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명하다' '석렬하다' '호중하다'…정치인 조롱 신조어 만드는 네티즌들

김하나 기자 (hanakim@dailian.co.kr)

입력 2022.05.22 06:17  수정 2022.05.22 23:25

'굥정' '경기도망지사' '계양아치' 등 양당 지지자들 갈라져 네이버 오픈사전서 격돌

전문가들 "'친일파' '빨갱이' 식상, 희화화 표현 찾아 공격…뿌리 깊은 혐오감 유발 우려"

"과거 광우병 사태 등 프레임 기획, 진보의 전유물…이젠 보수도 불만 신조어로 투영"

"상대 비난할수록 내가 속한 집단 공고해지고 본인의 비교우월 심리 두드러지는 것 노려"

윤석열 대통령(왼쪽)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총괄선대위원장(오른쪽) ⓒ데일리안 DB.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열혈 지지자들이 연일 상대 정당과 정치인 등을 조롱하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고 있다. '석렬하다' '재명하다' '호중하다' 등 '이름+하다'의 형태가 주를 이루고 있는데, 전문가들은 이같은 신조어들이 첨예한 이해관계로 갈라진 정치 진영과 지지 정당이 고착화되면서 생겨난 현상으로 분석하고 있다. 프레임 전쟁의 연장선상에 있는 이런 신조어들이 세간에 무분별하게 통용되면 정치 혐오를 더욱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이 윤석열 대통령을 겨냥해 네이버 오픈사전에 '석렬하다'라는 표제어를 등재했다. 단어 등재자는 뜻풀이로 "망칠 것을 예상했으나 정작 망친 뒤에 애석함을 담아 평가하는 말"이라고 정의 내렸다. 윤 대통령과 '공정'이라는 단어를 비난적 의미로 섞은 '굥정'이라는 단어도 오픈사전 표제어 중 하나로 올랐다. 이 단어는 '윤'을 거꾸로 표기한 '굥'을 사용해 "공정한 척, 정의로운 척 행동하며 특정 상대방을 비난했지만 정작 본인은 더욱 공정과 정의를 상실해 비난받을 행동을 했을 때 쓰는 말"로 풀이돼 있다.


이에 맞서 국민의힘 지지자로 추정되는 네티즌들도 '재명하다' '경기도망지사' 등의 단어를 등록했다. 재명하다는 '겉으로는 너그러워 보이지만, 속은 얍삽하고 오만하다', 경기도망지사는 '경기도지사였던 사람이 아무 연고도 없는 지역으로 방탄 출마하는 것'이라고 적혀 있다. 또 '호중하다'(죄 없는 민간인을 고문치사하다) 'M번방'(N번방 사건에서 파생된 말로 더불어민주당에서 성비위 사건이 잇따라 불거지자 생겨난 별명) '피해호소인'(민주당 소속 정치인으로부터 성적 피해를 입은 사람) 등의 단어도 있다.


네이버 오픈사전에 '석렬하다', "재명하다" '호중하다' 등의 단어가 등재됐다.ⓒ온라인 커뮤니티

이와 함께 "계양에서 아이를 밀치다"는 '계양아치',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문재앙', "잘못된 광우병을 섭취한 비율" '40%', "안하무인이고 나댄다"는 '정숙하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의 첫째 딸"이라는 '한국쓰리엠', "이씨 성을 가진 교수들을 일반화하는 말이지만 요즘은 이모가 교수를 한다는 뜻으로 쓰인다"는 '이모교수'라는 단어도 오픈사전 실시간 단어에 올라왔다. 하지만 해당 단어들은 '특정 인물·단체를 비하·비방하는 단어 등의 경우에는 노출되지 않는다'는 오픈사전 정책에 따라 현재는 모두 내려진 상태다.


전문가들은 신조어를 일종의 프레임, 키워드 전쟁의 연장선상이라고 분석했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과거에는 '친일파'나 '빨갱이' 식의 용어들이 사용됐는데 이런 표현들이 식상하기도 하니까 상대방을 공격할 수 있는 희화화된 표현을 찾아내려고 서로 애를 쓰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굥정' 등 파생되는 신조어들을 보면 윤석열 대통령, 당신 공정하다고 하더니 하나도 안 공정하다는 식의 비판으로 해석된다. 이런 키워드 전쟁은 블랙 코미디로 끝나면 다행이지만 뿌리 깊은 혐오감을 유발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강신업 정치평론가는 "과거에는 선거 중 상대방에게 공격을 하다가도 선거 후에는 분열 양상이 해소되는 모습을 보였는데 문재인 정권 이후에 정치적 파벌이 더욱 강해지면서 선거철 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국민 간 내편 네편 '편가르기'가 고착화됐다"며 "광우병 사태 등 프레임 기획은 진보의 전유물처럼 여겨졌지만 진보 정권이 들어선 이후 보수 쪽에서도 불만이 신조어로 투영되는 양상이다"고 설명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2030 세대가 보기에는 상대당이 나와 다른 편에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는데, 정작 자기편에는 느슨한 잣대를 들이대면서 공정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굥' '피해호소인' 등의 단어를 비꼬듯이 풍자하고 희화화해 만들어 내고 있다"고 진단했다. 임 교수는 이어 "상대를 비난할수록 내가 속한 집단이 공고해지고 본인의 비교우월 심리가 두드러지는 것을 노리고 있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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