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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의 추락 불러올 다섯 가지 리스크 [기자수첩-산업IT]


입력 2023.01.25 07:00 수정 2023.01.25 07:00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①제도권 자동차 시장에 대한 몰이해 ②지역별 소비자 특성 무시

③머스크의 기행 ④얼리어답터 시대의 종결 ⑤위기대응능력 부재

서울시내 한 대형쇼핑몰에 설치된 슈퍼차저에서 충전 중인 테슬라 차량의 모습. ⓒ뉴시스

테슬라를 빼놓고 전기자동차 산업을 논하긴 힘들다는 데 반론의 여지는 없다. 테슬라, 그리고 테슬라의 최대주주이자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는 소비자들이 전기차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미적거리던 시점에 레거시(전통 제도권) 자동차 업체들이 갖지 못한 혁신적 제품과 제조방식, 판매시스템을 앞세워 전기차 시장을 열었다.


휴대폰이라고는 만들어본 적도 없던 애플이 스마트폰 시대를 연 것처럼, 21세기에 들어서야 자동차 시장에 뛰어든 테슬라가 전기차 시대 개막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최근 테슬라의 행보를 보면, 이 회사가 지금껏 스마트폰 시장의 강자로 군림하고 있는 애플처럼 앞으로도 전기차 시장을 주도해 나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많은 의문이 생긴다. 변방에서 느닷없이 등장한 이방인의 한계인지, 성공에 취한 자의 오만함의 발로인지 모르겠지만 곳곳에서 위험 신호가 들려오고 있다.


테슬라 모델3. ⓒ테슬라

대표적인 게 최근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시장 곳곳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갑작스런 가격 인하다. 하루아침에 1000만원 이상 가격을 낮추며 기존 테슬라 구매자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업계는 이를 두고 제도권 자동차 시장에 대한 몰이해(沒理解)에서 비롯된 혼란으로 보고 있다. 이게 테슬라가 직면한 첫 번째 리스크다.


자동차는 한번 쓰고 버리는 소비재가 아니라 오랜 기간 사용할 수도 있고, 중간에 처분해 현금화할 수도 있는 내구재다. 상당수의 서민들에게 자동차는 부동산을 제외하고 가장 가치 있는 재산이다. 레거시 자동차 업체들은 이를 감안해 가격 정책에 변화를 주더라도 기존 판매된 차의 잔존가치, 즉 중고차 가격에 큰 영향을 주진 않을 정도로 변동폭을 제한한다.


하지만 테슬라는 이런 무언의 시장 법칙을 어겼다. 소비자들은 단지 오늘보다 비싼 어제의 가격에 테슬라 차를 구매해서 억울한 게 아니라 당장 내가 가진 차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에 분노한다.


재고가 쌓였으니 싼 가격에 ‘땡처리’하겠다는 단순무식한 전략은 당장 중국 등 일부 시장에서 판매 증대 효과를 일으킬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테슬라의 브랜드가치와 신뢰성에 심각한 타격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9일 세종시 한 국도에서 발생한 테슬라 화재 사고 모습. YTN뉴스 갈무리

두 번째. 지역별 소비자 특성에 대한 무지(無知) 혹은 무시(無視) 역시 테슬라가 가진 치명적 약점이다. ‘좋은 제품은 어느 지역에서건 잘 팔린다’는 생각은 지금까지는 통했을지 몰라도 앞으로는 그렇지 않다.


최근 국내에서 잇달아 발생하고 있는 테슬라 차량 화재사고, 그리고 그 과정에서 차량 밖에서 문을 열지 못해 운전자를 구조하지 못하는 상황은 테슬라에 ‘불타는 관짝’이라는 오명이 붙는 계기가 됐다.


한국 업체들이 만드는 전기차는 사고 발생시 자동으로 잠금장치가 풀리고, 전원이 끊겨도 안에서건 밖에서건 문을 열 수 있도록 돼 있다. 하지만 테슬라 차량은 사고로 전기 공급이 안되는 상태에서 탑승자가 정신을 잃으면 외부에서 문을 열고 구조할 수 없도록 해 놨다.


이는 사고 발생시 2차 도난 사고나 탑승자에 대한 가해 사건이 빈번한 미국 시장의 특성에 맞춘 설정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한국에서 미국차 브랜드별로 연간 5만대 미만까지는 미국 안전 규정만 맞춰도 되니 그런 차를 그대로 들여온 것이다.


하지만 제도적으로 문제가 없다 한들 한국 소비자들에 대한 배려가 있었다면, 한국에서는 사고차의 주변에 문을 열고 도둑질을 하려는 인간말종보다 부상자를 구조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는 정의로운 시민이 있을 확률이 절대적으로 높다는 점 정도는 생각했어야 했다.


테슬라는 국내 뿐 아니라 중국 시장에서도 각종 결함에 대한 안이한 대응으로 차량 구매자들의 시위를 촉발시키는 등 현지 소비자들을 대하는 데 어설픈 모습을 보여 왔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로이터/연합뉴스

세 번째. CEO 일론 머스크의 예측 불가능한 기행(奇行)도 테슬라가 가진 큰 리스크로 꼽힌다. ‘예측 불가능’은 간혹 ‘혁신’과 등치되기도 하지만, 일단 시장에서 높은 지배력을 갖게 된 기업으로서는 최소화해야 할 부분이다.


