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폴 사이먼’ 포크 가수 강은철, 단독 콘서트 성황리 개최
드문 콘서트에 2층까지 만석…관람 매너 최고의 관객과 하나 돼
감성 음악에 울고 넉살 유머에 웃고…힐링 콘서트로 음악성 과시
‘포크송의 전설’ 가수 강은철이 지난 26일 ‘강은철 콘서트: 그해 여름의 시작’을 열었다. 경기도 고양시 고양아람누리 새라새극장은 그의 음악을 들으러 온 관객들로 2층까지 만석이었다.
티켓 가격 2만 2000원, 25만 원이 흔한 시대에 10분의 1 가격이었지만 가수 강은철은 그 열 배를 내도 아깝지 않을 공연을 펼쳤다.
스스로 작사·작곡하고 연주하는 음악인인 만큼 함께할 연주 세션의 구성과 규모에 대한 ‘바람’이 있었지만, 관람 문턱을 낮추기 위해 알차게 꾸리는 대신 본인의 음악적 노력으로 메웠다. 공연을 본 관객이라면 추호도 부족함이 없었다고 동의할 정성 어린 완성도였다.
강은철은 이번 공연에서 가수들도 넋 놓고 듣기로 유명한 해외 가요들을 들려줬다.
‘한국의 폴 사이먼’답게, 사이먼 앤 가펑클(폴 사이먼과 아트 가펑클 듀오) 데뷔 앨범에 있는 노래 ‘The sound of silence’와 스페인 치하 페루 농민의 심경을 마추픽추를 떠나야만 했던 잉카인에 빗댄 명곡 ‘EL condor pasa’로 무대를 열었다. 사이먼이 작곡한 영화 ‘졸업’의 테마곡 ‘Mrs. Robinson’와 ‘The boxer’에 이어 명반으로 평가받는 마지막 앨범에 수록된 ‘Bridge over Troubled Water’까지 포크송의 진수를 만끽하는 시간이었다.
영국 팝 가수 보니 타일러의 ‘It’s a heartache’으로 떼창을 유발하고, 미국 록밴드 크리던스 클리어워터 리바이벌(CCR)의 ‘hey, tonight’으로 흥을 돋우기도 했다.
당연히 우리 가요도 불렀다. 가수 김광석의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와 장은아의 ‘이 거리를 생각하세요’는 마치 강은철이 원가수인 것처럼 자연스러웠고 원곡 가수의 성별을 무색하게 했다.
그래도 더 좋았던 건 강은철의 노래, 또 자작곡들이었다.
경남 진해 삼포항에 노래비가 있을 만큼 유명한 전 국민 애창곡 ‘삼포로 가는 길’(작사·작곡 이혜민)이 언제 들어도 좋은 한국의 대표 포크송임을 다시금 느끼게 하는 무대였다. 강은철은 한 음절 한 음절, 한 마디 한 마디 정성으로 불렀다. 1983년부터 40년 넘게 부른 곡이라서 편히 부르는 게 아니라 그 역사만큼 공을 들인 노래를 통해 나이를 잊은 청아한 음색과 순수한 시적 감성이 돋보였다.
‘누구 엄마’로 불리며 이름이 잊혀 가는 아내를 생각하며 만든 노래 ‘아내일기’, 블루스 느낌이 짙은 ‘자화상’, 내 마음 상하게 하면 벌 받을 거라고 귀엽게 투정하는 밝은 곡 ‘벌 받을 텐데’까지 관객의 감성을 높였다 가라앉혔다 밀었다 당겼다 하며 자작곡들을 선보였다.
특히 ‘내 잘못인가’가 듣는 이의 마음을 활짝 열며 귀를 파고들었다. 깊고 푸른 서정성, 강은철의 음악 세계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대곡이다. ‘삼포로 가는 길’을 이을 명곡임에도 널리 퍼져 있지 않은 현실이 아쉬운 웰메이드 노래다.
“다른 무대에서는 제 노래는 한 곡밖에 못 하는데 오늘은 여러 곡 들려 드려서 좋다”는 소개말이 안타까울 만큼, 사실 강은철에게는 좋은 노래가 많다.
