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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익 없다는데…美 트럼프, 관세 카드에 반도체 굳이 끌어들이는 이유


입력 2025.02.12 11:05 수정 2025.02.12 11:06        조인영 기자 (ciy8100@dailian.co.kr)

반도체 관세 부과 시 조달 단가 상승…"크게 못올릴 것"

관세 지렛대로 美 투자 확대 속셈…투자 여부에 따라 무관세 또는 세율↓ 전망

효과 적다고 판단할 경우 반도체 보조금 축소·폐지로 지속 압박 가능성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뉴시스

미국 트럼프 정부의 '관세 폭탄'이 반도체까지 확산될 우려가 번지고 있다. 철강·알루미늄 25% 관세 부과를 발표한 10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자동차, 반도체, 의약품 관세도 검토중"이라고 밝혀 시장이 크게 들썩였다. 대미 수출 규모가 큰 한국 반도체도 영향권에 든다.


첨단 메모리 주 수요처가 빅테크인 점 등을 감안하면 관세 부과로 인한 미국의 실익은 크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럼에도 트럼프 정부가 관세를 고집하는 것은 반도체 기업의 대미 투자를 늘리려는 속셈으로 풀이된다. 관세 카드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할 경우, 곧바로 반도체 보조금 축소·폐지를 꺼내들어 해외 기업을 압박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폭탄 발언으로 국내 반도체업계가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그는 반도체만 언급했을 뿐 구체적인 품목, 세율, 대상국, 시기 등은 밝히지 않아 기업들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범용 반도체 생산을 빠르게 늘리며 시장을 장악중인 중국 뿐 아니라 첨단 메모리·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제조 강국인 한국·대만을 겨냥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특히 메모리의 경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대미 수출 비중이 높아 영향권에 들 가능성이 제기된다.


SK하이닉스의 작년 3분기 누계 북미 매출액은 27조3058억원으로 1년 전과 견줘 180% 급증했다. 미 빅테크향 HBM(고대역폭메모리) 등 첨단 반도체 공급이 늘어난 영향이다. 이 기간 삼성전자의 미주 매출(가전·반도체 등)도 24% 늘어난 84조6771억원으로 파악된다.


양사의 대미 수출이 늘어난 것은 맞지만 그만큼 삼성·SK의 비중이 절대적인 결과이기도 하다.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D램 점유율은 삼성 41.1%, SK하이닉스 34.4%로 합산 점유율은 75%를 넘어선다.


점유율 견조 이유로 트렌드포스는 "데이터센터의 DDR5 및 HBM 수요 증가"라고 밝혔다. 데이터센터 증설은 아마존, MS(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메타 등 빅테크들이 앞장서는 상황이다. 데이터센터에는 최신 GPU(그래픽처리장치)가 필요하며 여기엔 HBM 등이 탑재된다.


관세 부과 시 조달 단가 상승…"반도체 관세 크게 못올릴 것"

만일 미국이 반도체 관세를 부과하게 되면 조달 단가가 상승하게 되고 제조사들은 자연스레 제품 가격을 올릴 수 밖에 없다. 이 부담은 미 현지 기업들이 지게 된다. 미 메모리 기업 마이크론이 있지만 삼성·SK 물량을 소화하기 힘들다. 관세 카드가 반도체 산업에 실익이 없을 것이라는 주장도 이 때문이다.


KB증권은 "대체재가 없는 한국 메모리 업체들의 점유율을 고려하면 미국 빅테크 기업들의 반도체 조달 단가 상승으로 향후 수익성 하락이 예상된다"면서 "마이크론 공장도 대부분 해외에 있어 자국 메모리 업체 공급 단가 인상도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글로벌 반도체 수요가 가장 큰 미국 시장에서 반도체 공급 단가 상승은 결국 미국에 더 큰 손해를 초래해 반도체 산업 관세 영향은 제한적인 수준에 그칠 전망"이라고 말했다.


