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불황 속 ‘짠테크’‧‘플렉스’ 공존
직장인, 구내식당 가고 도시락 사먹고
수십만원에 달하는 오마카세도 인기
경기 불황 속 ‘짠테크’(짜다+재테크)와 ‘플렉스’가 공존하고 있다. 평일 점심 식사 값을 아끼기 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성비(가격대비성능)식사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는데 반해, 한끼에 20만원을 웃도는 오마카세(맡김 차림)를 찾는 수요도 크게 늘어났다.
한국소비자원 가격정보종합포털 ‘참가격’에 따르면 소비자들이 많이 찾는 8개 외식 품목의 지난달 서울지역 평균 가격은 5년 전인 2018년에 비해 평균 28.4% 뛰었다. 가격상승률이 가장 높은 품목은 김밥으로, 2018년 5월 2192원에서 지난달에는 3200원으로 46% 상승했다.
대체로 서민들이 즐겨 찾는 외식 메뉴의 가격 상승이 두드러졌다. 8개 외식 품목 중 지난달 기준 1만원짜리 지폐 한 장으로 먹을 수 있는 외식 메뉴는 김밥, 자장면, 칼국수, 김치찌개 백반 등 4가지에 불과했다. 이러한 외식 물가 상승 추세는 당분간 지속할 것으로 전망된다.
물가가 치솟으면서 점심값 부담도 커지고 있다. KB국민카드가 광화문·강남·여의도·구로·판교 등 서울의 업무지구 5곳의 개인 신용카드 및 체크카드 매출 빅데이터(1~5월)를 분석한 결과, 직장인이 점심시간에 쓴 돈은 월평균 23만9000원으로 나타났다. 2019년 대비 17% 증가했다.
외식물가가 치솟으면서 이른바 ‘런치플레이션(물가 상승으로 직장인들의 점심값 지출이 늘어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구내식당을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최근 구내식당들이 간편한 포장 메뉴와 채식 메뉴까지 다양한 선택지에 맛까지 업그레이드하면서 인기가 더 높아졌다.
급기야 밥값을 아끼면서 양껏 먹을 수 있다는 장점에, 사무실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원정’도 마다하지 않는다. 고물가 시대 구내식당이야말로 ‘최고의 사내복지’라는 말까지 나온다. 흔히 ‘짬밥’이라 불리며 외면받기도 했으나 고물가 영향으로 분위기가 반전됐다.
여의도에서 근무하는 직장인 A(30대)씨는 “처음에는 도시락을 싸서 다니기도 했지만 재료비도 오르고 만드는 수고로움이 커서 그만두게 됐다”며 “근처에 괜찮은 구내식당이 있다고 해서 동료들과 개방된 구내식당을 찾아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편의점 도시락으로 한 끼를 떼우는 소비자도 크게 늘었다. 편의점 도시락이 직장인들의 대안으로 떠오른 것은 합리적인 가격에 믿을 수 있는 품질의 한 끼 식사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가격뿐만 아니라 품질에 대한 신뢰도가 크게 향상된 것도 고객들이 늘어난 주요 요인이다.
여기에 다양한 메뉴 역시 선호도 상승에 영향을 미쳤다. 영양학적 지식을 갖춘 전문가가 지역 특산물을 활용해 품질을 크게 끌어올렸다. 여기에 저칼로리, 저나트륨 등 건강까지 고려한 상품들이 대거 출시되면서, 편의점 간편식으로 발길을 돌리게 만들었다.
직장인들은 식후 마시는 커피값에 대해서도 허리띠를 졸라 매는 중이다. 매일 마시는 커피도 보다 저렴한 가격에 즐길 수 있는 ‘사내 카페’가 인기다. 최근 원두와 원유값 상승에 따라 주요 커피 프랜차이즈들이 소비자가격을 올린데 따른 영향으로 분석된다.
이런 가운데 한 끼에 수십만원에 달하는 오마카세도 고물가 속에서 승승장구 하고 있다. 과거에는 최고급 정찬을 선보이는 ‘미식의 꽃’ 특급호텔에서나 맛볼 수 있었으나 최근에는 외식업계 전반적으로 이 수요를 잡기 위한 반경이 커지면서 비교적 친숙해지는 분위기다.
주로 일식당에서 사용되는 ‘오마카세’라는 단어는 셰프에게 요리를 전적으로 맡긴다는 의미다. 그때그때 가장 신선한 제철 재료나 최고급 지역 특산물 등을 이용해 셰프가 자신만의 레시피로 수준 높은 요리를 선보이는 상차림이다.
정해진 메뉴가 없어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서울 시내 인기 오마카세의 가격은 점심 13만원부터 저녁은 25만원까지 달한다. 하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소문난 곳이면 예약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이른바 ‘스강신청(스시+수강신청)’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났을 정도다.
오마카세의 인기는 최근의 젊은 층 소비 양극화 현상을 반영하고 있다. 고물가 시대의 영향으로 ‘짠테크’를 시작한 청년들이 많아졌지만 동시에 이들이 명품·프리미엄 시장의 주요 소비층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은희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프리미엄 수요는 기본적으로 소득양극화로 인해 소비양극화가 일어나는 측면이 크다. 한 달 내내 아끼던 직장인들이 보상심리로 럭셔리한 곳에 몰리면서 어중간한 가격대는 무너지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라며 “앞으로도 이런 소비형태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외식업계 관계자도 “지난해부터 런치인플레이션이 큰 화두였던 반면 아이러니하게 오마카세, 파인다이닝 식당들의 숫자는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등 극단의 외식 소비 행태를 보이고 있다”며 “젊은 소비자들일수록 외식의 목적을 단순히 배를 채우는 생존에 두는 것이 아닌, 나를 위한 선물의 개념으로 감정적 만족감을 충족하는데 더 무게를 두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외식업계 측면서 바라봤을 때 가성비냐 프리미엄이냐, 어디가 맞다 틀리다의 문제이기보다는 각각 올바르게 성장해야 되는 시점이라고 생각한다”며 “특히 프리미엄이 뜬다하여 무조건적으로 가격만 높여 판매하는 것이 아닌, 본질적인 맛과 품질, 서비스 측면을 강화하는데 더 노력해야 외식업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애매한 건 싫다”…여행도 초저가이거나 프리미엄이거나 [소비, 중간이 사라지다④]>에서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