을 수 있는 순간이 없거든요. 마음먹기 따라 달라지니까요.


그리고 영상과 앨범 커버 작업을 하면서도 생각에 따라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을 한 번 더 깨달았어요. 처음 앨범커버를 정하기 위해서 이것저것 시도를 하면서 다양한 하늘의 색을 시도했다가 지금의 하늘색으로 정했어요. 그날 밤에는 영상을 뭐라도 찍어보자는 생각에 ‘지금은 아무것도 몰라도’의 곡으로 늦은 밤 영상을 찍었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생각해 보니까 세 곡을 가지고 전날 밤 작업한 다른 색의 하늘로 앨범의 이미지와 영상을 연결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순간순간 상황에 대해서 있는 대로 받아들이고 어떻게 만들어 갈 수 있을지 퍼즐처럼 맞혀가는 상황을 보면서 몇 개월 전에 이 작업을 했다면 나는 절대 이렇게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소속사가 없이 오로지 혼자만의 힘으로 만들어야 했던 만큼 많은 사람들의 도움도 필요했겠죠?


혼자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제 이름으로 하는 거여서 결정이나 조율 등의 일을 제가 한건 맞지만 이 작업 과정에서 당장 떠오르는 사람만 10명이 넘어요. 흔쾌히 허락해주고 함께 만들어 가는데 시간과 노력을 들여 주신 분들이 너무 감사하죠. 곡 쓰는 것부터 녹음 그리고 이후 후반 작업까지 계속 지켜봐 주고 작업을 같이 해 준 전용준 형이 이 작업에선 가장 감사한 사람이에요. 너무 감사해요. 제가 더 잘할게요, 여러분의 노력이 더 빛나 보이게 제가 잘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앨범의 작곡, 편곡은 물론 영상까지 모두 이삭 씨의 손길이 닿아있으니 고되기도 했을 것 같아요.


네, 어제서야 입안에 헐었던 게 조금 괜찮아졌어요(웃음).


-동시에 힘든 만큼 결과물이 나왔을 때의 뿌듯함, 보람도 컸겠죠?


지금까지 만들었던 앨범 중에 전반적인 만족도는 제일 높아요. 이 과정에도 익숙해졌지만 이 모든 과정을 대하는 저의 ‘마음’이 무엇보다 성숙해졌다고 느꼈어요.


ⓒ본인제공

-처음으로 직접 쓰지 않는 곡 ‘지금은 아무것도 몰라도’를 담았죠. 이유가 있나요?


한국에서 대학 다닐 때 작사·작곡 동아리에 있었는데 주변 친구들의 곡이 괜찮은 게 참 많거든요. 이 곡도 그중 하나였던 것 같아요. 어떤 곡을 이번 앨범에 넣으면 좋을까 고민하던 중 우연히 이 노래를 다시 듣게 됐고 그렇게 친구랑 오랜만에 연락하고 허락을 받아 작업했어요.


-이번 앨범으로 대중들에게 건네고 싶은 메시지는?


노래를 만드는 사람이 어떤 메시지를 줄 수 있는 입장은 아니라 생각해요. 나의 어떤 의도와 생각이 있지만 그것 또한 음악을 통해 투영되는 거니까, 듣는 분들이 해석하는 메시지에 따라 달라지지 않을까 해요. ‘마음대로’라는 단어가 지금은 가장 와 닿는 메시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아, ‘홍이삭스럽다’라는 걸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어요. 사실 이 음원이 나오기 일주일 전에 OST가 하나 나왔는데, 이 앨범과는 완전 정반대되는 분위기거든요. 오히려 저를 모르시는 분들은 헷갈릴 수도 있겠다는 걱정도 생겨요. 그래도 어떤 방식이이든 저를 봤을 때 ‘아 홍이삭은 이런 모습들이 있구나, 괜찮네’하며 들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이삭 씨의 보컬을 두고 ‘자연주의 보컬’, 이미지나 환경을 두고 ‘교회오빠’ 등의 별명이 있잖아요. 이 별명들은 맘에 드나요?


사실 예전에 ‘교회오빠’ ‘자연주의’ 이런 단어가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슈퍼밴드’를 하면서 감사하게 느꼈던 건 그렇게 한 단어로 사람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도 참 감사한 일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유행가 하나를 칭하는 게 아니라 ‘자연’ 전체를 가지고 설명하는 거잖아요. 얼마나 할 수 있는 게 많겠어요. 예전부터 ‘이런 사람이고 싶다’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게 ‘스팅’(Sting)이에요. 그분을 이야기할 때는 장르에 경계가 없다고 이야기하거든요. 그레고리안 성가부터 팝송까지 그분이 담을 수 있는 노래의 그릇이 참 큰 것 같아요. 앞으로 그런 사람이고 싶어요. 어울리는 별명 없을까요(웃음)?

-이삭 씨의 음악들은 감성적으로도 그렇지만, 구성 면에서도 탄탄한 느낌이 있습니다. 다룰 수 있는 악기가 많아서 그런지 음악으로 표현할 수 있는 범위가 넓은 것도 같고요.


