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주도 '공정 혁신경제' 핵심 키워드
소득주도→ 기업중심 성장 패러다임 변화
규제 완화 한 목소리…“소통 뒷받침 돼야”
식품업계가 윤석열 정부 출범을 앞두고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해왔던 식음료 정책에 대한 낡은 법제도 개선과 미래먹거리를 위한 과감한 투자 등을 기대하고 있다. 현실과 동떨어진 규제는 완화하고, 중장기 전략이 필요한 정책은 업계의 목소리를 반영해 달라는 것이 핵심이다.
지난 10일 제 20대 대통령 선거가 윤석열 대통령 당선으로 마무리되면서 국내 식품 기업들은 차기 정부에 새로운 희망을 걸고 있다. 상대적으로 기업 친화적인 윤석열 후보가 당선됨에 따라 향후 정책에 있어 규제 완화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윤석열 당선자가 그동안 ‘기업 규제철폐’를 꾸준히 강조해온 만큼, 향후 기업을 위한 법·제도 개선도 속도감 있게 진행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소득주도 성장’에서 ‘기업중심 성장’으로 성장 패러다임을 전환하고, 규제개혁 전담기구를 도입해 규제 혁신에 속도를 낼 것으로 업계는 예상하고 있다.
실제로 윤 당선자는 지난해 12월 대한상공회의소 방문 당시 “국민 안전과 관계되는 게 아니라면 철저하게 네거티브 규제로 제도를 바꾸겠다”며 “전체적인 규제의 틀, 법 토대의 개혁을 반드시 이뤄내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네거티브 방식이란 법·정책에서 금지한 행위를 제외하고 모두 허용하는 규제를 뜻한다.
과거 문 정부에서 주 52시간 근무제, 5인 미만 근로기준법, 중대재해처벌법 등 기업에 부담이 되는 규제가 대거 쏟아진 만큼 산업계는 차기 정부에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달라 당부하고 있다.
◇ 기업활력 제고 위한 ‘정부 역할 중요’…최우선 과제 “성장 잠재력 회복”
식품 기업들은 경제 회복과 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새 정부의 역할로 ‘법·제도 및 규제 개선’을 첫 손에 꼽고 있다. 기업활동을 억누르는 각종 규제를 개혁하고 민간 중심의 혁신성장을 일궈내 시장경제 장점을 극대화하겠다는 게 이들의 청사진이다.
현재 식품 기업들은 ‘먹는 입’이 지속해서 줄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고민거다. 출산율 감소로 매년 매출 하락이 가시화 되면서 기업들의 위기감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먹거리 증가와 더불어 치열한 기업 간 경쟁, 규제 일변도 정책 역시 우려를 높이는 대목이다.
관련 기업들은 불황을 탈피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펼치고 있다. 연령층을 확대한 기능성 제품 출시와 가정간편식(HMR) 개발과 같은 소비자 접점 넓히기가 대표적이다. 식품업계의 사업 다각화는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코로나19 사태와 만나 더욱 절실해졌다.
이 때문에 관계자들은 정부 차원에서의 다양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모으고 있다. 케어푸드와 같은 성장 가능성이 높은 미래 먹거리에 대한 연구개발 지원과 국내외 물류 및 유통 인프라에 대한 과감한 투자가 뒷받침 돼야 한다는 의미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케어푸드의 경우 고령친화식품 관련 인증을 받으려면 품목당 적게는 100만원, 많게는 300만원까지 비용이 발생한다”며 “다양한 식품이 더 많이 개발될 수 있도록 하려면 비용적인 측면에서의 부담을 좀 덜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식품업계는 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해 ▲제품 표시 및 광고 관련 규제 완화 ▲원부자재 가격을 고려한 할당관세 부과 ▲보관·유통 관련 규제 완화 등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했다.
아울러 글로벌 정세 불안으로 원재료 가격이 급등하는 등 경영환경이 급변하고 있는 만큼 정부차원의 대책과 지원이 필요하다는 게 이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또 다른 식품업계 관계자는 “차기 정부는 경제성장에 중점을 둔 경제정책을 추진하길 바라며, 가장 먼저 기업활동에 대한 규제개혁과 민간 투자 활성화 방안을 모색해야한다”면서 “이를 위해 기업의 의견을 수렴하고 적시에 반영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 대기업 때려 잡기식 규제 ‘그만’…“호통 대신 소통 뒤따라야”
식품 기업들은 기업 간 갈등의 고리를 끊어주고, 대기업 잡기식 규제는 그만해야 한다는 의견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정부가 직접 다스리고 규제한다는 왕조 시대의 발상으로는 국내 무대 어디에서도 제자리를 지키기 어렵게 됐다는 게 이들이 증언하는 현실이다.
