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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BL드라마①] ‘숨어서 보던’ BL드라마, 메이저 시장까지 노린다


입력 2022.03.17 11:22 수정 2022.03.17 11:22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OTT 경쟁서 살아남는 방법? 취향의 다양성 존중해야"

'시멘틱 에러' 흥행 이후 잇따른 BL 원작 영상화

“요즘 MZ세대들은 무엇보다 개성을 중시해요. 그만큼 취향도 다양하고요. 한 예로 ‘오징어 게임’을 보려고 넷플릭스에 가입한 이후, 전혀 다른 장르인 ‘지옥’이나 ‘지금 우리 학교는’으로 눈을 돌리는 식으로요. 더 이상 볼 게 없다면 과감히 구독을 끊어요. 때문에 OTT는 젊은 세대의 개성을 포괄할 수 있도록 다양한 취향의 콘텐츠를 보유하는 것이 관건이죠.”


ⓒ'겨울지나벚꽃' 스틸

플랫폼 관계자들은 뜨거운 OTT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취향의 다양성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OTT들은 그간 TV 방송에선 보기 힘들었던, 또 호불호가 강한 드라마들이 다수 제작·공개되면서 큰 인기를 얻었다.


기존 TV 플랫폼이었다면 불가능했을 ‘오징어 게임’ ‘지옥’ 등 신선함을 넘어 파격적이기까지 한 소재와 CG를 갖춘 작품들이 탄생했고, 한발 더 나아가 아직까지 사회에서 온전히 받아들이기 힘든 동성애 영역은 기존 플랫폼에선 금기의 영역이다. 특히 남성 동성애 코드가 들어간 작품인 ‘BL’(Boy's Love)은 소설과 웹툰을 넘어 OTT의 ‘다양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르라 할 수 있다.


BL은 기존 순정만화의 하위·파생 장르였던 ‘야오이’에서 시작됐다. 야오이 역시 두 남자의 연애를 묘사하는 문화지만 플롯도, 의미도 없다는 비하의 의미가 강하다. 때문에 이 표현 대신, 1990년대 중반부터 ‘BL’로 불리게 됐다. 얼마 전까지 BL콘텐츠는 주로 ‘숨어서 보는’ ‘음지 문화’ 등으로 표현됐다. 심지어 BL물 작가들조차 가족에게 자신의 작품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숨어서 보는 문화’는 아이러니하게 마니아층을 확산시켰고, 더 애착을 갖게 했다. 비단 ‘음지 문화’라 그런 것만은 아니다. 또 다른 해석으론 성적 억압에 대한 일탈의 성격이다. 특히 아시아권에서 BL이 인기를 끄는 건 어린 시절부터 여성들이 받은 성적인 억압과 관련이 있다고 보는 시선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작가는 “여성의 성이 불편한 현실에서 탈주하게 해주는 환상의 출구로서 BL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기본적으로 성인 여성 독자, 그중에서도 마니아층을 겨냥하고 있지만 시장 규모가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태국, 대만 등 일부 아시아권에서 인기를 끌었던 BL물들은 주로 웹툰과 웹소설 등에 한정됐다. 인터넷에서 빠르게 제작되고 접근도 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플랫폼의 변화는 드라마 형태의 소비까지 폭을 넓혔다. BL소설 한 편이 웹툰으로, 그리고 드라마로 진화하는 것이다.


한 예로 OTT 서비스 왓챠 오리지널 드라마인 ‘시맨틱 에러’는 컴공과 아웃사이더 추상우(박재찬 분)와 그의 완벽하게 짜인 일상에 에러처럼 나타난 디자인과 아웃사이더 장재영(박서함 분)의 이야기를 그린 캠퍼스 로맨스다. 동명의 원작 소설을 기반으로 웹툰에 이어 드라마까지, 슈퍼IP로 재탄생했다.


