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2009년 1월 한국사회에 필요한 것은 칼보다 관용
참으로 웃기는 정권이고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들이다. 도대체 미네르바가 어쨌다는 걸까?
“허위 사실을 대중에게 유포하여 20억 달러를 축냈다”는 것이 죄명인 모양인데, 외화 손실이야 정치를 잘못하고 정책 방향을 잘못 잡은 자기들 때문에 생긴 일이지 -아니면 미국 발 경제 위기에 새우 등터진 꼴이거나- 아니, 그것이 어째서 인터넷 논객 한 사람 때문에 벌어진 사건이란 말인가.
미네르바 개인을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를 개인적으로도 모를 뿐 아니라 그의 글을 읽은 적도 없다. 그에 대한 사법적 처리가 부당 한가 아닌가를 둘러싸고 둘로 쪼개진 국론 가운데 어느 한쪽 편에 서있는 건 더 더군다나 아니다. 다른 모든 사안과 마찬가지로 이 일에 대해서도 필자는 그저 필자만의 의견을 가질 뿐이고, 그것을 이런 기회를 빌려서 표현할 뿐이다.
미네르바가 자연인인지 집단 창작자인지, 배후에 어느 세력이 있는지, 그의 글 두 편이 과연 엄청난 국고 손실을 초래했는지 그건 검찰과 법원, 변호인단이 사실 심리와 법리 공방을 통해 밝힐 일이지, 우리 같은 사람들하고는 처음부터 무관한 일이다.
필자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 나아가 양심의 자유,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와 헌정 질서의 기초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을 뿐이다. 그 얘기에 앞서 대한민국 엘리트들의 치졸 성부터 말해보자.
검찰이 ‘31살의 전문대를 나온 무직자로 독학으로 경제 공부’ 운운하며 피의자의 인격을 공격하고, 제도권 언론들이 그 선정성에 매료되어 얼씨구나 하고 이를 대서특필할 때 당장 냇가로 달려가서 그것을 보고 들은 눈과 귀를 씻어버리고 싶었다.
아니, 독학으로 경제를 공부해서 그 어려운 분야에서 여론을 좌우할 만큼 나름대로 전문가가 되었다는 것, 전문대를 나오고 직업이 없다는 것 이 두 가지 사실이 과연 비난받아 마땅한 일일까.
이것은 현대판 종교 재판이고 마녀 사냥이다. 제도 언론은 검찰의 그런 원색적인 인격 비하 발언을 그 선정성에만 매료되어 책임 감 없이 그대로 보도하고 있다. 그러면서 검찰 발표를 충직하게 전달했을 뿐이고 자기들에겐 조금의 잘못도 없다는 투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권력 엘리트, 언론 엘리트들의 치졸함과 낮은 지적 수준을 다시한번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시공을 떠나 모든 지배 계층은 지배 계층다운 모럴과 윤리를 유지해야 피 지배층의 신뢰와 존경을 받을 수 있다. 피 지배층의 신뢰와 존경은 바로 사회 안전망으로 연결되고, 그 안전망 위에서 지배 계층 또한 ‘아랫것들’에 대한 자기 지배권을 공고하게 가져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세계의 상식이다.
그런데 이 땅의 지배층에겐 ‘상류층일수록 사회적 책무와 의무를 진다’는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가 통하지 않는 가보다. 체면이고 뭣이고 다 던져버리고 해괴한 논리로 오직 자기 계층의 이익만 도모하는 것은 그 사회의 헤게머니를 쥔 자들이 취할 행동 양식이 아니다.
자,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분서갱유와 사문난적(斯文亂賊) 이야기를 한번 해보자. 미네르바를 처벌하려면 사법 처리에 요구되는 필요충분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특정한 이론으로 무장하여 인터넷 매체 상에서 자기의 사상과 양심을 표현했다는 사실만으론 법적인 처벌이 처음부터 불가능하다.
이 사상으로 인하여 경제적 손실이 발생했다는 것은 그 인과 관계를 입증하기도 어렵다. 그런 그보다 사람이나 집단이 현 정권에 반대되는 어떤 사상이나 이념을 품었다고 해서 그 사상 자체를 사법 심판대에 세우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왜냐하면 사상과 표현의 자유는 그 사상의 내용과 표현 방식이 어떠하든 간에 인간으로서, 국민으로서 누구에게나 보장된 하늘로부터 받은 이른바 ‘천부(天賦)적 인권’이기 때문이다. 민주국가로서의 대한민국을 지탱하는 대들보 격인 기본권이기 때문이다.