머스크는 마블의 인기 캐릭터 아이언맨의 모티브가 될 정도로 ‘혁신’을 상징하는 인물이었고, 그런 혁신적 이미지가 테슬라의 브랜드 파워로 이어지며, 이는 다시 머스크의 유명세를 높여주는 선순환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미 세계적으로 큰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 위치에서 종종 이뤄지는 그의 기행은 수많은 팬들의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잇단 폭탄발언으로 테슬라 주가를 급등락시키고 가상화폐 시장을 뒤흔든 일부터, 트위터를 인수해 전체 직원의 절반을 내보내고 콘텐츠 관리 정책을 변경하며 유력 언론사 기자 계정을 무더기로 정지시킨 일까지 그의 온갖 기행은 본인 뿐 아니라 테슬라의 이미지에도 먹칠을 했다.


글로벌 정·재계 리더들의 모임인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 초청자 명단에 머스크가 제외된 것은 그의 명성이 그가 가진 재산과는 다른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서울 영등포구 테슬라 스토어의 모습. ⓒ뉴시스

네 번째. 테슬라나 머스크의 잘못은 아니지만, 전기차 시장에서 벌어질 얼리어답터 시대의 종결 역시 이들의 미래를 불투명하게 만든다.


전기차 시장 초기에 테슬라는 전기차의 대명사였고, 혁신의 상징이었다. 즉, 테슬라를 타는 것 자체가 ‘남들보다 한 발 앞서 혁신적 아이템인 전기차를 타고 다닌다’는 얼리어답터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일이었다. 그런 자부심 하나로 높은 가격과 다소의 불편함도 감수하는 게 얼리어답터의 특성이다.


하지만 전기차 시장의 빠른 성장은 역설적으로 전기차 시장 태동을 이끈 테슬라에게 불리한 상황을 만들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시장 조사업체 LMC오토모티브와 EV볼륨닷컴에 따르면, 지난해 전세계 전기차 판매대수는 780만대로 전체 신차 판매량의 9.7%를 차지했다. 올해는 이 비중이 10%를 훌쩍 넘길 게 확실시된다.


전체 시장의 10%를 넘는다는 것은 얼리어답터 시장에서 대중 시장으로의 전환을 뜻한다. 이제 ‘신기한 차’를 좇는 게 아닌 ‘제대로 된 차’를 사려는 소비자들을 상대해야 한다.


테슬라는 이 점이 미숙하다. 고급스럽지도 않고 세심하지도 않으며, 심지어 단차(부품사이의 틈) 논란 등 조립품질이나 마감이 허술하다는 혹평까지 받는 테슬라가 오랜 기간 소비자들의 눈높이에 맞춰 자동차를 만들어 온 레거시 업체들의 감성 품질을 따라잡는 것은 무리다. 메르세데스-벤츠나 BMW와 같이 길게는 100년의 전통과 역사를 지닌 브랜드가 가진 신뢰성도 테슬라에는 기대할 수 없다.


앞서 언급했듯이 테슬라는 소비자들을 끌어안고 시장 저변을 넓히는 데도 전혀 소질이 없다. 자사의 전용 충전소만 늘리고 전기차 전체 인프라를 확대하는 데는 무관심한 게 대표적이다. 레거시 업체들의 빠른 전기차 시장 진입은 이런 테슬라의 단점을 부각시켜줄 가능성이 높다.


2021년 7월 13일 머스크가 미 델라웨어주 윌밍턴의 재판소를 나서고 있다. AP/뉴시스

다섯 번째. 위기대응 능력의 부재는 글로벌 경기 침체에 따라 불황으로 접어드는 자동차 시장 환경에서 테슬라를 레거시 업체들보다 더 큰 위기로 몰아넣을 수 있다.


매도 맞아본 놈이 잘 맞는다고 했다. 오랜 기간 수많은 위기를 넘기며 성장해 온 레거시 업체들과 달리 테슬라는 어릴 적 성장통은 겪었을지언정, 전기차 시장 선두주자로 자리잡은 이후로는 심하게 고꾸라져 본 경험이 없다. 위기 상황에서는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 그에 적합한 대응 전략을 마련해야 하지만, 머스크의 지나친 자신감은 그런 신중한 움직임을 차단시키는 역할을 할 여지가 높다.


머스크는 지난해 8월 테슬라 연례 주주총회에서 “연 생산 2000만대 달성을 위해서는 기가팩토리가 최소한 10~12곳은 돼야 하고, 공장마다 150만~200만대는 만들어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지난해 판매가 계획만큼 이뤄지지 못하며 잉여 생산물량이 6만대를 넘어섰음에도 불구, 머스크는 자신이 공언한 기가팩토리 증설 계획을 밀어붙이는 모습이다. 최근 인도네시아에 기가팩토리를 건설하기 위한 현지 정부와의 협상이 잠정 합의에 근접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물론 불황에도 전기차 시장은 계속 성장하겠지만, 불황일수록 레거시 업체들이 전기차 시장 공략에 목숨을 걸 것이라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현대차그룹 싱크탱크인 HMG경영연구원은 올해 글로벌 시장에 출시될 전기차 신차가 74종에 이를 것으로 분석했다.


반면 머스크는 현재 전기차 시장에서의 테슬라의 점유율을 전기차 시장 성장률에 대입하는 단순 곱셈 방식으로 시장에 대응하는 듯하다.


시장 상황을 정확히 예측하고 적절한 전략을 짜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그 전략이 엇나갔을 때 닥친 위기를 현명하게 타개하는 것이다. ‘매를 맞아본’ 경험이 없는 테슬라가 효과적인 위기 대응 매뉴얼을 갖추고 있을지 의문의 시선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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