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번째 행사…여당 4·10 총선 참패 후에는 한달만
영수회담·이태원참사 특별법 처리 협치 무드 깨지고
원구성 협상 평행선에 전세사기특별법 처리도 뇌관
野, 25일 서울 도심 대규모 '거리 투쟁' 등 여론전 지속
22대 국회 개원 직전 채상병 특검법(해병대 채상병 사망 사건 수사 외압 의혹 특검법)으로 정국이 급격히 경색됐다. 야권이 의석 우위를 통해 입법을 강행처리하면, 정부·여당은 재의요구권(거부권)으로 이를 막는 악순환의 고리가 또 이어졌다.
이태원참사 특별법 합의 처리로 모처럼 형성된 협치 기류는 다시 위기를 맞았고, 야권에서는 기다렸다는 듯 "전쟁을 피하지 않겠다"며 전의를 불태웠다. 야권은 국회에서 규탄대회와 강성당원들이 참여한 난상토론을 열었고, 나아가 대규모 거리 투쟁까지 예고하는 등 강경 노선을 끌어가는 분위기다.
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채상병 특검법을 28일 열리는 21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재의결 시도할 방침이다. 이것이 부결돼 21대 국회에서 폐기될 경우에는 22대 국회 개원 즉시 1호 법안으로 추진한다.
윤 대통령이 21일 채상병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자 민주당을 비롯한 범야권 6개 정당과 시민사회단체는 국회본청 계단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여당을 강력 규탄했다.
이 자리에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특검을 거부하는 자가 범인이라고 윤석열 (20대 대선 당시) 대통령 후보가 말했는데, 윤 대통령이 채해병 특검을 거부했다. 그렇다면 윤 대통령은 범인이라는 것을 스스로 자백한 것"이라며 "범인임을 자백했으니 이제 범인으로서 그 범행에 대해서 책임을 물어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비판했다.
박찬대 원내대표는 이에 앞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참 할 말을 잃게 하는 고집불통과 일방통행·역주행 정권"이라며 "역대 최악의 대통령이라는 오명을 길이길이 역사에 남길 것이다. 전쟁을 원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전쟁을 피하지도 않겠다"라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습관성 탄핵과 특검 관철 의사를 보이고 있다면서 거부권 행사의 불가피성을 강조했다. 해외 사례까지 들어 정당성을 강조하는 행보도 보였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회의에서 "여소야대 상황에서 야당이 일방적 독주를 하고 입법 권한을 남용하고 행정부의 권한을 침해할 경우 최소한의 방어권이 재의요구권 즉, 거부권"이라며 "우리와 같은 대통령제를 채택한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도 거부권을 11번 행사한 바 있고, 최근 이스라엘 안보 원조 지지 법안 역시 거부권 행사를 예고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미국 대통령제에서도 역사상 2595건의 대통령 거부권이 발동됐고, 루스벨트 대통령은 임기 중 635건의 거부권을 행사했다"며 "거부권을 행사했다고 탄핵이 거론되지도 않았다"고 엄호했다.
민주당은 거부권 정국과 맞물려 정부·여당에 대한 반발 여론을 고조시킬 계획으로, 이날 국회 규탄대회에 이어 이번 주말엔 대규모 장외집회를 연다. 오는 25일 야권은 서울 도심에서 대규모 집회를 진행하는 등 거리 여론전이 예정돼있다.
급기야 이재명 대표는 특검법 재의결을 위해 당원들의 지혜가 필요하다면서, 이날 저녁 7시부터 국회본청 앞 천막농성장에서 3시간이 넘는 난상토론까지 진행했다.
이 대표는 현장에서 "채해병 특검 문제는 정부가 거부를 했다는데 의미도 있지만 우리가 어떻게 싸워나갈 것인가, 싸워나갈 주체가 과연 누구냐와 관련한 측면도 있다"며 "국회의원들이 싸우냐, 국민과 대중이 투쟁 주체냐, 양자 관계는 어떠한 것이냐 등의 의미도 있다"고 말했다.
당원들에 앞서 발언자로 나선 정원철 해병대 예비역 전국연대 회장은 "지금까지 왔다는 것은 국민의힘도 책임이 있다는 것"이라며 "의식이 있는 의원들께서 동참해 주시리라 믿는다. 보수의 가치를 지키고자 하는 국회의원들께서 제발 좀 (찬성 투표에) 참여해 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야권은 정부·여당을 향해 "총선 민의를 거부했다"는 강경 비판을 쏟아내는 동시에, 윤 대통령의 거부권을 무력화하기 위해 국민의힘의 이탈표를 기대하는 중이다.
여당에서 이탈표가 17표 이상 나올 경우 특검법은 통과된다. 안철수 의원이 '소신투표'를 강조하며 표결 찬성입장을 보이는 데 더해, 현역 의원 중 22대에 불출마하거나 낙천·낙선된 의원들 일부도 이탈을 할 수 있다. 안 의원과 함께 유의동·김웅 의원도 공개적인 특검법 찬성 입장을 밝혀 국민의힘으로선 안도하기는 이른 상황이다.
국민의힘은 단일대오에 균열이 가선 안 되는 만큼 의원들을 상대로 표 단속을 지속하고 있다. 하지만 민주당은 이번에 특검법이 부결되더라도 22대 국회 내 처리를 공언하고 있어, 여당 지도부의 고심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에 내정된 우원식 민주당 의원은 "22대 국회에서는 대통령의 거부권 남발로 인한 삼권분립 훼손에 단호히 맞설 것이다. 헌법정신을 수호하여 국민의 기본권을 높일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채상병 특검법을 반드시 통과시키겠다"라고도 예고했다.
민주당이 여야 이견이 큰 '전세사기특별법' 강행 의지를 보이는 것 또한 정국의 변수로 부상했다. 전세사기 피해자를 '선(先) 구제 후(後) 회수' 방식으로 지원하는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 안정에 관한 특별법(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은 민주당을 포함한 야권의 주도로 지난 2일 국회 본회의에 부의됐다. 민주당은 28일 열릴 본회의에서 채상병 특검법 관철과 함께 전세사기특별법 통과에도 방점을 찍을 계획이다.
이 대표는 '전세사기특별법' 처리를 못박으면서 "정부가 일상이 무너진 피해자를 지켜주기는커녕 사지로 몰아넣고 있다"면서 여당의 입법 협조를 압박했다.
또한 여야 원내지도부가 22대 국회 원 구성 협상을 공식 시작했지만 합의점을 도출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거부권 정국이 결과에 영향을 미칠 것이란 관측도 적지 않다.
민주당은 법제사법위원회와 운영위원회 확보를 포함해 18개 국회 상임위 가운데 11개의 위원장직을 가져가겠단 입장을 꺾지 않고 있다. 민주당의 입장으로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남용과 독선을 이유로, '견제 차원'에서 굵직한 상임위원장을 차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울 공산이 크다. 이를 통해 원 구성 협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단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국회법에 따르면 개원 직후 열리는 임시국회 첫 본회의에서 국회의장단을 선출하고, 이로부터 3일 안에 상임위원장을 선출해야 한다. 22대 국회 첫 본회의는 다음달 5일 열린다. 때문에 이틀 뒤인 7일이 원 구성 협상 시한이지만, 여야의 극한 대치가 이어질 경우 협상이 속도를 내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