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 혁신 ‘선구자’…국민과 함께 100년 미래 책임진다
미래로 가는 한국농업의 ‘심장’으로 성장 기대
#. 농사직설은 조선 세종 때 문신인 정초, 변효문 등이 편찬한 농서다. 1429년에 관찬으로 간행해 이듬해 각 도 감사와 주, 부, 군, 현 및 경중 2품 이상에서 나눠줬다. ‘新농사직썰’은 현대판 농업기법인 ‘디지털 농업’을 기반으로 한 데일리안 연중 기획이다. 새로운 농업기법을 쉽게 소개하는 코너다. 디지털 시스템과 함께 발전하는 농업의 생생한 현장을 독자들에게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편집자 주>
“60년 전 농촌진흥청은 ‘농업과학기술로 여는 농업・농촌의 밝은 미래’라는 시대정신을 품고 첫 발을 내딛었다. 그 시간 동안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 말은 점점 잊히고 있었다.”
조재호 농촌진흥청장은 ‘농촌진흥청 60년사 이야기’ 소개글에서 이같이 말했다. 농진청 탄생 이유와 배경에 대한 함축적인 의미를 담았다. 농업이 가진 본연의 가치를 지키고, 농촌에 활기를 불어 넣기 위해 농진청이 더 분주해야 했던 60년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는 소회를 밝혔다.
조 청장은 “지난 60년 여전이 너무도 복잡다단하기에 이걸 다 풀어내 보여줄 수도 없다. 30cm 잣대로 만리장성을 측량하거나, 작은 저울로 코끼리 무게를 재는 일처럼 난감하다”며 “한국농업의 중요한 전환점에서 농진청이 어떤 혁신을 일으켰는지, 또 우리 농촌에 희망을 주는 위대한 발견과 발명은 무엇이었는지 압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조 청장은 이어 “우리는 농업 후진국에서 농업기술 수출국으로 자리를 바꿔 낸 저력이 녹아있다. 그리고 이런한 농업기술 혁신을 선도한 농진청의 역할도 담겨있다”며 “그렇다고 가진 역량을 과장하거나 보태지 않았다. 스스로 어깨를 어루만져주고, 머리를 쓰다듬어 줌으로써 앞으로 더 나아가자는 다짐이다. 대견하다고 칭찬해 주시면 농진청은 우리 농업인들이 춤 출 수 있도록 힘을 내 돕겠다”고 덧붙였다.
◆ 통일벼에서 스마트 농업까지…숨은 노력과 땀의 결실
농진청 시작은 단연 ‘통일벼’에서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전쟁 후 1960년대 초까지만 해도 냉수 한 사발로 허기를 채우는 이들이 적지 않을 정도로 식량이 부족했다. 부족한 식량으로 수입한 양곡은 전체 수앱액의 10%를 차지할 정도였다. 국제수지 적자의 40%가 양곡 수입 때문에 발생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정부도 수확량을 획기적으로 늘릴 벼 품종 개발에 많은 힘을 쏟았다. 그 첫 단추로 1965년 농진청은 필리핀 국제미작연구소(IRRI)에 벼 육종연구자들을 파견했다. 농진청은 5년간 연구개발 끝에 1970년 겨울 작물시험장 온실과 겨울농사가 가능한 필리핀에서 대량의 벼 종자를 생산했다. 이듬해인 1971년에는 이를 수원, 밀양, 이리(현 익산) 등 농업시험장에서 시험재배에 성공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1년 말 개발명 IR667을 대신해 벼 품종을 ‘통일’이라고 이름 짓고 대대적인 보급을 지시했다. 통일벼 보급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통일벼는 개발에 충분한 검토를 거치지 않아 맛이나 냉해에 약점을 보였다. 보급 첫 해 통일벼는 자연재해와 농가의 재배기술 부족으로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특히 통일벼 미질이 한국인의 입맛에 맞지 않고, 줄기가 짧아 볏짚의 유용성도 떨어진다는 이유로 보급을 주저하는 농민도 많았다.
