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심 반도체 동맹 가입 불가피
팹리스·소재분야 원천기술 습득 기회
중국 배제 노골화 때 경제 보복 우려
기재부·산업부 경제 외교 실리 중요
대통령실이 최근 미국이 주도하는 반도체 공급망 네트워크 ‘칩4(chip 4)’ 참여를 위한 예비회의에 함께하기로 하면서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 등 경제 관련 부처는 중국과의 경제 관계에 대한 손익계산이 분주해졌다.
칩4는 미국 주도로 우리나라와 일본, 대만 4개국이 안정적인 반도체 생산·공급망 형성을 목표로 추진 중인 동맹이다.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우리나라와 대만은 파운드리(foundry·반도체 생산업체), 미국은 팹리스(fabless·반도체 설계업체), 일본은 소재 분야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만큼 이들 국가 동맹을 통해 반도체 분야 세계 주도권을 공고히 하겠다는 의지다.
미국은 지난 3월 칩4 계획을 밝히면서 우리나라에 이달까지 동맹 참여 여부를 확정해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이에 대통령실에서는 최근 칩4 구성을 위한 예비회의에 참석하기로 하고, 이를 미국 측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에서는 칩4 구성을 위한 회의 참석으로 아직 칩4 동맹 가입을 결정한 것은 아니라고 선을 긋는 모습이지만 기재부와 산업부 등은 사실상 가입을 전제로 경제 전반에 미칠 영향력을 계산하느라 바쁘다.
칩4 가입은 전반적으로 우리 반도체 산업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현재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은 생산공장(파운드리) 역할에서는 압도적으로 세계 최고다. 반면 원천기술이라 할 수 있는 팹리스에서는 세계 시장 점유율 1% 수준에 그친다. 이번 칩4 가입을 통해 반도체 설계 분야와 반도체 소재 원천기술 수준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문제는 칩4가 사실상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성격이 강하다는 점이다. 우리 정부는 우리나라 반도체 수출 약 40%가 중국이라는 점, 홍콩까지 포함하면 60%에 이른다는 사실 때문에 중국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반도체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 수출 가운데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23%가 넘는 만큼 국가 경제 전체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 게다가 중국은 2016년 우리나라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추가 배치를 결정하자 노골적인 무역보복 정책을 펼친 바 있는 나라다.
이창양 산업부 장관은 칩4 가입에 대해 “경제적 관점에서 접근하겠다”며 “폐쇄적인 모임을 만들 생각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 장관은 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단 간담회를 열고 “칩4는 반도체 산업을 다루는 것이라 순수하게 경제적 문제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칩4 가입을 민감하게 바라보는 중국을 의식한 발언이다.
중국과의 관계가 악화될 수 있다는 지적에 “중국은 큰 시장이고 비즈니스(사업)를 해야 하는 시장이니 여러 수준에서, 여러 산업 분야에서 협력할 상황이 많다”면서 “반도체는 첨단기술로 계속 업그레이드해야 하고 관련 기술을 갖고 있거나 장비를 가진 국가·기업과 협력해야한다”고 했다.
이 장관은 “국익 전체를 고려해 접근하지, 어떤 나라를 배제하거나 폐쇄적인 모임을 만들 생각은 전혀 없다”며 “가장 좋은 방향으로 여러 일어나는 일들을 조율해서 조화롭게 조정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이달 말에는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중국과 경제장관회의를 한다. 이 자리에서 칩4 가입 관련 중국의 압박이 예상된다.
기재부 관계자는 “(한중) 경제장관회의에서 우리나라의 칩4 가입이 미국이 원하는 (중국 반도체 산업 배제) 방향으로 가기 위한 게 아니라는 점을 강조해야 할 것”이라며 “중국이 세계 반도체 공급망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한다면 실제로도 중국을 완전히 배제하고 칩4를 가동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과의 관계를 우려해 칩4에서 빠지는 것도 현실적으로 고려하기 힘든 경우의 수가 아니겠냐”며 “결국은 중국을 자극하지 않고 칩4 가입으로 팹리스 등 우리가 원하는 기술과 산업 협력을 이끌어야 하는 경제 외교가 중요한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8일 ‘미·중 반도체 패권 경쟁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 보고서를 통해 미국 주도 공급망 재편에 적극 참여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한국 반도체 산업은 원천기술 미확보로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산업의 해외의존도가 높은 게 큰 리스크”라며 “반도체 핵심기술 보유 선진국의 자국 반도체 기술 통제와 독점적인 기술 보유 기업들의 글로벌 시장 지배력과 동맹국 간 공급망 구조 강화는 향후 반도체 산업의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분석했다.
▲[반도체 전쟁②] “미·중 사이 낀 한국경제, 공급망 쪼개야 산다”…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