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공화당, IRA 전기차 세제혜택 조기 폐지 법안 발의
"전기차 보조금 내년까지만"… 트럼프 공약 현실화
예상은 했지만… 전기차·배터리 업체들 타격 불가피
전기차 시장 성장하는데 미국만 후퇴?… 격차 벌릴 듯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주요 공약 중 하나였던 'IRA(인플레이션 감축법) 폐지'를 시작하려는 모양새다. 미국 상·하원에서 과반을 차지하고 있는 공화당이 조 바이든 정부의 IRA 세제 혜택을 조기 폐지하자는 법안을 내놓으면서다. 법안이 통과될 경우 보조금 혜택을 받던 국내 전기차, 배터리 업체들의 피해는 불가피하다.
문제는 IRA법안이 폐지되거나 축소된 이후부터다. 미국 전기차 시장 규모가 축소되더라도 점유율을 지키려면 포기할 수 없고, 이를 틈타 유럽, 인도, 베트남 등에선 중국 업체의 장악 속도가 빨라질 수 밖에 없어서다. 가뜩이나 높아진 관세 장벽에 투자여력이 줄어든 제조사들의 입장에선 진퇴양난의 처지에 놓이게 되는 셈이다.
13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에 따르면 하원 세입위원회 공화당 의원들은 12일(현지시간) IRA의 전기차 세액공제를 2027년에 폐지하는 내용을 담은 세제 법률 초안을 공개했다.
법안에는 IRA 세액공제 시한을 기존 2032년 12월 31일에서 2026년 12월 31일로 6년 앞당기는 내용이 담겼다. IRA는 최종 조립을 북미에서 하고 핵심광물 및 배터리 요건을 충족한 전기차를 구매한 납세자가 최대 7500달러의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도록 한 법안이다.
2026년 과세연도에 구매한 전기차에 대해서는 2009년 12월 31일∼2025년 12월 31일 사이 미국에 판매한 전기차가 20만대 초과인 제조사의 전기차인 경우, 기간과 상관없이 아예 세액공제를 받을 수 없도록 했다.
차량 대여(리스) 및 렌터카 등 상업용 전기차에 제공하던 원산지 혜택을 없애는 조항도 포함됐다. 앞서 바이든 정부는 한국 정부 및 자동차 업계의 요청을 수용해 상업용 전기차의 경우 원산지 요건을 충족하지 않아도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허용한 바 있다.
기존에도 2032년 일몰을 전제로 만들어진 법안이기는 했지만, 조기 폐지가 현실화된다면 세액공제를 받던 한국 업체들의 피해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현대차그룹의 경우 HMGMA(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 완공 전인 작년까지 리스를 통해 보조금 혜택을 받아왔으며, 올해부터 HMGMA에서 생산하는 현대차 아이오닉 5, 아이오닉 9, 기아 EV6, EV9와 앨라배마 공장에서 생산하는 제네시스 GV70 등 5종이 보조금 지급 대상에 포함됐다.
사실상 리스를 통해 우회해 보조금을 지급 받다 미국 현지 조립이라는 과제를 겨우 엄수한 지 2년 만에 보조금을 받을 수 없게 되는 셈이다. 현대차는 IRA 법안 시행 직후 HMGMA를 착공했으며, 여기에만 약 6조원을 들였다.
완성차뿐만 아니라 한국 배터리 업체들도 영향권에 들 예정이다. IRA에는 첨단제조 기술을 활용한 제품을 2022년 12월 31일 이후 미국에서 생산 및 판매할 경우 2023~2032년까지 세액을 공제해주는 항목이 있는데, 공화당은 이 역시 공제 기간을 2031년 말까지 축소했다. 이외에도 '금지된 외국 단체'에게 면허 생산 계약 등 물질적인 지원을 받는 생산품은 세액공제에서 제외하도록 했다.
문제는 IRA 폐지가 현실화된 이후다. IRA 폐지는 트럼프 대통령이 공약에서부터 내걸어온 만큼 업체들의 대비태세를 갖출 수 있었지만, IRA 폐지 이후 시장 변화와 글로벌 전기차 시장 재편에 대해선 발빠른 대비가 쉽지 않아서다. 실제 현대차 역시 IRA 폐지 시점을 올해 말로 예상하고 대비책을 마련해왔다.
현대차는 지난 1월 지난해 4분기 및 연간실적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IRA를 폐지하려면 의회를 통과해야 해서 그 과정이 금방 끝나지는 않을 것이고, 올해까지는 보조금이 유지될 것으로 본다"며 "이르면 9월부터 보조금이 축소될 수 있다고 보고 그 기준으로 시나리오 수립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IRA 폐지 이후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 양극화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중국 다음으로 전세계에서 2번째로 큰 규모의 미국 전기차 시장이 축소되는 반면, 유럽은 물론 베트남, 인도, 태국 등 신흥국의 전기차 시장이 빠르게 확대될 것이라는 예상이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트럼프 정부 임기 동안 미국 전기차 시장은 축소될 수 밖에 없는데, 워낙 시장 규모가 크고 향후 정책 방향이 어떻게 바뀔 지 모르는 만큼 아예 손놓고 있을 수도 없다"며 "문제는 미국에서 전기차 시장이 축소되는 사이 유럽은 물론 인도, 베트남 등의 신흥시장의 전기차 시장이 폭발적으로 커질 것이라는 점"이라고 말했다.
전기차 시장이 미국과 그 외 국가로 나눠질 경우, 중국 전기차 업체들의 글로벌 장악은 어느때보다 쉬운 구조가 된다. BYD 등 중국 전기차 업체들은 작년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100%의 고관세에 부딪혀 미국 시장에 발을 들이는 대신 이외 국가에서 공격적인 확장을 꾀해왔다. 유럽 시장에선 작년 최초로 점유율 5%를 돌파했고, 동남아 시장에서의 점유율은 이미 80%에 가깝다.
이에 따라 미국에서의 전기차 판매 및 시장 축소를 방관하기 어려운 글로벌 제조사들로서는 미국과 이외 시장 전략을 함께 가져가야하는 숙제를 안게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정부 임기 이후 미국 전기차 시장 향방을 알기 어려운 만큼 현재의 점유율은 필사적으로 유지해야하고, 이를 위해선 자체적인 전기차 프로모션을 늘릴 수 밖에 없어서다. 여기에 올해부터 25%의 자동차 관세까지 부과된 만큼 비용 부담은 더욱 크다.
유럽, 인도, 베트남 등 공격적으로 전기차를 확대해야하는 시장에서의 투자여력이 줄어들면 점유율 방어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태국, 유럽 등에 대규모 투자를 통해 생산 시설 확보에 나선 BYD에 대응하기 위해선 미국과 그외 전기차 시장에 대한 전략을 완전히 다르게 가져가야하는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BYD는 중국 내수가 탄탄히 받쳐주고 있지만, 미국으로의 진입이 어렵기 때문에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의 성장을 노린다면 무조건 유럽을 뚫어야하는 상황이다. 올해 유럽에서 어떻게든 점유율과 존재감을 키우려고 노력할 것"이라며 "미국 관세로 떨어진 수익을 방어해야하는 주요 업체들로서는 당장 유럽 점유율을 뺏길까봐 투자를 늘릴 수도 없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 지위에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한편, 미국 현지에서는 IRA 보조금 폐지 가능성에 대해 갑론을박이 일고 있다. 바이든 정부 당시 이미 투자가 이뤄져 혜택을 받은 주의 정치인들이 강력한 반대 의사를 내보일 가능성이 높아서다. 이에 세액공제 폐지가 아닌 축소로 수위가 낮아질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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