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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인터뷰] ‘순수의 힘’ 감독 이창열, 영화 ‘그대 어이가리’ 끝에서 시작한 이야기②


입력 2023.03.09 10:04 수정 2023.03.13 11:36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명장면 탄생 배경부터 늦깎이 감독의 일상까지

'영화의 주연' 배우 정아미와 선동혁(왼쪽부터), 화면 뒤에 존재하는 '작품의 주역' 감독 이창열 ⓒ영화 '그대 어이가리' 스틸컷, 이하 ㈜영화사 순수 제공

[D:인터뷰] ‘순수의 힘’ 감독 이창열, 영화 ‘그대 어이가리’ 끝에서 시작한 이야기①…에 이어서



8. 딸 수경의 옷차림이 매우 센스 있다고 생각했습니다.김유미 배우가 상당히 육감적인데 이를 일상으로 끌어내리는 데 한몫합니다.자칫 ‘의사의 아내’로 화려하게 보일 수 있는데수경의 옷차림만으로도 두 사람이 그저 사랑해서 결혼했고,남편 역시 부유하고 잘나가는 상류층이 아니라 생활형 대출개업 의사일 거라는짐작을 가능케 합니다. 정아미 배우의 옷차림도 너무 좋습니다.너무 튀지 않으면서도 다채롭게 여성성이 잘 보이고,연희가 얼마나 곱게 살아왔는지를 알게 하고,고운 여인과 그에게 닥친 불행이 큰 대조를 이루며 비극을 심화시킵니다. 제작비 적은 영화임에도 의상에 마음을 기울이셨다는 인상을받았습니다. 의상에 어떤 의도들을 담으셨는지 궁금합니다.


“기본적으로 의상을 담당해 주셨던 이유숙 감독님의 안목은 탁월하셨고요. 저는 그런 감독님을 믿고 저의 의견을 소신껏 말씀드리고 소통했었던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수경이 의상에 대해서는 김유미라는 배우가 미인대회에서 우승한 경력(2012년 미스코리아 진)을 가진 배우다 보니 자칫 의상을 잘못 선택했을 경우 배우의 얼굴로 시선이 갈지도 모른다는 고민을 했고 되도록 예쁘지 않은 의상, 평범한 의상을 지향했습니다. 연희의 의상에 대해서는 젊었을 적 한국무용을 했던 경험이 있으니 너무 화려하거나튀지 않으면서도 우아한 자태가 묻어 나오는 의상이면 좋겠다, 이유숙 감독님께 말씀을 드렸더니감독님도 같은 생각이라며 공감을 해 주셔서 다행히 영화 캐릭터에 잘 어울리는 의상으로 촬영에 임했던 것 같습니다.”


곱디고운 엄마 연희, 딸 수경의 현몽 장면. 아름다운 꽃상여는 영화를 통해 확인^^ ⓒ

9. 꽃상여도 아름답습니다.상여와 만가, 상여가 지나는 다리와 가로등이 잘 어우러집니다. 그 다리 아래로 이승에서의 기억을 잊게 하는 ‘레테의 강’이 흐르고 있을 것만 같은 풍경과 흥취가 그 장면에 담겨 있습니다.저승으로 가는 길이 이럴 수 있다면, 소풍을 끝내는 것도 괜찮겠다 싶은 장면이었습니다.이 장면에 어떤 얘기와 생각들을 담으셨는지,꽃상여에 어떤 공을 들이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어릴 적 꽃상여를 많이 보고 자란 탓에 그 장례 문화가 너무 아름답고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었습니다. 전 세계의 장례 문화를 통 털어도 우리의 꽃상여만큼 좋은 장례식 문화가 또 있을까 할 정도로 아름다운 문화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프롤로그에 상여를 등장시키고 에필로그에 또 상여를 등장시킵니다. 물론 시대가 다르고, 낮과 밤을 달리하여 상여를 등장시키지만 아름다운 죽음의 의식이라는 숭고함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에필로그에서의 상여는 일반 우리가 보아왔던 풍경하고는 완전히 다른 일종의 ‘메타포’를 상기하고자 했습니다. 인간이 죽으면 결국 땅에 묻힌다는 고정 관념을 깨고 밤하늘의 별을 따라 부유하듯 날아갈 거라는, 누구나 죽음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희망을 꿈꾸게 하고 싶었습니다. 극 중 연희도 소풍 가듯, 밤하늘의 별을 따러 가고 싶었다는 소망을 얘기했듯이 저 또한 죽음은 끝이 아닌 새로운 세계로의 여행을 시작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다리 위에서 나가는 꽃상여는 옛날 우리 선조들이 만들었던 제작 문화를 거의 그대로 계승하여 3개월에 걸쳐 만든 상여로 모든 틀과 장식을 원목을 깎아서 만들었습니다.의상감독님의 노력과 희생이 없었으면 그 상여는 탄생하지 못했을 만큼 공을 들였고, 그 상여 위에 조명감독님과 미술감독님이 수백 개 전구들을 붙이는 작업을 통해 최고의 장면이 연출되었다고 생각합니다.”