데뷔곡 ‘흩어진 마음’부터 ‘나룻배’ ‘회전목마’ ‘사랑의 소곡’ ‘내가 찾는 아이’ ‘그리움’ ‘소라껍질 귀에 대면’ ‘그 누가 아는가’ ‘기다림’ ‘나의 노래’ ‘눈물이 나면은’ ‘마음 달래듯’ ‘기다림’ ‘강건너 저곳에’ ‘그래도 머물것은’ ‘들꽃’ ‘사랑하는 님을 찾으면’ ‘사월의 여인’ 등의 노래들을 언제 실컷 부르고 들을 수 있을까. 다행히 강은철의 음색은 나이 들지 않고 있으나 가수뿐 아니라 듣는 우리, 인간의 생은 유한한데 말이다.
그 숱한 노래 중 고르고 골라 조금 들려주었을 뿐인데 객석에는 신나서 마주하는 박수, 남몰래 훔치는 눈물이 이어졌다. 어떤 이는 손수건에 얼굴을 묻고, 다른 이는 공연이 끝나고도 훌쩍였다. 서로 모른 척 무대에 집중했다.
강은철의 입담이 이리 좋은 줄 처음 알았다. 하나만 예를 들면.
“제가 ‘사이먼 앤 가펑클’ 노래 자주 하니까 저랑 폴 사이먼을 비교하는 분들이 계세요. ‘한국의 폴 사이먼’이다, ‘강 사이먼’이다 좋죠, 영광입니다. 그런데 외모까지 비슷하다고 하시는 건 제가 좀 기분이 별로예요. 사이먼 키가 158cm거든요, 저랑은 많이 차이가 나는데……, 저는 161cm, 160대거든요. (객석에서 터지는 밝은 웃음소리) 그리고 사실 폴 사이먼이 미국에서 그리 잘생긴 축으로 분류되는 가수가 아니에요, 그런데 저랑 비슷하다고 하시면… 네, 제 기분이 좀 그래요.”
강은철은 유일한 게스트로 등장한 양하영을 두고도 “음악 하랴 학생들 가르치랴 바쁜 건 알지만, 그래도 너무 가수 얼굴을 기준으로 (나처럼) 잘생긴 사람 콘서트에만 게스트 나가지 말고, 여러 가수 공연에 힘을 주면 좋겠다”고 넉살 좋게 말했다. 외모를 소재로 한 농담을, 그것도 본인은 전혀 웃지 않고 태연하게 말하며 큰 웃음 주는 재주는 나이를 잊게 하는 귀여움이었다.
강은철의 깊은 음악성에 발랄한 유머와 더불어 ‘강은철 콘서트’를 빛낸 두 가지 요소를 끝으로 소개하고 싶다.
먼저, 강은철의 콘서트는 고양시를 터전 삼아 지역민의 정서를 함양하는 대중문화의 저변 확대를 힘쓰는 ‘두레콘서트’의 158번째 행사였다. ‘두레’는 우리 조상들이 농번기에 농사일을 공동으로 하기 위해 마을 단위로 만든 자생 조직이다. ‘지역에서 함께’라는 뜻을 담은 이 콘서트는 음악을 좋아하는 치과 의사 황선범 씨의 문화사랑 뚝심이 14년 넘도록 축이 되고 있다.
두 번째는 이날 ‘강은철 콘서트: 그해 여름의 시작’의 관람객분들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몰입과 집중을 보여주었고, 뜨거운 호응으로 가수 강은철에 더해 각자의 악기로 함께 무대를 완성한 성지송(첼로), 배유리(풀루트), 양병우(기타)까지 모든 아티스트에게 힘을 불어넣었다.
이에 강은철은 “오늘 정말 큰 힘을 얻었다. 오랫동안 코로나19로 힘겨우셨던 여러분께 작으나마 위로를 전하고팠던 공연이었는데 제가 에너지를 충전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날까지 노래하겠다고 약속하겠다. 목소리가 쇠 가는 제 마지막 무대는 가족들 앞에서의 노래겠지만, 그전까지는 여러분 앞에 설 수 있도록 평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관객들은 뜨겁고도 긴 박수로 화답했다.
앙코르 요청이 쇄도했고, 그 마지막은 다 함께 강은철의 기막힌 기타 연주에 맞추어 모두가 가수가 되어 ‘언덕에 올라’를 제창했다. 어린 시절로, 청춘의 그때로 데려다주는 강은철의 노래. 자상한 숨결로 듣는 이의 어깨를 토닥여 주는가 하면 맺힌 가슴을 뻥 뚫어 후련하게 하는 힐링 콘서트, 음악이 우리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를 보여준 명품 콘서트가 금세 다시 열리기를 앙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