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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시법은 폼인가…전장연‧GTX 등 민폐 시위에 시민만 고통


입력 2022.11.28 18:37 수정 2022.11.29 08:52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지하철 지연 운행 유발 전장연 시위로 출퇴근길 수시 교통대란

은마아파트 GTX-C 노선 수정 시위로 일반 주택가 주민 고통

경찰 통제 불응해도 제재 수단 사실상 없어…집시법 개정안은 국회서 낮잠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8일 서울 용산구 삼각지역에서 '윤석열 대통령님 휴가는 잘 다녀오셨습니까? "제35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를 예고하는 용와대 행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김민호 기자

아침 지하철 시위로 출퇴근길에 고통 받고 집에서는 주택가 시위로 소음에 시달린다. 본인과는 무관한 사안과 관련된 불법 시위로 무고한 시민들이 피해를 입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28일 경찰청에 따르면 올 1~8월 중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을 위반한 불법 폭력 시위 적발 건수는 251건에 달한다. 8개월간 집계한 수치지만 이미 지난 4년간 연평균치인 246건을 넘어섰다.


이대로라면 297건의 집시법 위반 사건으로 549명이 검거됐던 2021년을 넘어 최근 5년 내 최다치를 경신할 것으로 전망된다.


집시법 위반 시위의 상당수는 집단이기주의와 연관된, 이른바 님비 시위다. 나아가 법 테두리 내에서 특정 사안의 협상 당사자가 아닌, 제3자나 일반 시민들의 불편을 고의로 야기하는 근거 없는 이기적 시위 역시 적지 않다.


대표적인 사례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다. 장애인의 권리 예산을 요구하는 전장연은출근길 열차 운행 지연으로 인한 다수 시민들의 불편 호소에도 아랑곳 않고 시위를 재개했다.


은마아파트 재건축 추진위 일부 주민들은 국책사업으로 추진 중인 GTX-C 노선의 수정을 일방적으로 요구하고,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국책사업 협의 주체가 아닌 기업인의 자택 앞에서 2주 넘게 막무가내 식 민원성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이곳은 해당 기업인 뿐 아니라 다수의 시민이 사는 주택가다. 인근 주민들도 함께 고통 받아야 하는 실정이다.


은마아파트 일부 주민들은 국책사업인 GTX-C 사업의 담당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와 해당 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인 현대건설이 아닌, 일반 주택가에서 무리한 시위를 벌이고 있어 사업과 관련이 없는 일반 시민들의 불편을 볼모로 한 무리한 시위라는 비판이 높아지고 있다.


23일 서울 강남구 강남구민회관에서 수도권광역급행철도 C노선(GTX-C) 민간투자사업 은마아파트 간담회가 열리고 있다. ⓒ데일리안 김민호 기자

지난 6월 이른바 ‘쿠팡 사태’ 때도 무고한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당시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에 입점한 식당과 병원, 약국 등의 업주들은 로비를 점거한 채 대표 면담을 요구하는 노조로 인해 매출 감소, 소음, 흡연 피해 등 3중고를 겪었다. 이들은 경찰에 탄원서를 제출하고 집회를 막아줄 것을 호소했지만 소용없었다.


님비 시위의 또 다른 특징은 시위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소란을 피운다는 것이다. 북과 꽹과리 등 시끄러운 악기를 동원하거나 대형 확성기를 통해 고성을 지르고 장송곡을 재생하는 등 악의적 소음을 동원해 거주민들이나 주위를 오가는 시민들에게 고통을 준다.


집시법 시행령은 집회 및 시위로 인한 소음이 주거지역 등에서 주간 65데시벨(dB), 야간 60데시벨, 기타지역은 주간 75데시벨, 야간 65데시벨을 넘으면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규정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제재도 이뤄지지 않는다. 지난해 집회 소음 관련 112 민원건수는 2만2854건으로, 일평균 62건을 상회했으며, 피해 지역도 도심과 주거지역을 가리지 않았다.


실제, 지난 2021년 11월 인천 영종 하늘도시 내 한 아파트 신축 건설현장에서는 자신들의 인력과 장비를 사용하라는 건설노조 측이 새벽 6시부터 확성기와 음향기기를 동원한 집회를 벌였고, 인근 시민들이 극심한 스트레스와 자녀 육아 및 교육에 대한 악영향을 호소하며 서명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법망을 교묘하게 피해가며 시민 불편을 초래하는 이들도 있다. 일부 시위대는 1시간에 세 번 이상 소음 기준을 초과해야 경찰 개입이 가능하다는 규정을 악용해 1시간에 두 번만 기준을 초과하는 큰 소리를 내거나, 5분간 강한 소음을 내고 후 나머지 5분간 방송을 꺼버리는 식으로 단속을 회피하는 편법도 동원하고 있다.


욕설이나 입에 담기 어려운 모욕성 발언을 반복해 사생활을 해치는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로 인한 피해도 심각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집시법에 따르면 ‘사람에 모욕을 줄 수 있는 구호나 낙서 등으로 사생활의 평온을 뚜렷하게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규제가 가능하도록 돼 있지만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준 자체가 애매하고 자의적 해석 우려가 있어 실제로는 거의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삼성 서초사옥 앞 시위대가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내뱉는 욕설과 장송곡이 사옥 1층에 위치한 어린이집까지 울려 퍼지는가 하면, 2년 전에는 한 시민단체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자택 앞에서 ‘폭식 투쟁’이라며 삼겹살을 굽고 술판을 벌이는 등 기업과 기업인을 향한 조롱을 서슴지 않기도 했다.


시위 참가자들이 불편을 호소하는 시민을 향해 욕설을 하거나, 일부 유튜버들 간 충돌하는 상황도 시위 현장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광경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처럼 집회와 시위가 타인의 기본권이나 중대한 공익을 침해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는 공권력이 미치는 범위를 확장하는 등 집시법 개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 집시법으로는 위반을 제재하기도 힘들고, 제재하더라도 처벌이 강하지 않으니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행 집시법상 경찰의 소음 기준 유지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6개월 이하 징역 또는 5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지만, 최근 6년 동안 형이 확정된 건 19건에 불과하고, 이중 대부분은 벌금 20~50만원에 그치고 있다.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얘기가 나올 만한 실정이다.


또한 시위가 예정된 종료 시각을 넘기거나 신고 장소를 벗어나더라도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이 아예 없어 경찰의 현장 통제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같은 상황에서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집시법 개정안이 조속히 통과돼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지고 있다.


한병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기준 이하의 소음이라도 악의적 표현으로 신체‧정신 장애를 유발할 정도라면 금지’하고 있고, 같은당 박광온 의원은 ‘소음과 모욕 등으로 사생활의 평온을 해치거나, 공포심을 유발하는 음향및 영상을 반복 재생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집회의 자유와 다른 기본권 간 균형점을 찾기 위한 20여 건의 집시법 개정안은 여야 정쟁 속 국회에 계류 중이다.


국회가 개인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집회에 대해 강하게 규제하고 있는 해외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프랑스는 집회 소음이 주변 배경소음보다 주간 5데시벨, 야간 3데시벨을 초과할 수 없도록 규제하고 있다. 미국은 소음 유발 행위에 대한 처벌 규정을 두고 있으며, 장기적으로 소음을 발생시킬 경우 수수료를 부과하거나 집회 및 시의를 위해 공공전기를 사용하려 할 때 관할 지자체와 사전 협의토록 하는 등 집회‧시위 자유와 시민의 생활권을 함께 보장하는 방안을 시행하고 있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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