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현지시각) 자정 무렵 제44대 대통령에 당선이 확정된 버락 오바마 민주당 상원의원에게 역사는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라는 영광스러운 호칭을 선사했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최초의 흑인 퍼스트레이디’라는 이름이 늘 따라다닐 미셀 라본 로빈슨 오바마 여사가 있다.
남편 오바마의 미국 내 별명은 ‘검은 케네디’다. 그렇다면 미셀은 ‘검은 재클린 케네디’가 되는 셈이다. 실제로 미국인들은 미셀 여사에게 그러한 별명을 선사한 바 있다.
이는 다시 말해, 미국 국민들이 이들 부부에게 기대하는 ‘변화’에 대한 갈망이 과거 존 F. 케네디 대통령 부부에게 걸었던 기대만큼 높다는 뜻이기도 하다.
미셸 여사는 1964년 1월 17일 시카고 사우스사이드의 ‘침대가 하나밖에 없을 정도로’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미셸 여사의 어머니는 전형적인 전업주부로 자식들에게 헌신했으며 아버지는 시청 수도국 직원이자 민주당 지역구 위원장으로 과묵하고 엄격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미셸 여사는 특히 가난한 가정 출신에 ‘흑인’이라는 불리한 조건에 아랑곳하지 않고 백인과 특권층 자녀가 많은 프린스턴대와 하버드 로스쿨 등을 거쳐 성공했고 훗날 남편 오바마 당선자를 위해 직장까지 그만두고 직접 선거운동에 뛰어들 정도로 맹렬 여성이다.
1981년 휘트니 M 영 마그넷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녀는 프린스턴 대학교 사회학부를 마친 후 1988년 하버드 로 스쿨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후 법률회사인 시들리 오스틴에 입사해 변호사로 활동하던 미셸은 1989년 여름 인턴사원으로 입사한 버락 오바마를 만나 1992년 결혼한다.
시카고 시장 자문관으로 활동한 미셸은 1993년 ‘퍼블릭 앨라이스’라는 비영리단체인 시카고 지부를 출범시켰다. 이 외에도 미셸은 2002년 시카고 대학병원에서 지역 업무 담당 책임자로 근무하며 2005년 부원장으로 임명, 전문직 여성으로도 성공했다.
그런 미셸 여사에게도 시련기는 있었다. 바로 지난 2007년 남편이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전격적으로 출마하자 당내 보수세력으로부터 ‘애국심 없고 기 센 여자’라는 원색적인 공격에 시달리기도 했다.
이는 미셸 여사의 언행이 거침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미셸 여사는 지난 8월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그런 이미지를 불식시키고 남편을 ‘사상 최초의 흑인 대선 후보’로 만들어내는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미셸 여사는 전당대회 당시 연설에서 “미국의 가치는 여러분이 인생에서 원하는 것을 위해 열심히 일할 수 있는 곳, 여러분이 하겠다고 한 말을 지키려 일하는 것, 사람들을 알지 못하고 그들과 의견이 같지 않아도 존엄성과 존경심을 갖고 대하는 것”이라고 말해 민주당원들과 지지자들의 엄청난 갈채를 받았다.
‘세계에서 가장 힘이 센 남자’의 아내인 미셸 오바마 여사가 과연 ‘제2의 재클린’이 될 수 있을지 이제 온 세계가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