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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위대한 알코올중독자’<25>] 주적


입력 2022.07.28 10:06 수정 2022.07.28 10:07        데스크 (desk@dailian.co.kr)

<작가 주> 우리나라는 음주공화국이라 할 만큼 음주에 관대한 사회입니다. 반면, 술로 인한 폐해는 매우 심각합니다. 주취자의 강력범죄가 증가하고 알코올중독자가 양산됩니다. 평화로운 가정과 사회가 풍비박산나기도 합니다. 술 때문에 고통 받는 개인과 가정, 나아가 사회의 치유를 위해 국가의 음주·금주정책이 절실하게 요청됩니다. 술은 야누스의 얼굴을 가졌습니다. 항상 경계해야 하는 마음으로 이 소설을 들려드립니다.


제25화 주적


의무과장실을 나온 이철백은 간호사의 안내를 받으며 면회실로 향했다. 면회실은 매점을 겸하고 있었는데 4인용 탁자가 스무 개 남짓 비치되어 있었다. 면회객과 환자들은 너덧 곳의 탁자에 띄엄띄엄 앉아 제각각 서로 다른 광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초점 잃은 눈으로 허공만 응시하는 환자를 앞에 둔 면회객은 데면데면했고, 입에 침을 튀기며 끊임없이 주절대는 환자에게는 연신 고개를 주억대는 면회객도 있었다. 또 어떤 면회객은, 불 같이 화를 내며 퇴원시켜달라는 환자를 달래느라 진땀을 흘리기도 했다.


이철백은 캔 커피 두 개를 사들고 사람들과 떨어진 구석자리에 가 앉았다. 면회실에서 본 환자들 중 어떤 유형으로 김석규가 나타날 것인지 이철백은 궁금하기도 하면서 한편으론 긴장되기도 했다. 잠시 후 김석규가 들어섰는데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안색이 꽤 좋아보였다. 이철백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손을 흔들었다.


“고생이 많지?”


“고생은 무슨. 넌 잘 지내냐?”


김석규가 입원한 환자답지 않게 평소와 다름없이 말했다. 이철백은 캔커피를 따서 김석규 앞으로 밀어놓았다.


“술 생각 많이 나지?”


이철백이 캔커피 한 모금을 마시며 무심코 말을 던졌다가 화들짝 놀랐다. 환자 앞에선 술과 관련한 말을 절대 해서는 안 된다는 이희수의 주의사항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이철백은 탁자에 캔을 내려놓으며 김석규의 안색을 유심히 살폈다.


“술?”


김석규가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반문했다. 이철백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며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안 보니까 생각이고 뭐고 할 것도 없어. 남들은 내가 알코올중독인 줄 알겠지만 그건 내 겉만 봤지 깊은 속을 몰라서 그래. 내가 중독이라 그러면 지금 이렇게 멀쩡히 있는 게 말이 되냐. 금단현상이 와서 용천지랄을 하든지 해야지.”


김석규가 양팔을 벌려 어깨를 으쓱 추어올리며 이철백에게 동의를 구했다. 이철백은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어 어정쩡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군인이 적도 없는데 아무 데나 총질하든?”


김석규가 또다시 동의를 구하는 눈빛으로 이철백을 응시했고, 이철백은 또다시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어 어정쩡한 표정을 지으며 앉아있었다.


“아니잖아. 적이 있어야 총질도 하는 거지. 마찬가지야. 나도 술이라는 적이 있어야 전투를 해. 아시다시피 여긴 병원이라서 적이 없어. 그럼 평온한 거야. 난 너무 평온해. 이래도 내가 알코올중독이야?”


김석규가 삼단논법이 아니라 대여섯단논법을 구사하며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논리정연한 말을 들어보면 김석규는 최소한 알코올중독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어떻게 된 것일까. 술에 초연해지는 게 가능할까. 이철백은 자못 의심스러웠다. 자신의 경험으로 비춰볼 때 술을 며칠 마시지 않으면 술 생각에 머리가 번개 맞은 것처럼 활활 타오르기 마련이었다. 술이 없으면 없는 대로 그냥 넘어갈 수 있는 게 아니라 어떻게든 무슨 수를 써서든 술을 찾아나서야 했다.