10. 말씀하셨듯 영화의 처음도 장례로 시작합니다. 소박하면서도 한국 장례문화의 혼을 담백하게 잘 보여주었습니다.이 예술영화의 규모가 예상보다 크고, 그것은 역사적으로도 꽤 깊을 거라는 예감을 관객에게 줍니다. 첫 장면을 과거의 장례 장면으로 시작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영화의 완성도는 시작과 끝을 구성하는 내러티브가 얼마나 잘 녹여져 있는지, 그 시작과 끝의 정서와 공감성이 얼마나 잘 배치되었는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결말을 돋보이게 하고자 일부러 같은 설정을 한다고 해서 영화의 완성도가살아나거나 관객들을 공감 시킬 수는 없습니다. 우리 영화 또한 얄팍한 수를 계산하고 시작을 장례 장면으로 한 건 아닙니다. 등장하는 인물, 만가를 부르고 북을 치는 동혁의 ‘뿌리’를 어떻게 하면 설명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다 보니 첫 장면을 장례식 장면으로 영화를 시작했습니다.”


영화의 시작을 장식한 소박한 상여와 구성진 만가 ⓒ

11. 한국의 전통문화를 상징적으로 드러낼 뿐 아니라 스토리 면에서도 첫 장면은 깊은 역사성 속에 시작됩니다. 가족이 아니면서도 대신 울어주는 곡소리 아낙,상엿소리 하는 남편,그리고 엄마 손에 불려와 빈대떡 얻어먹던 아이가 자라 한국의 소리와 북과 춤의 대가(윤동혁)로 성장합니다.그 아낙과 남편의 아이가 유전자를 대물림하되 변변치 않은 어른이 된 것보다 전통음악 전문가로 성장한 오늘을 반갑게 합니다.그 뿌리를 부끄럽지 않게 합니다. 이런 세심한 부분에 대해 마음 쓰시는 감독님이 계신 게 반가웠습니다.평소 우리 역사나 주변 사람들의 인생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시면 이런 시선을 갖게 되는지 궁금합니다.


“오천 년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를 돌이켜 보면 수많은 외세와 침략 속에서도 결국나라를 지키고 유지해 올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뿌리를 잊지 않고 이어오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그중에 우리 민족이 유독 강한 DNA가 있다면 예술혼이 아닐까 합니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K컨텐츠라는 용어가 이렇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지 누가 알았습니까? 대한민국 문화가 전 세계를 지배하고 리더를 해 나갈지 감히 상상이나 했을까요? 천연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는 길은 바로 이런 유전자를 가진 인재들을 발굴하고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12. 장례로 시작해 장례로 끝나는데, 영화는 죽음, 인생의 끝을 말하고 있지 않다고 느껴졌습니다.삶, 다시 시작을 말하는 것으로 다가왔습니다. 삶 바로 곁에 있는 죽음,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인생, 그것을 제대로 알고 받아들일 때오히려 지금의 삶에 더 열정을 갖게 하고 어떻게 살 것인지를 생각하게 한달까요.북엔딩(책의 표지, 앞과 뒤가 같듯 처음과 끝이 같은) 기법과도 같은 이야기 구조,어떻게 고안하신 걸까요?


“(9번에서) 언급했듯이,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인간은 물론이고 생명을 가진 그 어떤 동, 식물들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부류는 없을 것입니다. 그중에 특히 인간은 더더욱 그럴 것입니다. 영원히 살 것 같았던 삶을 내려놓고 죽음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이 존재가 사라진다면 그 두려움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무서운 공포입니다. 그렇다고 죽음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 죽음의 두려움과 공포를 조금이라도 내려놓을 방법은 무엇일까 고민하던 중 역발상을 한 것이죠. 죽음을 끝이 아니라 시작으로 생각하자. 죽음을 두려워할 게 아니라 즐기듯 인생을 살자. 더 사랑하고 감사하며 살자. 죽음도 소풍 가듯 축제로 생각하자, 라는 생각으로요.”


