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 "피고, 성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학생 상대 성희롱…아동복지법 위반 소지"
"'내 아이 낳을 도구 돼라' 말한 것이나 다름 없어…명백한 언어 폭력"
"조현병 앓아 치료 받고 있는 점은 양형사유 반영될 것…집행유예 예상"
"한국, 정신건강 터부시하는 경향…병원 가야 할 사람이 법정으로 가고 있어"
대구의 한 여자고등학교 앞에 '할아버지 아이를 낳고 살림 할 10대 여성을 구한다'는 내용의 현수막을 내걸어 기소된 60대 남성에게 검찰이 징역 1년을 구형했다. 법조계에서는 피고가 자존감을 갖고 성적으로 보호 받으며 커가야 할 학생들에게 언어적 폭력을 가한 것인 만큼 아동복지법 위반으로 볼 소지가 충분하다고 밝혔다. 다만, 조현병을 앓아 현재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점 등이 참작돼 집행유예 선고가 나올 것으로 전망했다. 문구 자체가 음란하고 퇴폐적인 것으로 볼 수 없어 무죄가 나올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대구지법 형사5단독(부장판사 김희영)은 아동복지법 위반(아동에대한음행강요·매개·성희롱 등) 혐의로 기소된 A씨(60)에 대한 결심 공판을 22일 진행했다. A씨는 지난해 3월 8일과 15일 대구 달서구의 한 여고 인근 도로에서 아동에게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동시에 음란하고 퇴폐적인 내용으로 미풍양속을 해칠 수 있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내건 혐의를 받는다.
현수막에는 '세상과 뜻이 달라 도저히 공부하기 싫은 학생 중에 혼자 사는 험한 60대 할아버지 아이 낳고 살림할 희생종하실 13~20세 사이 여성분 구합니다'는 문구와 연락처가 적혀 있었다. 경찰 조사 결과 A씨는 조현병을 앓아 왔으며 행정입원을 한 뒤 현재까지 치료받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A씨의 변호사는 "형사처벌보다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선처를 탄원했다.
법조계는 대체로 A씨의 행동이 아동복지법 위반 행위에 해당한다고 보면서도, 중형이 아닌 가벼운 형량의 선고가 내려질 것으로 전망했다. 법무법인 혜안 신동호 변호사는 "아동복지법 17조를 보면 '아동에게 음란한 행위를 시키거나 이를 매개하는 행위 또는 아동에게 성적 수치심을 주는 성희롱 등의 성적 학대행위'를 금지한다고 돼 있고, 71조에는 '17조 제2호에 해당하는 행위를 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돼 있다"며 "이 조항을 반영해 검찰에서 징역 1년을 구형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옥외광고물법 위반, 성희롱 소지 등이 있어 무죄가 나올 것 같지는 않다"며 집행유예 선고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이승혜 변호사(변호사 이승혜 법률사무소)는 "충분히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아동청소년에 대한 성적학대를 두고 대법원은 '아동의 건강과 복지를 해치거나 정상적인 발달을 저해할 만한 성적폭력이나 가혹행위'라고 보고 있다"며 "(피고의 행동은) 성적 도덕관념에 어긋나고 아동의 성적가치관의 형성을 반대한 행위인데, 자존감을 갖고 성적으로 보호받으며 커가야 할 아이들에게 '너는 나의 아이를 낳을 도구가 되어라'고 말한 것이나 다름 없다. 명백한 언어적 폭력이기에 무죄는 아니고 집행유예 정도가 나올 것 같다"고 말했다.
박성남 변호사(킹덤컴 법률사무소)는 "전과 등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실형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본다. 집행유예, 벌금, 실형 순이 유력하다"면서도 "전과가 있으면 크게 영향을 미칠 수는 있다"고 분석했다.
반면 피고의 행동을 성희롱 혹은 성적학대로 보기 어렵고 현수막에 담긴 문구 자체가 성적인 내용이라고 볼 수 없다는 의견도 있었다. 법무법인 호암 신민영 변호사는 "(문구가) 성적인 내용이라고 보기는 힘든 것 같다. 분명 부적절한 행동이고 지나가는 학생들이 공포감을 느꼈을 수는 있으나 문구 자체가 음란하고 퇴폐적이라고 볼 수 없다"며 "처벌규정은 자제해서 사용해야 하며 법적으로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무죄 가능성이 꽤 있다고 본다"고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피고가 현재 조현병을 앓고 있어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고 있다는 사실에도 주목했다.
법무법인 리더스 김희란 변호사는 "현수막을 내걸었다는 이유 만으로도 범행의 고의, 현수막을 내건 기간, 성범죄 등 형사처벌 및 전과기록 여부 등에 따라 실형이 선고될 수도 있다"며 "다만 이 사안의 경우 A씨가 조현병을 앓고 있고 행위 당시 이러한 정신질환으로 인하여 자신의 행위가 법에 위반되고 범죄가 된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의사결정 자체를 통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면, 형법에서 규정하는 심신장애, 미약으로 인정이 되어 처벌이 되지 아니하거나 형 감경의 여지가 있다"고 분석했다.
박 변호사는 "조현병 등 정신병은 양형사유나 감경사유가 일반적으로 될 수 있다"며 "이 사건도 적용에 무리는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신민영 변호사는 "우리나라는 정신건강에 대해 터부시하는 경향이 있다. 인권 문제에 대해 소극적인데, 당장 병원으로 가야할 사람들이 법정으로 오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