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경미의 영화로 보는 세상] 당신이 잠든 사이, 공포가 몰려든다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3.09.15 13:54  수정 2023.09.19 08:30

‘봉준호 키즈’로 알려진 유재선 감독의 데뷔작이 8일 연속 1위를 달리고 있다. 영화 ‘잠’은 개봉 전부터 화제가 됐고 개봉과 함께 입소문을 타며 관객수가 늘기 시작했다. 개봉 8일째인 현재 67만명을 기록, 손익분기 기준인 80만명은 금주 내로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름 대작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가운데 제작비 30억원 수준의 작은 영화가 고무적인 실적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는 단역배우인 현수와 워킹맘 수진 부부에게 악몽처럼 덮친 수면 중 이상 행동과 잠드는 순간 시작되는 끔찍한 공포의 비밀을 풀기 위해 애쓰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그린다. 총 3장으로 구성되는데 1장에서는 현수(이선균 분)와 수진(정유미 분)의 행복하고 단란한 신혼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던 어느 날, 옆에 잠든 남편이 ‘누가 들어왔어’라는 잠꼬대를 통해 수진은 현수가 몽유병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고 있는 동안에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현수는 치료를 받아도 수면 중 이상 행동은 점점 더 위험해진다. 2장에서는 현수의 증상이 단순 몽유병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고 3장은 파멸로 치닫는 부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일상의 상황을 공포의 대상으로 만든다. 영화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소재인 수면을 사용한 생활 밀착형 스릴러 장르다. 한번쯤 잠든 사이에 나도 모르는 행동을 하지는 않을까라는 상상을 해봤을 텐데, 영화는 몽유병을 소름 끼치는 방식으로 그려낸다. 현수는 언젠가부터 잠이 들면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하고 잠에서 깨면 기억하지 못한다. 피가 날 정도로 얼굴을 심하게 긁거나 냉장고 문을 열고 날 것의 음식을 허겁지겁 먹어 치운다. 싱크대의 수돗물을 벌컥벌컥 마시는가 하면 심지어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려는 위험천만한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우리가 집안에서 아무렇지 않게 하는 행동일지라도 꿈의 상태, 무의식의 상태에서는 과한 행동으로 이어지면서 위협적이고 공포스럽게 느끼게 된다. 뿐만 아니라 몽유병이라는 소재에 층간 소음, 출산, 빙의, 무속신앙까지 주변의 익숙한 소재를 조합해 미스터리, 호러 등 다양한 장르의 맛을 즐기게 만든다.


심리적인 면을 이용해 공포감을 극대화한다. 현수의 몽유병 증세가 심해지면서 만삭의 임산부인 수진은 자신을 해치고 또 곧 태어날 아이까지 위험해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빠진다. 영화는 기존의 공포물과는 달리 잔인한 장면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생략함으로써 관객들이 상상하게 만들고 그것을 토대로 공포심을 유발한다. 여기에 극단적인 클로즈업이나 소리를 통해 불안, 공포, 광기를 느낄 수 있도록 한 유재선 감독의 연출도 역할을 한다.


한정된 공간과 단조로운 구성을 배우의 연기가 빈틈을 메운다. 3장 구조로 만들어진 영화는 장과 장 사이의 시차를 생략해 관객들의 상상력을 자극하지만 구성이 단조롭고 공백이 느껴지는 문제가 있다. 하지만 배우들의 연기가 이런 단점이 드러나지 않도록 만든다. 정유미는 악몽 같은 사태를 마주하며 느끼는 공포감과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야 하는 강인함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선균 역시 의식과 무의식의 상태를 넘나드는 이중적 인간의 모습을 잘 표현해냈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의 높은 경제성장으로 물질적인 어려움은 상당 부분 해소됐다. 그러나 급속한 성장의 후유증으로 심리적으로는 아직도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상대적 박탈감 때문에 분노사회로 가고 있으며 사회에서 소외되면서 우울증과 불안으로 자살률은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영화 ‘잠’은 단란한 신혼 가정에 밀어닥친 몽유병이라는 공포를 통해 현대사회에서 커지고 있는 심리적인 불안감을 조명하고 있다.


양경미 / 전) 연세대 겸임교수, 영화평론가film10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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