우리네 인생도 국제영화제 51관왕도 행복한 기억·꿈·소풍 ⓒ

13. 늦깎이 감독이십니다. 전혀 다른 직군에서 일하다가감독이 돼야겠다고 생각한, 아니 감독의 꿈을 이제는 펼쳐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무엇인가요?


“제가 영화감독을 꿈꾼 건 일곱 살 때 아버지를 따라갔다가 우연히 본 ‘대부’라는 영화 이후부터입니다. 그 이후 틈날 때마다 시나리오를 쓰며 준비해 오다가 영화과 진학을 했지만, 가족의 반대를 극복하지 못하고 중도 포기하며 실의에 빠진 적도 있었습니다.비록 졸업까지는 못 했지만 (영화 공부를 했었고) 다른 대학 졸업 후 연극, 연출, 방송국, 영화 스태프 일을 하며감독의 꿈을 놓지 않고 왔었습니다. 대기업에서 12년 가까이 재직하면서도 늘 영화를 생각하며 왔으니까요. 결국 대기업 중간 관리자 위치에서 명퇴하고 영화 현장으로 돌아온 것이죠. 감독이라면 누구나 꿈꾸듯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고 인생을 돌아볼 수 있는 최고의 영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14. 감독으로 사는 삶, 만족하시나요.좋은 점, 또 애로사항은 무엇인가요?


“대기업 재직 시 억대 연봉을 받으며 물질적으로 부족함 없이 살아오면서도 늘 영화에 대해 갈망을 했었습니다. 비록 영화를 하며 물질적으로 힘들고 어려운 일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지만 한 번도 후회하거나 선택에 대해 원망해 본 적은 없습니다. 가장 좋은 점은 시나리오를 쓰며 영화를 꿈꾸는 것이고, 가장 힘든 일도 시나리오를 쓰며 어떻게 하면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는 일입니다.”


15. 시작은 늦었어도‘그대 어이가리’로 51개의 트로피를 세계 각국에서 받는 기염을 토했습니다.소감이 어떠신가요.


“칸, 베니스, 베를린 영화제는 아니지만 전 세계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했습니다. 나라별로 보면, 프랑스, 독일, 영국, 미국, 캐나다, 인도, 중남미 일대. 일본 등 오대주 육대양 모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심지어 제50회 남부 영화예술 아카데미영화제 6관왕, 제42회 파이브 콘티넨츠 국제영화제에서 11개 부문 전관왕 수상은 단일 영화제로는 전무후무한 기적 같은 일이었습니다.개인적으로 너무나 큰 영광이고 행복한 일이었죠.가끔 ‘꿈인가?’ 하는 생각도 합니다^^. 다만 이런 수상의 영광은 저, 개인보다 영화에 저 이상으로 모든 열정을 다 쏟아 함께 해준 배우님들과 스태프, 제작진들께서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분들이 없었더라면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었습니다.”

세계인이 극찬하고 이제 우리가 사랑할 차례 '그대 어이가리' ⓒ

16. 이렇게 많은 상이 가능했던 비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가족과 죽음, 그리고 정서적 공감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서양을 떠나 이 부분들은 완벽히 일치하는 ‘화두’인 것이죠. 영화가 화려하지는 않지만 마치 어느 평범한 가족의 일상을 리얼한 다큐멘터리를 보듯 생생하게 묘사해 놓았기에 마치 내가 드라마 속의 주인공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힘. 여기에 곳곳 배치해 놓은 한국적 특유의 문화적 정서와 창, 그 재료들을 잘 버무린 밸런스와 배우들의 연기, 이런 부분들이 많은 심사 위원들에게 잘 어필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17. 관객들이 이 영화에서 무엇을 느끼고,집으로 가는 마음에 무엇을 담아가기를 바라시나요.


“사는 동안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감사하고, 더 많이 행복한 삶을 사세요!”


18. 묻지 않았지만, 꼭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다면 부탁드려요.


“‘그대 어이가리’, 관심에 실망으로 답하지 않을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앞으로 그런 좋은 영화들을 많이 만들고 싶습니다.그래서 저는 아침마다 매일 집 앞을 5km씩 뜁니다.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좋은 시나리오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신념이있기 때문입니다. 관객분들께서 이 영화를 기억해 주시고 많이 봐주신다면 저는 더 많이 고민하고 또 고민해서 더 좋은 영화로 보답해 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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