설사 미네르바의 주장에 동조하는 세력들이 집회를 열고 정치 사회적 결사(結社)체를 만들었다고 해도 그 또한 법 심판의 대상일 수 없다. 집회결사의 자유 또한 천부인권이며 헌법으로 보장되는 대표적인 기본권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경우는 예외적으로 사법 처리가 가능할 수 있다. 즉, 일부 네티즌들이 미네르바의 주장에 동조하여 정치 사회적 결사를 이루고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는 집회 과정에서 국가의 기물을 파손하고 공공의 안녕 질서를 해치고 국헌을 문란하게 한 경우이다.
대한민국이 법치 국가인 이상, 그 때는 공공시설을 파손하고 사회 질서를 깨뜨렸다는 죄목으로 형사 처분이 가능하다. 그러니까 이번 미네르바 사건에서 사법의 칼날이 치고 들어 올 수 있는 여지는 오직 이 마지막 조건이 성숙되었다고 판단될 때에 한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 나머지는 사법권의 남용이다. 이념 대립에 편승하여 자기 정파의 이익을 도모하려는 술책일 따름이다.
검찰은 그렇다 치고 법원마저 이 정치적 술책에 동조해선 안 된다. 미네르바가 문제가 아니라, 이런 식으로 인간과 국민의 기본적인 권리가 유린되면 모든 사상과 표현에 얼마든지 앞으로 족쇄가 채일 수 있다. 이는 우리 스스로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를 부정하는 처사이며, 문명과 문화에 반(反)하는 폭거가 아닐 수 없다.
옛날에 춘추 전국 시대를 제패하고 처음으로 중원에 통일 국가를 세운 진시황은 법가(法家)만 남기고 제자백가의 모든 사상과 논객들을 탄압했다. 법가와 갈래가 다른 논객들을 모두 감옥에 가두고, 법가 사상을 담은 서적이 아니면 모두 모아 불태워 버렸다.
그러나 법의 힘을 빌린 그 같은 폭거는 오히려 문명과 국운의 퇴보를 가져왔고, 법을 통하여 부국강병을 꿈꾸었던 진(秦) 왕조는 결국 30년을 못 버티고 무너졌다. 어디 그 뿐이던가. 우리나라와 중국의 수많은 역대 왕조에서 그 시대의 주류 이념에 반한다는 명분으로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몰려 얼마나 많은 논객들과 사상가들이 쓰러져 갔던가.
그러나 좁고 옹졸한 그런 세계관에 기초했던 모든 반(反) 문명적 처사들은 훗날 법의 심판보다 훨씬 무서운 역사의 심판을 모조리 받았고, 논객을 탄압했던 가해자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하나같이 자기 역사와 인류 앞에 죄인이 되어있다.
말하자면, 사상과 표현의 자유는 관용의 대상이지 결코 사법적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오죽했으면 보수의 원조 격인 한 야당 총재조차 “한두 개 글에 허위가 있다고 곧바로 처벌하는 것은 형식적 법치주의”라고 비판하고 나서겠는가.
기본권의 내재적 한계 운운하는 한나라당 정치인들은 무식의 소치를 부끄러워하거나 아니면 양심에 두 손을 얹고 스스로를 반성해야 할 거다. 미국, 일본, 유럽 등에 수많은 좌파 논객들이 버젓하게 활동하고 있고 공산당마저 합법화되어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반(反)정부와 반(反)국가는 차원이 다르다. 실정법을 물리적인 행동으로 위반하지 않는 한, 공산주의 사상을 품었다고 해서, 그것을 대중 앞에 표현했다고 해서 처벌할 수는 없다. 모든 사상과 이념은 자유가 그 생명이다. 인간의 영혼을 쇠사슬로 묶을 수 있다고 여긴다면 그것은 오산이고 모독이다.
미네르바 변호인단이 신청한 구속적부심 심사가 15일 오후 3시에 어느 판사실에서 열린다고 한다. 법은 규율이기에 앞서 양식(良識)과 상식이라고 배웠다. 법은 윤리와 도덕의 최소한이라고 배웠다. 법관들에게 문화와 문명, 강한 대한민국을 향한 보다 열린 자세를 촉구하고 싶다. 법조문의 형식적인 적용을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여기는 법 기술자에 머물러선 진정한 법률가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하고, 법으로 흥한 자 법으로 망한다는 사실을 역사는 우리에게 엄중하게 웅변하고 있다. 2009년 1월의 한국 사회에 필요한 것은 칼보다는 관용의 정신이 아닌가 한다. 미네르바를 즉각 석방해서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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