‘시멘틱 에러’는 공개 직후 TOP10 1위를 차지하는 등 장르물의 한계를 뛰어넘은 흥행을 보여주고 있다. 이미 원작 자체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웹툰과 애니메이션으로까지 제작된 만큼 드라마 역시 인기가 예상됐다. 다른 장르 콘텐츠와 견줬을 때도 밀리지 않는 압도적인 화제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BL소설계에서도 입문작으로 꼽혔던 만큼 드라마로도 ‘장르의 양지화 견인’에 나서고 있는 셈이다.


'시멘틱 에러' ⓒ왓챠

‘시멘틱 에러’가 양지화를 이끄는데 주요 핵심이 ‘동성간의 아름다운 사랑’으로 가볍게 보지만, 사실 BL 콘텐츠 초창기로 알려진 7080 시절의 BL물은 무거웠다. 퀴어물이나 동성애 문학처럼 동성애자의 객관적인 묘사와 이반들의 고뇌를 진지하게 묘사하는 주제를 많이 다루었다. 그러나 2000년대 후반부터는 성별의 차이에 대한 혼란을 다소 가볍게 다루면서 많은 작품에서 동성간의 사랑이 평범하게 받아들여지거나, 보편적인 현상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최근 국내에서 화제가 된 작품들도 대부분 후자에 가깝다.


이 같은 흐름은 ‘시멘틱 에러’ 이전에도 볼 수 있다. 국내 첫 BL드라마는 2020년 공개된 웹드라마 ‘너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로 본다. 해당 작품 역시 공개와 동시에 중국 웨이보의 K-드라마 부문 1위, 일본 라쿠텐 TV의 종합드라마 부문 1위를 휩쓸었고, 영화 편은 넷플릭스에도 공개됐다. 여기에 영화제까지 초청받는 등 첫 한국 BL작으로 국내외 반향을 일으켰다.


이후 ‘새빛남고 학생회’ ‘위시유 : 나의 마음 속 너의 멜로디’ ‘미스터 하트’ ‘류선비의 혼례식’ ‘유 메이크 미 댄스’ ‘컬러러쉬’ 시리즈, ‘나의 별에게’ ‘첫 사랑만 세 번째’ ‘겨울 지나 벚꽃’ 등의 한국 BL물이 쏟아졌고, 작품들 중 대다수가 해외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면서 새로운 한류 콘텐츠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런 가능성은 국내 주요 콘텐츠 제작사들도 움직이게 하면서 잇따른 BL 원작의 영상화 소식을 들려줬다. 국내 주요 영화 제작·배급사 중 하나인 NEW 영화사업부는 7일 BL드라마 4편을 시작으로 웹IP 기반 콘텐츠 제작 및 투자에 나선다는 소식을 밝혔다. BL드라마 ‘블루밍’ ‘따라바람’ ‘본아페티’ ‘트랙터는 사랑을 싣고’를 통해 K-BL 열풍을 이끌겠다는 포부다. 이밖에 리디북스 인기 BL소설 ‘신입사원’ ‘을의 연애’도 영상화 소식을 전하며 BL콘텐츠 전성시대의 서막을 예고했다.


다만 우려도 있다. 아직까진 국내 드라마 시장에서 제작된 BL물의 경우 대부분이 웹드라마 형식의 작은 규모로 만들어졌다. 때문에 기존 국내 드라마 콘텐츠에 비해 예산이 적게 편성될 수밖에 없어 퀄리티 면에서 아쉬운 목소리가 나온다. 또 장르의 특성상 출연진도 신인들 위주로 기용되다 보니 연기력 측면에서도 후한 평가를 받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9년차 배우 A씨는 “BL물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진 않지만 아직 국내에선 대중화되지 않은 장르이기 때문에 출연 제의가 오더라도 망설이게 되는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최근 들어 ‘시멘틱 에러’와 같은 자본이 투입돼 흥행하는 작품이 나오게 된 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앞으로 BL드라마 시장이 커지고, 대중성을 확보하게 된다면 출연도 긍정적으로 고민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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