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세 강행한 영국 총리, 44일 만에 퇴진
‘닮은 꼴 정책’ 추경호표 감세안 ‘위기’
야당 반대 설득 자신 없으면 대안 내놔야
“상황을 고려했을 때 보수당에 의해 선출된 권한을 수행할 수 없음을 인정한다. 다음 주 후임자가 결정될 때까지 총리직에 머물겠다.” -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
리즈 트러스 영국 신임 총리가 지난 20일(현지시간) 사임했다. 취임 44일 만에 사임하면서 그는 영국 역사상 최단명 총리라는 오명을 얻었다.
트러스 총리의 사임은 그가 대표로 내세웠던 감세 정책 추진 실패가 치명적으로 작용했다. 트러스 총리는 지난달 23일 줄어드는 세수에 따른 구체적 대안 없이 대규모 감세안만 발표해 금융시장 대혼란을 자초했다.
재원 마련을 위해 국채 발행이 급증할 것이란 전망에 영국 국채 가격이 급락했다. 파운드화 가치는 한때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트러스 총리는 감세 정책 혼선의 책임을 물어 임명한 지 38일 만에 재무장관을 경질해 정책 실패를 자인했다.
트러스 총리 사임이 우리 정부에 던지는 시사점은 꽤 크다. ‘닮은 꼴 정부’라고 불릴 만큼 한국과 영국은 감세를 중심으로 유사한 경제 정책을 예고해 왔다. 그런 두 국가 가운데 한 나라의 책임자가 정책 실패를 자인하고 물러났다. 남은 사람은 같은 전철을 밟지 않아야 한다.
우리나라 감세 정책은 사실상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이끈다. 감세 정책만 놓고 보면 우리 정치권 현실은 영국보다 녹록지 않다.
전체 국회의석 300석 가운데 169석을 차지한 거대 야당은 감세 정책 전반에 반대한다. 감세 정책 가운데 가장 대표라 할 수 있는 법인세 감면은 ‘부자 감세’, ‘대기업 특혜’로 간주하고 반드시 저지한다는 입장이다.
감세 정책은 법을 고치지 않으면 사실상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국회 의석수가 절대 부족한 여당으로선 야당 협조 없는 감세 정책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지난달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아시아개발은행 연차총회 때 추 부총리는 동행 기자단과 만찬 자리를 가진 바 있다. 당시 기자는 추 부총리표 감세안이 야당 반대로 국회 통과가 불투명하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른바 ‘플랜B’를 갖고 있냐고 질문한 적 있다.
당시 추 부총리는 “플랜B는 없다. 무조건 야당을 설득해서 감세안 통과를 이끌겠다. 그게 나의 역할이고, 이를 위해서 계속 야당 정치인들을 만나 설득 중이다”라고 말했다.
‘플랜B는 없다’는 추 부총리 답변은 사실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정치인 출신 각료로서 이미 플랜B, 플랜C까지 갖고 있으면서 자신의 의지를 강조하기 위한 표현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만약, 정말 대안이 없는 상황이라면 상황은 복잡해진다. 아니 심각해진다. 판단에 따라 감세 정책에 관한 찬반은 다를 수 있으나 추 부총리표 감세안은 윤석열 정부 경제 정책 근간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감세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다면 윤석열 정부 경제 정책은 송두리째 흔들리게 된다. 대안을 준비해두지 않으면 경제 전반이 위태롭다.
추 부총리는 영국과 우리나라는 재정 상황이 달라 감세 정책에 따른 후폭풍은 없다고 자신한다. 이 또한 사실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문제는 우리나라 재정 상태가 건전하다는 논리만으로는 야당 반대를 꺾기 힘들다는 점이다.
추 부총리는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가뜩이나 고물가로 내수는 침체하고, 역대급 고환율에 무역수지도 날로 악화하고 있다. 미국의 주요 경제 기관들은 내년에 미국을 시작으로 세계적인 경기 침체를 예고한다. 어쩌면 우리 경제에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을 수 있다.
추 부총리는 야당을 설득할 비책을 내놓거나 그게 아니라면 감세안을 대신할 새로운 경제 정책을 그려내야 한다.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감세안은 거둬들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