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는 죄가 아니다…교통권·교육권·노동권·탈시설 권리 보장하라"
면담 불발되자 화분 깨뜨려…"23일까지 답 없으면 24일부터 지하철 시위 재개" 경고
"경찰 과잉진압 멈춰라" "특별교통수단 확대"…서울 곳곳서 기자회견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등 장애인단체들이 14일 서울 곳곳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장애인의 교통권, 교육권, 노동권을 보장하고, 경찰의 과잉 진압 등 장애인에 대한 인권침해를 멈춰달라고 촉구했다.
전장연은 이날 오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사무실과 당선인 집무실이 마련된 서울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에서 70여m 떨어진 곳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당선인과 안철수 인수위원장은 장애인권리예산 반영을 약속하라"고 요구했다.
전장연 관계자는 "지금까지 장애인의 삶은 공정과 상식의 기준에서 마이너스의 삶이었고 배제로 점철된 차별의 역사였다"며 "선거 기간 동안 발표했던 윤석열 당선인의 공약은 기존 장애인 정책보다 퇴행하거나 답습하는 수준에 그쳐 우려스럽다는 표명도 했지만, 당선된 만큼 지금까지 우리가 요구해온 것들을 전달하고 면담을 촉구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형숙 전장연 공동대표는 "장애는 죄가 아닌데, (장애인들은) 왜 감옥 같은 시설에서 평생을 격리되어 살아야 하느냐"며 "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윤 당선인께서 반드시 법에 명시된 이동권, 교육권, 노동권, 그리고 지역에서 살아갈 수 있는 탈시설 권리를 이젠 미루지 말고 보장해달라"고 강조했다.
박경석 공동대표도 "각 부처의 예산 지침과 기준을 만드는 기재부에 예산 요구를 반영해달라고 했더니 관계부처랑 논의하라는 답만 왔다"며 "기재부와 대선 후보들에게 문제를 알리고자 매일 지하철을 탔는데 시민들 욕은 물론, 건물에 불 지르겠다는 협박도 받았다. 이제는 윤 당선인과 안 위원장이 우리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2023년 예산에 반영하라”고 말했다.
전장연은 애초 인수위 측에 직접 장애인 권리예산 요구자료를 전달하고 금융감독원 연수원 입구에서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었으나 윤 당선인 경호를 담당하는 경찰의 제지로 불발됐다. 이에 항의의 표시로 박 대표는 당선 축하의 의미로 가져온 난 화분을 깨뜨리고 인수위 예산반영 요구자료를 찢기도 했다.
종로경찰서 관계자는 "당선인 집무실 근처는 '대통령등의경호에관한법률'에 따라 경호 구역으로 지정이 됐는데, 기자회견 등 집단행동은 안전을 위해 불가피하게 제한할 수 밖에 없다"며 "열린 기자회견 장소도 입구와 10여m 정도 떨어진 가까운 거리였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윤 당선인과 안철수 인수위원장이 23일까지 요구에 응답하지 않을 경우, 잠시 중단했던 아침 출근길 시위를 24일부터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 전장연은 지난해 12월부터 장애인 특별교통수단·장애인 평생교육시설 운영비 국비 지원 및 보조금법 시행령 개정과 탈시설 예산 증액 등을 요구하며 출근길 지하철 시위를 벌여왔다.
이날 오후에는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등이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이 장애인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인권을 침해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며 재발 방지책을 요구했다.
이들 단체에 따르면 지난달 3일 지적장애인 A씨는 집에서 경찰관 두 명에게 연행되면서 폭행을 당했다. 당시 속옷 차림이던 A씨가 바지를 입고 다시 문을 열어주겠다고 하자 경찰관들이 A씨의 목을 팔로 압박하고 눕힌 뒤 3분간 몸을 눌러 제압했다는 것이 단체들의 주장이다.
지난해 5월에도 중증 지적·자폐성 장애인 B씨가 경찰의 질문에 제대로 답을 하지 못하고 이상행동을 한다는 이유로 뒷수갑을 찬 채 연행된 일이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경찰서와 일선 지구대 소속 모든 직원을 상대로 한 '장애 특성별 초기대응 훈련' 의무화 ▲장애인 호송 시 장비 사용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 마련 ▲발달장애인 전담경찰관 제도의 신속하고 효율적인 운영을 담은 요구 서한을 경찰청장에게 전달했다.
아울러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도 서울시청 별관 앞에서 '서울시 장애인 이동권 완전 보장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는 장애인이동권증진을 위한 선언을 미이행한 데 공식 사과하라"며 "2023년부터 특별교통수단을 수도권 전역으로 확대 운영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특별교통수단, 임차택시, 바우처 택시 이용 차별 철폐 ▲장애인 단체이동 지원을 위한 서울장애인버스 10대 확보 ▲수도권 지하철 역사 1역사1동선 엘리베이터 100% 설치 ▲마을저상버스 100% 도입 이행 예산 반영 ▲서울교통공사 고소·고발 및 손해배상 청구 취하 등을 요구하고 있다.
심석순 부산장신대학교 교수는 "경찰 등 국가기관에서 장애인에 대한 교육이 진행된다고 해도 현장에서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장애인 인식 개선 교육 자체가 너무 형식적으로 진행돼 한계가 분명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장애인들은 주거권과 교통권, 배우고 일해 생계를 유지해갈 수 있는 교육권과 노동권이 제대로 보장돼야 탈시설을 해서도 지역사회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다"며 "그간 장애인들의 권리 표출이 억압돼있었고 정치인들이 선제적으로 장애인들의 복지과 기본권을 신경쓴 적이 없기 때문에 이제야 장애인들이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