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멜로 이어, 청춘들 마음 들여다보는 백선우 작가
<편집자 주> 작가의 작품관, 세계관을 이해하면 드라마를 더욱 풍성하게 즐길 수 있습니다. 작가들은 매 작품에서 장르와 메시지, 이를 풀어가는 전개 방식 등 비슷한 색깔로 익숙함을 주기도 하지만, 적절한 변주를 통해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또 의외의 변신으로 놀라움을 선사합니다. 현재 방영 중인 작품들의 작가 필모그래피를 파헤치며 더욱 깊은 이해를 도와드리겠습니다.
‘막돼먹은 영애씨’, ‘혼술남녀’ 등 리얼한 전개로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동시에 유쾌한 전개로 웃음을 유발하던 백선우 작가는 ‘김비서가 왜그럴까’를 통해 본격 멜로 장르로 영역을 넓혔다.
이후 ‘간 떨어지는 동거’를 통해선 판타지적인 재미도 선사했던 백 작가가 ‘닥터 슬럼프’를 통해 다시금 현실에 발 디딘 전개를 보여주고 있다. 현재 방송 중인 JTBC 토일드라마 ‘닥터 슬럼프’는 각자의 이유로 인생 최대 슬럼프에 빠진 의사들의 ‘망한 인생’ 심폐 소생기를 그린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로 5% 내외의 안정적인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가장 최근 회차인 10회에서는 8.2%로 큰 폭의 상승세를 보이기도 했다.
◆ 판타지-현실 능숙하게 오가는 백선우 작가의 역량
‘막돼먹은 영애씨’ 시즌5와 8, 12, 13 등 일부 시즌에 참여한 백 작가는 영애의 일과 사랑 이야기를 현실감 넘치게 그려내며 마니아들의 사랑을 받았었다. 30대 여성의 일상을 담는 이 드라마는 특별할 것 없는 설정 대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현실적인 전개로 몰입도를 끌어내는 작품이었다.
회사에서는 업무에 치여 고통받고, 일상에서는 마음 같지 않은 연애에 울기도 하는 영애의 활약을 디테일하게 포착, 시청자들과 끈끈한 공감대를 형성하며 무려 17시즌까지 이어졌었다. 무엇보다 이 과정에서 ‘웃음’을 잃지 않는 영애의 이야기를 ‘유쾌하게’ 전달하며 시트콤과 드라마 사이, 특유의 매력이 이 시리즈의 장점이기도 했다.
노량진 강사들과 공시생들의 ‘혼술’ 라이프를 담은 ‘혼술남녀’에서도 비슷한 장점을 보여줬던 백 작가는 ‘김비서가 왜그럴까’에서는 로맨틱 코미디의 매력을 그려냈다. 현실을 넘어, 시청자들의 판타지까지 충족하며 가능성을 넓힌 것이다.
재력, 얼굴, 수완까지 모든 것을 다 갖췄지만 자기애로 똘똘 뭉친 나르시시스트 부회장과 그를 완벽하게 보좌해 온 비서의 로맨스를 다룬 이 드라마는 일명 ‘신데렐라 스토리’의 정석을 쫓아가는 작품이지만, 대신 ‘아는 맛’을 제대로 살리며 시청자들의 지지를 받았다.
‘간 떨어지는 동거’를 통해선 판타지 멜로로 새 도전에 나섰다. 999살 구미호 신우여와 쿨내 나는 99년생 요즘 인간 이담이 구슬로 인해 얼떨결에 한집 살이를 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로, 신우여와 이담의 알콩달콩 멜로 외에도, ‘신우여의 소멸’이라는 설정을 통해 궁금증을 유발했다. ‘간 떨어지는 동거’가 구축한 새로운 세계관을 접하는 흥미는 물론, 제한적인 상황 속 더 애틋해진 주인공들의 멜로까지. 판타지 멜로의 재미를 제대로 구현한 백 작가였다.
‘닥터 슬럼프’에는 백 작가의 이 같은 장점들이 조화롭게 녹아있다. 상처받은 두 청춘, 여정우(박형식 분), 남하늘(박신혜 분)이 티격태격하다가 사랑의 감정을 싹 틔우는 로맨틱 코미디의 정석적인 전개 외에도, 우울증, 번아웃 등을 앓는 청춘들의 마음을 섬세하게 들여다보며 시청자들의 공감을 끌어내고 있다. 병원을 배경으로, 의사들이 주인공으로 나섰지만, 청춘들의 흔들리는 마음을 살피는데 방점을 찍으면서 특유의 섬세함을 발휘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