저는 어떠한 분야에 특화되어 있는 ‘장인’을 동경해요. 한 가지 악기를 잘 다루는 연주자는 목수나 도자기 공예가 같은 사람 같아요. 그러다 보니 그들처럼 될 수 없는 건 알지만 연주자들의 음악을 관찰하고 그들처럼 소통하고 싶어 하는 나름의 욕심이 있어요. 직접 할 능력이 부족하니 상상력이 좋아지는 것 같아요. 혼자 할 수 없는 것을 잘 소통해야 하니까 상상을 말로 잘 전달해야 하는 능력도 좋아지는 것 같고요. 말하는 법만 늘어요. 하하.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작곡부터 편곡이 완성되어 가는 과정에서 노래의 부분을 어느 정도 내려놓고 만들어 가는 것도 있어요. 일종의 ‘도전’인 거죠. 해본 적 없는 표현의 방식이더라도 내가 소화할 수 있겠다 생각이 들면 저를 믿고 가기도 해요.


-음악을 하다 보면,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 하고 싶은 음악과 대중이 원하는 음악이 다른 경우가 꽤 있다고 하죠. 이삭 씨는 어떤지 궁금해요.


처음에는 그 간극이 엄청 크다고 느꼈어요. 그리고 그게 문제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음악을 오래오래 하려면 더욱더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음악에 집중해야 하는 것도 사실이니까요. 그래야 저도 무대에 설 때 당당해지고 노래도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요즘 드는 생각은 간극이 그렇게 중요한가라는 생각을 해요. 어쩌면 그 간극이 저라는 사람을 만들어주기도 하니까요. 간극이 있으니까 홍이삭의 음악이 좀 더 뚜렷해지는 게 아닐까요? 물론 어떤 의미에서 이 질문을 해주시는지는 알겠지만 어쩌면 지금에서의 저는 있는 그대로 살아갈 때 그게 더 간극을 좁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나 봐요.


-스스로의 음악에 대한 신념도 있나요?


음악에 대한 신념보다는 음악을 하는 이유에 대한 신념이 있어요. 부모님의 삶을 보면서 이들처럼 살아야겠다, 그리고 이들처럼 살아도 되는구나에 대한 생각이 신념의 뿌리인 것 같아요. 삶이 그렇게 길지 않더라고요. 음악에 대한 어떠한 신념을 가지는 것은 어쩌면 홍이삭이란 사람을 한정 짓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요. 이렇게 말하니까 신념이 없는 것일 수도 있겠어요. 하하하.


ⓒ본인제공

-그동안 방송에도 많이 출연하셨죠. 특히 의미가 깊었던 방송은 무엇일까요?


아무래도 ‘슈퍼밴드’가 가장 의미 있는 방송 중에 하나죠. 다양한 사람들도 만나고 많은 경험들도 했지만 무엇보다 음악과 삶에 있어서 하루가 다르게 한계에 부딪히고 어떻게 하면 더 성장할까에 대해 어느 때보다 많이 고민했던 시기였어요. 지금 또 그렇게 하라고 하면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 순간들이 그립기도 해요. 후회하는 지점이 있다면 지금처럼 그 당시에도 마음을 더 열고 방송과 그 이후의 활동에 임했다면 더 멋있는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부분이죠.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음…과연 영화를 그 시기에 선택하는 게 최선이었을까 하는 생각은 계속해요. 하지만 그 덕에 연기라는 것도 경험해 보고 혹시나 좋은 타이밍에 좋은 기회가 있다면 또 도전을 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걸 느껴서 후회하지만 동시에 감사한 일이기도 하죠.


-방송 출연부터 드라마 OST, 영화음악 등 음악활동은 물론 독립영화 출연 등 다양한 활동을 해오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혹시 또 다른 새로운 활동들도 계획되어 있는지 궁금해요.


다양한 활동은 언제나 환영이에요. 지금 당장 새로운 활동에 대한 계획은 없지만 기회가 있다면 진지하게 생각해 볼 것 같아요.

-평소에 새로운 도전에 대한 부담감이나 두려움이 없는 성격이신가요?


저 겁이 엄청 많아요. 하하. 그런데 새로운 도전을 할 때는 생각과 감정을 없애고 몸을 던져버리는 건 잘해요. 그래야 있는 그대로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더라고요. ‘슈퍼밴드’도, 영화도, 비록 공연이 성사되진 않았지만 두어 달 연습했던 뮤지컬도요. 해야 하는 일들에 대해 어떤 결과를 기대한다는 건 음악 빼고는 안 하는 게 정신건강에도 좋더라고요(웃음). 음악에서도 어쩌면 버려야 하는 태도일지도 모르겠어요. 한 겨울에 계곡 물에 뛰어드는 느낌이랄까요. 생각이 많아지면 못하잖아요. 그런데 그냥 몸을 던지고 나면 생기는 카타르시스 같은 게 있더라고요. 사실 부담도 엄청 돼요. 지금 하는 것에도 익숙하지 않은 게 여전히 많은데 그 와중에 또 새로운 것들을 하다니요…. 그래도 아직은 조금 더 이것저것 해볼 여유와 시간이 있다 생각해요.


-이삭 씨가 바라는, 스스로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요?


음.. 스스로의 미래는 흔들리지 않고 하고자 하는 바를 잘해나가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나이가 들어서 지금의 에너지가 아니더라도 삶을 더 성숙하게 바라보고 더 깊이 있는 이야기를 해나갈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해봅니다.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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