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계 "독일 나치당 닮아간다" 비판에도
이재명 "정당은 당원이 주인" 사실상 가이드
현역 의원 감점 안건과 묶어 일괄투표하게끔
13일 만에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당헌 개정
더불어민주당이 전당대회에서 대의원 표 반영 비중을 축소하는 대신, 권리당원 표 가치를 높이는 당헌 개정을 확정했다. 이재명 대표의 강성지지층인 개딸(개혁의딸)의 주 요구 중 하나가 수용되면서 계파 갈등은 최고조에이를 전망이다. 지난해 대선 이후 유입된 민주당 권리당원 중 상당수는 개딸로 일컫어지는 강성 지지층으로 알려져 있다.
7일 정치권에 따르면 민주당은 이날 중앙위원회를 열고 경선시 성과가 저조한 현역 의원에게 주는 불이익 확대 방안과 함께 전당대회에서 권리당원이 행사하는 표 반영 비율을 높이는 방안을 가결했다. 이에 따라 강성 지지층의 영향력과 표심의 반영은 더 커지게 됐다. 결국 내년 4월 총선 이후에도 '이재명 체제'의 장기집권이 가능해졌고, 당이 '개딸당'에 한층 더 다가섰단 비판을 피하기 힘들게 됐다.
민주당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당헌 개정안을 찬성 67.55%, 반대 32.45%로 과반 찬성으로 가결했다. 당초 대의원 행사 1표는 권리당원의 60표의 가치였으나, 이번 개정 작업을 통해 1대 20 미만으로 바뀌어 권리당원의 표 가치가 3배 이상 상향했다. 기존 대의원 30%, 권리당원 40%, 국민(여론조사) 25%, 일반당원 5%의 비율로 반영하던 것을 대의원·권리당원 70%로 반영하되 대의원과 권리당원의 표 반영 비율을 조정한 것이다.
이재명 대표는 중앙위 모두발언에서 사실상 찬반 '표결 방향'을 가이드하기도 했다. 이 대표는 "정당은 당원이 주인"이라며 "당원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는 정치·정당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기도 하다"라고 했다.
이어 "우리가 국민의 신뢰를 받고 내년 총선에서, 더 길게 봐서는 정권을 되찾아오기 위해서는 국민 눈높이에 맞는 정치를 해야 한다"며 "힘들겠지만 많은 분들의 의견을 다양하게 들으시고 합리적인,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당원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결정이 내려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발언했다.
자유토론에서는 이재명 대표의 면전에서 부결을 호소하는 목소리들이 이어졌다. '친명(친이재명) 체제'의 장기 집권 기반이 마련에 따라, 혁신계는 민주당을 '나치당'에까지 비유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혁신계 모임 '원칙과 상식' 소속인 이원욱 의원은 자유토론에서 "직접민주주의가 정치권력과 결합할 때 독재 권력이 된다는 것을 나치에서 봤다"며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태극기 부대의 결합으로 총선에서 패배했다. 우리가 그 모습을 닮아있다"라고 비판했다.
같은 모임 소속 윤영찬 의원은 "지금 당 분위기는 대의제가 악이고, 1인 1표제 직접민주주의가 선인 것처럼 오해하고 있다"면서 "대의제는 숙의정치를 하고, 일부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정치를 장악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 존재해 왔다. 대의제를 중심으로 하되 직접민주주의를 어떻게 보완할 건가를 고민해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박용진 의원은 "당헌·당규에는 경선 규정을 바꾸려면 1년 전에 하라고 돼있다"며 "시스템 공천의 핵심은 예측 가능성이다. 국민들과의 약속, 시스템 공천의 핵심을 건드려선 안 된다"라고 했다. 이어 "중앙위원들은 거수기가 아니다. 단호히 부결시켜달라"라고 호소했다.
이날 당의 원로들도 개딸들의 과격 행동과 이를 방관하는 지도부를 향한 경고를 날렸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최근 민주당 상황에 대해 "여태까지 정치를 해오면서 가장 민주주의가 실종된 정당의 모습을 보고 있다"면서 "당은 원래 비주류가 항상 존재하는 것이다. 그것을 그렇게 무시하고 짓밟으려는 모습, 그게 당의 민주주의냐"라고 우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낙연 민주당 전 대표도 YTN라디오에서 '비명계 학살'에 우려를 표하면서 "민주당은 간간이 나의 상상을 뛰어넘더라. 상상보다 더 좋아지는 경우보다는 나쁜 경우가 더 많지만……"이라며 "그래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상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표결 과정에서는 두 개 개정안(현역의원 하위 평가자 페널티 강화·전당대회 표 반영 비중 조정)이 묶여 일괄투표가 진행, 또다른 논란을 낳았다. 두 안건 '모두 찬성'이거나 '모두 반대'만 가능했다. 중앙위원 일각에서는 사실상 '이재명 대표 체제를 옹호하는지 아닌지'에 대한 답을 물은 동시에 찬성을 유도하려는 '꼼수'라는 지적을 제기했다.
당헌 개정은 지난달 24일 최고위, 27일 당무위를 잇달아 거치며 13일 만에 '속전속결' 완료된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이 이어지면서 당 지도부가 '자의적 권한 행사'를 한 것이란 비판도 속출하고 있다. 이번에 개정된 룰은 내년 8월 전당대회부터 적용될 전망이다. 다만 총선을 불과 4달여 앞둔 상황에서 경선 규칙 수정을 포함한 당헌 개정이 이뤄진 점은 계파 갈등을 더욱 키우는 계기가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날 조정식 사무총장은 기자들을 만나 두 안건을 각각 따로따로 투표에 부치지 않은 것에 대해 "과거에도 동일한 당헌 개정안일 땐 한꺼번에 투표를 진행하는 게 일반적인 과정이었다"며 "경우에 따라 안건을 분리한 적도 있었으나 이번에는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같이 처리했다"고 답했다.
친명 원외단체인 더민주전국혁신회의도 역으로 혁신계를 '반(反)개혁세력'이라 지칭하는 등 오히려 공세 수위를 높였다. 혁신회의는 표결 결과 발표 후 논평에서 "당대표와 최고위원 선출 투표의 결과 반영 비율을 조정하는데, 아테네의 중우정치를 소환하는 것도 모자라 독일 나치당을 운운하면서 당대표는 물론 당원 모두를 능멸하는 것이 그들의 본질"이라고 비난했다.
이어 "반개혁세력에게 권리당원은 자신들의 참호를 지킬 병사이자 박수부대 역할에 불과하다. 정치를 잘 모르는 어리석은 백성들에게 의사결정권은 물론 자신들의 의정활동을 평가할 기회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라면서 "소수의 엘리트가 정치적 결정의 주체였던 시대에나 어울리는 그 자들이 민중이 정치적 결정의 주체가 되는 민주정치에 어울리는지 의문"이라고 호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