미국 애리조나 피닉스에 건설중인 TSMC 공장. TSMC 애리조나 홈페이지 캡처
관세는 협상 카드…美 반도체 투자 여부에 따라 관세 없거나 세율↓ 전망

실익이 없음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에 반도체를 굳이 끌어들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미국 내 반도체 투자를 늘리기 위해 반도체 관세를 협상 카드로 쓰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트럼프 정부의 궁극적 의도는 미국 내에 반도체 공장을 지으라는 말"이라며 "한국 첨단 반도체는 미국이 꼭 필요로 하기 때문에 특정 nm 이하 첨단 반도체 또는 AI용 반도체에 대해서는 예외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호주의 철강 사례(면제 가능성)처럼 양자 간 협의를 통해 (대미) 투자 조건을 토대로 예외를 인정할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김용석 가천대 반도체교육원장도 "실익 없는 관세 인상을 미 빅테크 기업들이 반대할 것은 분명하므로 트럼프 정부는 상징적으로 소폭 인상할 가능성이 크고 미국에 공장을 더 지으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주고자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관세를 높이면 그들(외국 기업)이 와서 반도체 회사를 공짜로 만들 것"이라며 관세를 올려 해외 투자를 촉진하겠다는 의도를 피력해왔다. 관세를 올리면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이 알아서 미국에 투자 깃발을 꽂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미국이 자국 내에서 만들기 원하는 반도체는 첨단 제품이다. TSMC는 400억 달러를 들여 애리조나에 피닉스 1·2공장을 짓고 있다. 이곳에서는 각각 4nm·3nm(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제품이 양산된다. 삼성전자도 37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해 최첨단 팹을, SK하이닉스는 40억 달러를 들여 미국 인디애나주에 신규 어드밴스드 패키징 공장을 짓는다.


트럼프 정부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관세 카드를 지렛대로 해외 기업들에 투자 확대를 강력히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대만 TSMC는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 11일부터 이틀간 미국 애리조나주 공장에서 이사회를 열고 미국 내 생산능력을 늘리는 안을 논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만 언론은 "미 반도체 정책에 적극 협조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전했다.


TSMC가 미국에 공장을 추가로 늘리는 대가로, 반도체를 비롯해 미국의 대만 관세 폭탄을 벗어나겠다는 기대로 풀이된다.


삼성전자,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 파운드리 공장 건설 현장ⓒ연합뉴스
관세 효과 적다고 판단할 경우 보조금 축소·폐지로 지속 압박 가능성

미국에 파운드리 팹을 짓고 있는 삼성전자로서는 즉각 대미 투자 확대를 결정하기 힘들다. TSMC의 경우 애플, 엔비디아 등 주요 고객사가 빅테크여서 미 본토에 투자를 늘린다고 하더라도 안정적인 수주가 예상된다.


이와 달리 삼성은 파운드리 시황 악화로 작년 투자 규모를 축소했다. 경쟁사 대비 수율(양품 비율)이 저조하고 '큰 손' 유치에 난항을 겪고 있고 있기 때문이다. 환율·원자재 가격 상승, 반도체 인력난 등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김용석 원장은 "국내 기업은 미 공장 투자 강화로 화답해야겠지만 수율이 안나오는 상황에서 공장을 무작정 짓기만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환 상명대학교 교수는 "한국 반도체 업체들은 미 투자 확대를 전제로 빅테크와의 협업을 요구할 필요가 있다. HBM과 파운드리는 대표적인 수주 산업이기 때문에 미 라인 신증설=빅테크 수주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정부는 미국 내 투자 등 관세 카드가 먹히지 않는다고 판단할 경우 곧바로 보조금 축소·폐지를 꺼내들어 반도체 기업 압박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김용석 원장은 "반도체 기업들의 행보를 보면서 효과가 크지 않다고 판단할 시 바이든 정부에서 정한 보조금을 재협상하자고 주장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관세는 보조금을 없애거나 폐지하거나 조정하기 위한 사전 물밑 작업으로 보인다"면서도 "아직 미 정부의 요구가 구체화되지 않은만큼 우리는 상황을 차분히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인영 기자 (ciy8100@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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