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기관들, 생존 당시 관련 규정 및 매뉴얼 미이행
국방부, 이튿날 사건 자료 삭제 및 대북전통문 왜곡
文정부, 은폐·왜곡 자료 근거로 중간 수사 결과 발표
도박 사생활 부당하게 알려 자진 월북 근거로 활용
감사원은 문재인 정부 당시 국방부·해경 등 관계 기관이 공무원 故 이대준 씨가 북한군에 의해 피살된 사실을 은폐·왜곡했다고 판단하고, 관련자에 대한 징계 요구 등 엄중 조치를 내렸다고 7일 밝혔다.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은 2020년 9월 22일 해양수산부 소속 어업지도 공무원인 이대준 씨가 서해 연평도 인근에서 실종된 후 북한군에게 피살되고 시신이 해상에서 소각된 사건이다. 당시 문재인 정부는 자진 월북으로 판단했다고 발표했지만, 2022년 6월 윤석열 정부에서 해경과 국방부는 월북 시도를 입증할 증거가 없다며 2년 만에 결과를 번복했다.
이에 감사원은 국민 의혹 해소를 위해 국방부‧해경 등 9개 기관을 대상으로 감사에 착수했다.
우선 감사원은 서해 공무원이 북한 해역에서 생존하였을 당시 범정부적 대응이 필요한 위기 상황이었음에도 관련 규정 및 매뉴얼에 따른 조치를 미이행했다고 지적했다.
감사원에 따르면, 안보실은 2020년 9월 22일 17시 18분경 북한 해역에서 서해 공무원이 발견된 사실을 합참으로부터 보고받고도 통일부 등에 위기 상황을 전파하지 않고, 위기 상황의 심각성 평가 및 대응 방향 검토 등을 위한 '최초 상황평가회의'를 미실시했다. 이날 국가위기관리센터장은 북한이 서해 공무원을 구조하면 상황 종결 보고만 하면 된다고 판단하고 상황이 종료되지 않았는데도 조기 퇴근했다.
해경 및 중부청은 18시경 안보실로부터 발견 정황을 전달받고도 '보안 유지'를 사유로 관련 규정에 따라 서해 공무원 발견 위치에 대한 추가 정보를 파악하거나 국방부 등 관계기관에 수색구조가 필요한 협조 요청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통일부는 국정원으로부터 18시경 사건을 인지하고도 실무선에서 장·차관에게 보고되지 않았고, 상황 전파, 대북통지 등 송환에 필요한 조치 등을 취하지 않았다.
합참에선 통일부가 주관할 상황이라며 군에서 대응할 건 없다고 국방부에 보고했다. 이에 따라 북측에 신변안전 보장 전통문 발송과 탐색 작전 등 필요 조치를 하지 않았다.
사건 당시 국방부가 관련 비밀 자료 삭제를 지시하고, 대북전통문 등을 실종 상태인 것처럼 작성하였고, 해경은 기존 수색 활동을 유지하였으며, 통일부는 사건 최초 인지 시점을 부당하게 변경한 사실도 확인됐다.
이튿날 새벽 1시 안보실은 서해 공무원 피살·소각 사실을 인지한 뒤 관계장관회의에서 보안 유지 지침을 합참에 하달하며 관련 비밀자료 삭제를 지시했다. 이에 합참은 밈스(MIMS·군사정보체계) 운용 담당 실무자를 호출해 군 첩보 보고서 60건을 삭제토록 했고, 밈스에 탑재하지도 않은 비밀자료 123건도 이후에 삭제됐다.
안보실의 보안 유지 지침에 따라 국방부는 출입기자들에게 서해 공무원이 실종됐다는 거짓 정보를 알리면서 대북전통문도 그때서야 발송했다. 그 연장선에서 해경은 서해 공무원이 아직 발견되지 않은 것처럼 최초 실종 지점에서 수색을 계속했다. 통일부는 출입기자들에 최초 인지 시점을 국정원에 정보를 전달받았던 때가 아닌 관계장관회의라고 사실과 달리 밝혔다.
서해 공무원이 사망한 것으로 언론에 발표된 이후에는 자진 월북한 것으로 결론 내기 위해 군 첩보에도 없는 부정확한 사실을 근거로 자진 월북 여부를 부당하게 판단·발표하고, 미확인 사실이나 은폐·왜곡된 수사 내용 등을 근거로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한 것으로 확인됐다.
안보실과 국방부는 '서해 공무원의 월북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정해놓고 합참에 정보 분석보고서 마련을 지시해 2020년 9월 24일 관계장관회의에 보고토록 했다. 해당 보고서의 주요 근거 중 홀로 구명조끼를 착용했다는 것과 무궁화 10호 CCTV 사각지점에서의 신발 발견은 군 첩보에도 없는 사실무근이라는 게 수사 결과로 밝혀진 바 있다.
그럼에도 관계기관들은 자진 월북 판단을 언론과 국회에 브리핑했다. 이후 근거를 더하기 위해 해경은 왜곡된 표류 예측 결과를 발표했고, 또 서해 공무원의 도박 사실과 채무액 등 사생활을 부당하게 공개해 월북 동기라고 설명했다.
이에 감사원은 위법·부당 관련자 13명에 대한 징계·주의를 요구하고, 공직 재취업 시 불이익이 되도록 기록을 남기는 인사 자료 통보를 조치했다. 13명 중 주요 인사는 서욱 전 국방부 장관, 김홍희 전 해양경찰청장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관계 기관들에도 별도의 주의 요구를 내렸다.
한편 감사원은 지난해 10월 14일 안보실 등 5개 기관의 총 20명을 대검찰청에 수사 요청한 바 있다. 감사원은 이에 대해 "비위행위가 상급자의 지시에 의해 이뤄졌고 하급자가 이를 거부하기는 어려웠던 점, 군·해경 조직의 특수성, 퇴직자가 다수인 점, 처분 요구의 실익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책임의 정도 및 처분 요구의 대상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