그런데 김석규는 술 생각이 나지 않는다 했다. 그게 가능한 일인가. 음주수행이라는 궤변을 만들어낼 정도로 알코올중독이 극심했던 김석규가 술을 주적으로 삼으면서 중독을 벗어났단 말인가. 이희수의 진단처럼 스스로를 고도로 피드백 시키다보니 곤충이 탈피를 하듯 알코올중독에서 정말 편집증으로 넘어간 것일까. 그래서 술이라면 이젠 꼴도 보기 싫은 것일까. 이철백은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어쨌든 미안해. 적들이 난무하는 전쟁터에 전우들을 버려두고 나만 후송 와서 이리 편하니 말이야.”


김석규가 진정으로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철백은 ‘이게 뭐지?’ 하는 비현실적인 느낌에 순간 오싹해졌다. 조금 전만 해도 알코올중독이 아니라며 논리적으로 강변하던 김석규의 입에서 전혀 다른 뚱딴지같은 말이 아무렇지도 않게 흘러나왔다.


“그런데 국방부에서는 뭐하고 있는지 몰라. 우리 예비군, 역전의 용사들이 이렇게 국가와 사회를 위해 최전방에서 적을 격퇴하고 있으면 당연히 지원을 해야 할 거 아냐!”


감정의 기복이 현란한 김석규가 동의를 구하는 건지 역정을 내는 건지 이철백을 노려보았다.


“지금 주적은 북이 아니라 술이야, 술! 술이 우리 국가와 국민을 얼마나 공격해 대고 있냐 말이야. 사람들이 그렇게 고주망태로 뻗어나가면 국민을 보호해야할 국방부에서 당연히 군인들에게 술을 섬멸하도록 명령을 내려야지. 안 그래?”


이철백이 무슨 말인지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앉아있었다.


“국방부에서 손 놓고 있다고 우리까지 당나라 군대 노릇하면 안 되지. 전우들에게 안부 좀 전해주고, 어렵고 힘들겠지만 국가와 사회를 위한다는 소명의식으로 임무수행에 만전을 기해 주게.”


김석규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불쑥 손을 내밀었다. 이철백도 얼떨결에 일어나 김석규가 청한 악수를 받았다.


“한시가 급하니 어서 전선으로 떠나게. 나도 부상이 완치되는 대로 곧 합류할 테니까.”


김석규가 힘껏 쥔 손을 위아래로 세차게 몇 번 흔들며 장엄하게 말했다. 김석규의 누런 눈동자가 꿈틀거리더니 이내 굵은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철백은 생각지도 못한 정신병원 면회실에서 김석규의 뜨거운 전송을 받으며 전선으로 향하는 택시에 장작개비 같은 몸을 실었다.


이철백은 다시 벚꽃터널을 달리면서 아무리 생각해도 김석규의 망가진 모습이 꿈을 꾸듯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술로 망가질 것 같았으면 이철백이 먼저 망가졌어야했다. 이철백은 알량한 문학과 결혼했다는 시답잖은 소리나 해대며 술에 탐닉했고, 가정을 소홀히 한 대가로 밟게 된 이혼의 충격으로 술독에 빠져 지냈다. 이철백이 술독에서 허우적대던 시절 얼마나 주사가 심했으면 별명이 술 취한 영국신사라는 의리 있고 매너 좋은 김석규가 절교를 선언하면서 이철백을 수신거부 명단에 올려두었을까.


어쨌든 김석규의 추락은 예견된 일인지도 모른다. 김석규는 업무상 얻게 된 트라우마 해소를 오로지 술에 의존했지만 정작 술로는 그것을 풀지 못하고 오히려 내면화 시켜버린 측면이 컸다. 트라우마는 사실 개인이 해소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트라우마는 치료해야 할 질병이지 해소할 수 있는 스트레스 정도가 아니었던 것이다. 변동원 사건만 봐도 김석규는 참혹하게 살해된 신예지 가족의 시신들과 사건현장 뒷산 등산로에서 목매달아 죽은 변동원의 시신을 무방비로 접해야 했다.


그런 연후엔 끊임없이 사건현장이 떠오르고 감정이 마비되며 수면장애와 소화불량이 뒤따랐다. 그럴 때는 휴가와 함께 전문적인 심리치료를 병행해야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외국의 경우 참혹한 사건사고 현장을 접하게 된 소방관과 경찰관이 트라우마를 호소하면 국가에서 정책적으로 치유를 돕는다는데 우리나라는 온전히 개인이 책임지고 알아서 해야 할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치료를 위해서는 돈도 돈이지만 시간도 나지 않아 최소한의 비용으로 단시간에 트라우마를 해소하려고 술에 의존하는 악순환이 되풀이 될 수밖에 없었다.




박태갑 소설가greatop@hanmail.net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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