이런 과정에서도 꾸준한 개량 품종을 개발하고 중화학공업 육성으로 농기계와 화학비료가 보급되면서 1977년에는 통일벼를 품종 개발한 ‘통일형 벼’가 전체 벼 재배면적의 절반을 넘었다. 당시 4170만섬(6000만t)을 생산했으니 괄목할 만한 성과였다. 이때부터 우리나라는 ‘빈곤국가’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지난 2009년 교육과학기술부는 ‘국가연구개발 반세기 10대 성과’에 통일벼를 첫 번째로 선정했다. 누구나 인정하는 성과라는 영예를 얻은 것이다.
1980년대는 시설재배에서 ‘백색혁명’이라는 비닐온실이 등장했다. 농진청은 1980년 철재 파이프를 골조로하는 아치형 단동 및 연동형 온실 모델을 표준화했다. 2000년대 중반 이후에는 작물별 생육에 적합한 내재해형 비닐온실 모댈 개발이 이뤄지면서 보온, 난방, 환기 기능은 물론 안전한 비닐온실이 등장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우리나라의 우수한 비닐온실 모델은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남미 등 개발도상국에 수출되면서 우린 농업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또 하나의 이정표가 됐다.
벼 농사 기계화는 2020년 기준 98.6% 수준으로 올랐다. 이제 벼 농사에서 농기계는 빼 놓을 수 없는 중요한 농업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농진청은 2012년 이후 밭작물 전 과정을 기계화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해 매년 큰 성과를 올렸다.
2012년 마늘을 시작으로 2013년 고구마, 2015년 감자, 2016년 콩과 잡곡, 2017년 무와 참깨에 대한 기계화 기술 개발에 나섰다. 2019년까지 프로젝트를 완료해 농가 노동력 절감은 물론 재배양식 표준화를 통한 증산에 기여했다.
농진청은 수 많은 성과를 이뤘다. 이제는 미래를 향한 농업기술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드론과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를 앞세운 스마트농업 시스템이다. 현재 드론은 농작물 병해충 방제작업에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다. 볍씨나 조사료 등과 같은 종자를 공중에서 파종하거나 비료, 입제 농약을 살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늘 위의 농부로 드론 쓰임새가 확장되면서 농진청은 드론의 농업적 활용을 돕기 위해 드론용 정밀 파종기 고도화 및 범용화 연구, 드론 방제 시 비산을 저감하고 효과적으로 농약을 뿌리기 위한 드론 방제기 최적화 연구 등이 한창이다.
2020년 9월에는 세계 최초로 과수에만 농약 살포가 가능한 지능형 로봇 방제기를 개발했다. 농진청은 과수원 안에서 스스로 이동하며 나무의 유무와 모양을 신속・정확하게 측정해 농약을 살포하는 스마트 로봇 방제기를 내놨다.
농진청 관계자는 “농업과 농촌의 달라지는 모습에 젊은 농부들까지 돌아오고 있다”며 “젊은 세대가 기피하는 힘든 농작업을 대신해 줄 드론과 로봇의 등장은 젊어지는 농촌, 미래가 있는 농업의 변화를 이끌고 있다”고 전했다.
◆국내 품종 개발로 글로벌 위상 높인다
2000년대 이후 지역 쌀 브랜드화는 가속도가 붙는다. 농진청 조사에 따르면 2011년 기준 전국 쌀 브랜드는 1200개가 넘었다. 이 가운데 개별 브랜드를 제외한 등록 브랜드만 419개에 달했다. 지역 공동브랜드 132개와 287개 개별 브랜드가 난립했다.
우리나라 쌀의 진화는 2021년에 또 다른 단계에 접어들었다. 브랜드 쌀 원료곡 국산화를 위한 수요자 참여형 벼 품종 개발 및 사업화가 본격과 된 것이다.
