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일본에 엄정교섭 제안…한국에는 "협력 강화" 언급
수출 규제 앞둔 日에 항의 표시…메모리 강자인 한국엔 유화 정책
미·중 모두 K반도체 절실…경제적 실리 도모하며 초격차 기술 개발해야
26일(현지시간) 회동한 안덕근 통상교섭본부장(좌)과 왕원타오 중국 상무부장ⓒ중국 상무부 홈페이지
중국이 반도체 공급망 핵심축인 한국(메모리)과 일본(소재·부품·장비)에 각각 다른 입장을 취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중국을 겨냥해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를 예고한 일본에는 '강한 불만'을 드러낸 반면 한국에는 '협력 강화'를 강조한 것이다.
한·미·일 중심으로 반도체 공급망이 재편되는 과정에서 조바심을 느낀 중국이 메모리 강자인 한국에 유화적 제스처를 취함으로써 우리측의 태도 변화를 촉구한 것으로 해석된다. 미·중 모두 한국 반도체를 빼놓고 공급망을 논할 수 없는 만큼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전략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왕원타오 중국 상무부장은 26일(현지시간) 미국 디트로이트 WBC호텔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통상장관회의를 계기로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과 일본 니시무라 야스토시 경제산업상을 차례로 만났다.
이번 한·중, 중·일 통상장관 회담 분위기는 판이하게 달랐다. 일본에 대해 중국은 상당히 비판적인 발언을 감추지 않은 반면 한국에는 상호 협력 파트너로서의 존재감을 부여했다.
중국 상무부는 홈페이지를 통해 니시무라 경제산업상과의 회담에서 일본의 반도체 수출규제 조치 강행, 주요 7개국(G7) 히로시마 정상회의 중국 공격 등에 대해 엄정교섭을 제안했다고 27일 밝혔다. 엄정교섭은 공식 항의를 뜻한다.
왕원타오 상무부장은 이 자리에서 "일본이 중국의 강력한 반대와 업계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반도체 수출 통제 조치를 고집해 국제 경제 무역 규칙을 심각하게 위반하고 산업 발전 기반을 훼손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일본이 잘못된 관행을 시정하고 글로벌 공급망 안전성을 효과적으로 유지할 것을 촉구했다.
일본이 대중국 제재를 코 앞에 둔 상황을 중국이 공식 외교 창구를 통해 항의한 것이다. 앞서 일본은 반도체 관련 23개 품목을 수출관리 규제 대상에 추가한다는 행정명령을 공포했다. 대상은 우호국 외 국가·지역으로, 사실상 중국을 겨냥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일본이 반도체 장비 수출을 제한한다고 해서 중국이 당장 타격을 입을 가능성은 낮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미국 주도의 공급망 재편 움직임에 일본이 적극적으로 동참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만큼, 공식 항의를 통해 이를 비판한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은 일본에 각을 세운 것과는 달리, 한국에는 정반대의 태도를 취했다. 중국 상무부가 입장 자료를 통해 "(한·중이) 반도체 공급망 분야에서 대화와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고 표현한 것이다.
왕원타오 상무부장은 안덕근 본부장과 만난 자리에서 양자 무역 및 투자 협력을 심화하는 동시에 공급망 안정성을 유지하며 양자, 다자 경제 무역 협력을 새로운 수준으로 공동 추진할 것을 언급했다.
중국이 반도체를 콕 짚어 '협력 강화 합의'로 단정한 것과 달리, 산업부는 27일 참고 자료를 통해 "핵심 원자재·부품 수급 안정화"로 언급했다. 반도체를 뺀 광범위한 공급망 협력이라고 표현함으로써 중국 입장과 거리를 둔 것이다.
APEC회의 계기에 열린 중국-일본 통상장관 회담ⓒ중국 상무부 홈페이지
한·중 회의 결과가 서로 다르게 나온 것은 반도체를 둘러싸고 첨예하게 대립중인 미·중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미국은 중국의 마이크론 제재 직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마이크론) 빈자리를 채우지 말라"고 요구하며 '양자택일' 분위기를 조성했다. 그간 미국산 대신 한국·중국산 메모리 반도체 의존도를 높여온 중국으로서는 상당히 난처한 상황이다.
'반도체 굴기'를 위해 중국은 메모리를 중심으로 기술 개발에 열을 올리고는 있지만 한국 수준을 따라오려면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 결국, 미국의 대중국 규제 속 K반도체 외에 선택지가 없는 중국으로선 한국에 타협을 유도하는 유화 정책을 취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김양팽 한국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일본이 강점을 가진 반도체 장비는 중국도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갖고 있는 편이나, 메모리 반도체는 100% 대체가 되지 않는 만큼 한국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중국만큼이나 미국도 한국 반도체 협력이 불가피한 만큼 삼성전자·SK하이닉스를 놓칠 수 없다. 현재 메모리 반도체 시황이 침체를 면치 못하고 있지만 업턴(상승 국면)으로 돌아서면 공급자 우위 시장으로 분위기가 반전되는 만큼 강력한 동맹이 필요하다.
이 같은 K반도체 위상을 감안할 때 한국은 미·중의 의도대로 휩쓸리지 않는 흔들림없는 주도권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미국 또는 중국과의 협상에서 경제적 실리를 도모하는 한편, 초격차 기술 개발로 꾸준히 우리 입지를 강화해야 한다는 진단이다.
김양팽 전문연구원은 "우리가 어느 한 편에 치중하는 것은 옳지 않다. 미국과 중국 모두 중요한 만큼 반도체 주도권을 활용해 전략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동향분석실장도 "지금으로서는 미·중간 자존심, 정치적 싸움의 시간이라 한국 기업은 별다른 의견을 표명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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