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 은행 잔액 700조 돌파
작년에만 이자율 2.4%P↑
국내 5대 은행이 기업에 내준 대출 규모가 한 해 동안에만 70조원 가까이 불어나면서 700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가계대출은 15조원 넘게 쪼그라들면서 역전이 벌어진 모습이다.
이런 와중 기업대출 금리가 가계보다 훨씬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리면서 관련 차주들의 어려움이 커질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 사태 이후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실시되고 있는 금융지원이 종료되면 이들을 둘러싼 진짜 위기가 고개를 내밀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개 은행이 보유한 기업대출 잔액은 총 703조7269억원으로 전년 말 대비 10.7%(67조8391억원) 늘었다.
은행별로 보면 우선 국민은행의 기업대출 보유량이 162조6091억원으로 같은 기간 대비 9.4% 증가하며 최대를 기록했다. 신한은행 역시 146조7433억원으로, 하나은행은 137조8962억원으로 각각 11.3%와 12.6%씩 해당 금액이 늘었다. 우리은행도 129조2678억원으로, 농협은행은 127조2106억원으로 각각 8.4%와 11.8%씩 기업대출이 증가했다.
반면 이들 은행의 가계대출 총량은 700조원 아래로 내려오면서 기업대출에 역전을 허용했다. 5대 은행의 가계대출이 기업대출보다 적어진 건 지난해가 처음이다. 조사 대상 은행들의 가계대출은 692조5335억원으로 2.3%(16조5194억원) 줄었다.
은행별로 보면 하나은행의 가계대출 보유량이 129조1439억원으로 0.9% 감소하며 최저를 나타냈다. 신한은행 역시 130조6269억원으로, 농협은행은 132조9662억원으로 각각 3.7%와 1.0%씩 해당 액수가 줄었다. 우리은행도 133조7930억원으로, 국민은행은 166조35억원으로 각각 3.6%와 2.4%씩 가계대출이 감소했다.
문제는 기업대출 이자율이 가계대출보다 빠르게 오르고 있다는 점이다. 가뜩이나 확대된 대출과 맞물려 차주의 이자 부담을 더욱 가중시킬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 은행권의 지난해 12월 신규취급액 기준 기업대출 금리는 5.56%로 전년 동월 대비 2.42%포인트(p)나 상승했다. 같은 기간 가계대출 금리가 15.6%로 1.94%p 오른 것과 비교하면 0.5%p 가량 높은 상승률이다.
이는 지난해부터 본격화 한 기준금리 인상의 영향이다. 한은은 지난해 4월부터 올해 1월까지 사상 처음으로 일곱 차례 연속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이중 7월과 10월은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포인트(p) 올리는 빅스텝을 단행했다. 이에 따른 현재 한은 기준금리는 3.50%로, 2008년 11월의 4.00% 이후 최고치다.
여기에 상대적으로 신용대출이 많은 기업대출의 특성이 금리 상승폭을 더욱 키웠다는 분석이다. 가계대출은 주로 주택담보를 위주로 이뤄지고 있는 반면, 기업대출은 상당수가 이런 담보 없이 신용도를 기반으로 이뤄지는 만큼 금리 인상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는 평이다.
더 큰 고민거리는 추가 악재가 도사리고 있다는 점이다. 코로나19를 계기로 2020년 4월부터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상대로 시행돼 온 대출 만기연장·상환유예 조치가 3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어서다. 금융지원 조치 해제 시 수면 아래 억눌려 온 부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올 수 있다는 염려다.
금융권 관계자는 "가계대출에 비해 기업대출은 연체율도 더 높고 금리 인상의 충격파도 더 클 수 있다"며 "특히 코로나19를 겪으며 취약 차주가 크게 늘어난 자영업자 등의 상황까지 고려하면 경기 침체의 여파가 관련 대출에서 보다 먼저 직접적으로 드러날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