일례로 현재 급식·식자재 업계 대기업은 공공기관 및 군부대 등 일부 사업영역에서 입찰 제한을 받고 있다.
당초 영세 중소기업 보호대책의 일환이었지만, 사실상 중견기업이나 외국계 기업이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어, 아예 자유경쟁 형태로 진행하는 것이 ‘공정한 경쟁’이라는 주장이다.
유업체들 역시 정부가 방관하기 보다는 앞장서 낙농업계와의 의견을 절충해주길 바라고 있다. 시장 수요를 반영한 원유가격 체계 개편이 이들 주장의 핵심이다. 최근 우유 소비가 감소하는데도 가격은 떨어지지 않는 등 부작용이 지속되고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현행 ‘원유가격연동제’는 수요·공급 상황과 관계없이 인건비·사료비 등 원유 생산비가 늘면 가격을 인상하고 있다. 쉽게 말해 낙농가 생산비 원가를 보장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하지만 다양한 부작용에도 낙농업계의 반대에 부딪혀 논의에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다.
이와 함께 현실에 맞는 새로운 정책도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주류업계다. 이들은 온라인 주류 판매 허용을 희망하고 있다. 전통주는 온라인을 통해 간편하게 구입할 수 있는 반면 맥주나 소주, 위스키 등은 여전히 온라인 주류 판매가 금지되고 있어서다.
다만 우리나라는 무인 주류 자판기를 도입해 판매하고 있다. 국세청이 지난 2020년 일반음식점에 주류 자판기를 허용한데 이어, 지난해 산업부가 편의점에 주류 자판기를 도입하는 내용이 담긴 규제 샌드박스를 승인하면서 주류 판매에 대한 인식이 크게 바뀌었다.
물론 온라인은 주류업계 주 판매 채널은 아니지만,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소비가 일상화되면서 주요 소비 채널이 온라인으로 옮겨가고 있는 만큼 온라인을 통한 주류 판매 역시 허용돼야 한다는 주장에 힘을 얻기 시작했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온라인을 통해 소주, 맥주 등 주류 판매가 확대될 경우 유통채널이 다양화되고 소비자 편의성이 높아져서 판매에 도움이 될 듯 하다”며 “온라인 채널이 주요 소비채널로 급부상한 만큼 주류 규제 역시 허들을 낮춰 현실에 맞게 적용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 K-푸드 ‘날개’ 달기 위한 정부차원 노력 지속돼야
식품업계는 기존 규제 완화를 통한 수출 장려도 원하고 있다. 현재 식품 시장의 육성과 글로벌 진출 확대를 위해서는 대규모 시설투자와 연구개발이 뒷받침돼야 하지만, 규모 있는 식품기업을 가로막는 규제가 시장을 위축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이 대표적이다. 이 제도는 2010년 대기업의 무분별한 사업확장을 막고, 중소기업의 영역을 보호하기 위해 도입됐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선정되면 3년간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협의를 통해 대기업의 사업철수 내지는 확장을 제한받게 된다.
중소기업 적합업종 다음 단계인 ‘생계형 적합업종’의 지정도 식품산업의 영세성을 고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정부는 2019년 5월 영세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을 보호하자는 취지로 ‘생계형 적합업종 특별법’을 마련했다.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되면 5년간 대기업이 이 분야 사업을 확대하거나 진입할 수 없다. 위반하면 매출의 5%까지 이행강제금이 부과된다. 앞서 권고 사안이었던 중소기업 적합업종에 비해 법 규제를 강화한 것이다. 대표 품목으론 장류, 두부, 김치 등이 있다.
식품 기업들은 이런 규제 정책으로 해외 시장에서의 판로 개척 역시 어려워지고 있다고 바라 보고 있다. 한국의 대표 제품으로 키울 수 있는 품목임에도 R&D 투자 등이 위축되면 사업 확장에 자연히 제약을 받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에 적극적인 투자 지원과 함께 최근 들어 정부의 지원을 통해 수출이 성사된 사례가 크게 늘고 있는 만큼 ▲해외 마케팅 지원 ▲대기업 식품 제품들의 수출 장려를 위한 정책 ▲수입 식품 원자재의 안정적 확보 등이 뒷받침 돼야 한다고 분석하고 있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식품산업은 국민의 먹을거리를 책임지면서 내수경기를 떠받치고 있는 중요한 산업임에도 정부는 그간 규제 일변도의 정책만 펼쳐 왔다”며 “차기정부는 대담한 규제 철폐와 함께 기업 목소리 경청을 통한 정책이 우선시 돼야 한다”고 일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