현웅조 농업연구사는 “수요자 참여형 벼 품종 개발 프로그램(SPP)은 결과적으로 이해 당사자가 지역특화 신품종 개발과 산업화에 참여하는 상생 모델”이라며 “외래 품종보다 우수한 지역특화 브랜드 맞춤 품종 개발 확대로 식량안보와 종자주권 강화가 더욱 탄탄한 반석 위에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딸기 ‘설향’은 대표적인 개량 품종으로 꼽히는 과일이다. 농진청이 지난해 9월 3일부터 15일까지 소비자 1000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설문조사인 ‘농진청 10대 대표 농업기술’에서 딸기 품종 국산화가 1위로 꼽혔다. 우리나라에서 ‘설향’은 한 번쯤 들어봤을 만큼 익숙한 품종이다.
현재 우리나라 시장에 유통되는 딸기 가운데 열에 여덟은 설향이다. 뿐만 아니다. 설향의 국내 시장점유율이 84% 이상인 가운데 18종의 국산 품종이 나머지 점유율을 두고 다투고 있다. 국산 품종만으로 점유율 96%를 차지하고 있다.
그동안 막대한 ‘로열티’를 지불하고 수입하던 ‘장미와 국화’도 국내 품종 개량에 성공하며 우리나라 화훼농가에 단비를 뿌렸다. 우리나라에서 장미는 화훼시장의 40%를 차지할 정도로 대체 불가다. 당연히 수입하는 장미에 지불하는 로열티도 만만치 않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농진청은 산・학・연 공동연구체계를 확립해 198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 100여개 장미 품종을 개발했다. 대표적으로 ▲펄레드 ▲모닝샤인 ▲매직레드 ▲체리티 ▲핑크벨 ▲핑크홀릭 등이 있다.
장미에 이어 세계 절화시장 3강을 형성한 국화에서도 세계의 이목을 끄는 아이가 탄생했다. 2004년 육종한 품종 ‘백마’가 그 중인공이다. 국화의 나라로 불리는 일본에서도 열광할 정도로 빼어난 자태를 자랑한다.
신학기 농진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화훼과 팀장은 “2000년부터 2004년까지 4년여에 걸쳐 품종 개발이 진행됐다”며 “일본 품종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이었기에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그 결과 절화 수명이 1개월에 달하면서도 꽃잎 수가 많고 볼륨감이 우수한 국내 유일의 대국 품종이 백마가 탄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각고의 노력 끝에 개발한 우리 품종은 2015년 이후 외국에서 로열티를 받는 작물로 성장했다. 장미・딸기・국화・키위・이탈리안 라이그라스 등 5개 작물, 25개 품종으로 약 21억800만원을 벌어들였다. ‘로열티를 주는 나라’에서 ‘로열티를 받는 나라’로 품종 주권을 바꾸는데 농진청의 숨은 노력이 있었던 것이다.
컬러 푸드는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분야다. 본래 주황색이던 당근이 노랑, 보라, 검정 등 다양한 색으로 변신한 레인보우 당근이 대표적이다. 보라색 당근에는 당근에 부족한 안토시아닌 성분이 다량 함유돼 항상화 효과가 높다.
골드키위의 등장도 이런 흐름과 무관치 않다. 기존 초록색과 달리 속이 노란 골드키위는 당도와 영양가가 높고, 독특한 색으로 신선한 매력을 주면서 키위의 인기를 되살렸다. 골드키위의 인기에 농진청도 2000년대 이후 골드키위 개발에 주력해 당도가 뛰어난 국산 골드키위 ‘감황’과 ‘선플’을 개발했다.
지난 2020년부터 농진청은 제주 서귀포 성산 지역 농가와 함께 국산 개발 품종인 감활의 특화단지를 조성해 2023년 첫 수확을 앞두고 있다. 농진청은 이외에도 붉은색, 연녹색 포도와 녹색, 붉은색 배 등 다양한 색의 과일을 개발, 보급하고 있다.
품종 개발에서 빼놓을 수 없는 ‘현재진행형’ 성과는 바로 밀이다. 우리나라 밀가루 사랑은 밀을 주식으로 하는 나라들 못지 않다. 그러나 우리 밀의 자급률은 바닥을 치고 있다. 밀의 정부수매가 중단되고 가격 차이가 3~4배로 벌어지면서 밀 자급률은 1990년대 0.05%까지 떨어졌다.
이런 암흑기의 긴 터널을 거친 밀은 2022년 1월 농림축산식품부가 예산 238억원을 들여 추진하는 ‘밀산업 육성법’으로 한줄기 빛을 보는 전환기를 맞았다. 밀산업 육성법은 밀 종자부터 생육 관리, 수확, 수확 후 관리, 소비 등 전반에 걸친 기반 확충에 나서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오는 2025년까지 밀 자급률 5%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김경훈 농진청 국립식량과학원 박사는 “미래 식량에 대한 위기의식을 감지하고, 우리나라 내 밀 생산량을 늘려 수입에 의존하지 않게 자생능력을 키워나가는 국가적 차원에서 접근이 필요하다”며 “안전한 먹거리 관점에서도 우리 밀은 친환경적이다. 국내 생산 밀은 수입 밀과 비교해 운송거리가 짧아 탄소중립에 유용하다”고 말했다.
◆미래를 향한 발걸음…농진청의 믿음과 헌신
농진청은 1962년 4월 1일 국민의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가장 중요한 산업인 농업을 지속・발전시키기 위해 설립됐다. 1960~70년대 ‘통일벼’ 품종을 개발・보급해 식량자급 시대를 열었다. 1980년대에는 비닐하우스 기술 개발로 백색혁명의 일등공신에 올랐다.
이후 우리 쌀 품질고급화, 친환경 유기농업 개발, 우량 가축 개발, 우리 품종 개발・보급, 4차 산업 혁명기술을 접목한 스마트농업 등 농어기술 혁신을 선도하며 농업・농촌 발전에 기여해 오고 있다.
농진청은 지난 2014년 7월 전북 전주시 덕진국 농생명로 300번지에 새롭게 터를 잡았다. 국립농업과학원도 함께 전북혁신도시로 이전했다. 2015년 4월에는 국립식량과학원, 국립원예특작과학원, 국립축산과학원이 이전해 우리나라 농업기술 개발・보급의 컨트롤 타워가 한자리에 모였다. 2018년에는 한국농업기술진흥원이 익산으로 이전해 우리나라 미래농업을 새롭게 그려나갈 농촌여지도가 완성됐다.
농진청은 ‘미래 농촌의 설계자’로 꼽힌다. 미래농업의 주역인 청년농의 창업과 영농 정착을 돕고 있다. 지속가능한 농업과 안정적인 먹거리 공급을 위해 농업・농촌 현장에서 필요한 기술을 개발・보급 중이다.
국립농업과학원은 ‘과학농업의 선구가’로 불린다. 종자 보존과 관리로 종자강국의 위상을 확보하고, 유전체 등 오믹스 연구로 농업생명공학을 선도하고 있다. 누에와 꿀벌 부가가치화와 곤충 식량화를 위한 노력도 경주하고 있다.
‘식량안보 파수꾼’ 국립식량과학원은 식량자급률 향상을 위한 맞춤형 품종 개발로 ‘통일벼’에서 ‘바로미’까지 쌀의 진화를 이끈 주인공이다. 데이터 기반의 노지 스마트농업 기술・개발도 과학원의 역할이다. 기후변화 대응 탄소저감 등 농업이 미래성장산업으로 우뚝 서도록 기반 마련에 힘쓰고 있다.
원예특장 농업기술의 산실인 국립원예특작과학원은 채소와 꽃, 인삼과 버섯, 그리고 약용식물의 새로운 품종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최근에는 기후변화에 대응, 병충해 연구를 통해 원예특작산업의 미래가치를 높이고 있다.
축산기술 개발의 요람 국립축산과학원은 가축 유전자원의 다양성을 확보하고 국가 단위 가축 개량을 통한 축종별 생산성 제고에 주력한다. 동물복지 사양기술, 반려동물 연관 산업 육성 지원 등 현장에 꼭 필요한 기술을 연구하는 기관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축산업을 이끌 융・복합 첨단 축산기술 개발에 매진 중이다.
▲9월 8일 [新농사직썰㊼]이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