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에서 마주한 진실, AI는 결국 '전기'다 [기자수첩-산업]

임채현 기자 (hyun0796@dailian.co.kr)

입력 2025.05.24 07:00  수정 2025.05.24 07:00

기술도, 생태계도 말하지만... 본질은 전력

"두뇌 아무리 좋아도 심장 없으면 멈춘다"

기업들 '저전력' 매달리는데, 정부 어떤가

21일(현지시간)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대만 타이베이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에서 글로벌 미디어 간담회에 참석한 모습. ⓒ임채현 기자

컴퓨텍스 2025 현장에서 확인한 건 분명했다. AI의 두뇌는 GPU지만, 그것을 움직이는 심장은 전기였다. 4박5일간 생태계라는 단어가 귓전을 맴돌았지만, 전시를 관통한 실질적 키워드는 ‘전력’이었다. AI 주제 아래 기업들이 가장 많이 외치는 단어는 바로 '전력 효율'이었다. 칩 성능을 논하기 전에, 그 칩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돌릴 것인가'가 먼저 나올 수 밖에 없는 탓이다.


여담이지만, 실제 몸으로 체득한 경험이다. 모든 행사가 영어로 진행됐고, 현장에서 써본 AI 실시간 번역기는 '어쩜 이게 가능한가' 싶을 정도로 빠르게 응답해냈다. 입력한 텍스트가 전달되고, 수많은 GPU가 병렬 연산을 하며 전력을 소모하는, 그로 인해 생성된 텍스트가 다시 돌아오는 모든 여정이 전력을 기반으로 움직였다.


이번 행사에서 엔비디아는 폭스콘, 대만 정부와 협력해 AI 팩토리를 구축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는데, 초기 20메가와트(MW)에서 시작해 최대 100MW까지 확장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전력 인프라 자체가 산업 경쟁력의 핵심 설계 대상이 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다.


AI 팩토리를 '공장'이라 부르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젠슨 황은 기조연설에서 "데이터센터는 전력을 넣고 토큰을 출력하는 새로운 형태의 공장"이라고 정의했다. 더 이상 연산 능력만의 경쟁이 아니라 얼마나 효율적으로, 안정적으로 전기를 공급받을 수 있느냐가 AI 산업 생존을 좌우하는지를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대만은 민간 기업과 정부가 함께 움직이고 있다. 폭스콘은 전력 인프라부터 냉각, 전원공급장치(PDU)까지 통합 설계에 참여하고 있고, 대만 정부는 전력 확보와 부지 제공에 발 빠르게 나서고 있다. AI 산업을 키우기 위해 전력 인프라를 먼저 설계한 셈이다.


아이러니한 점은 AI 두뇌격에 해당하는 GPU, 그 GPU의 황제 젠슨 황이 이토록 전기를 강조하던 날, 한국에서는 희한한 풍문이 들려왔다. 유력 대통령 선거 후보들이 선거를 코앞에 두고 펼친 토론에서 AI 정책 공약을 앞세웠는데 정작 전력 공급에 대한 구체적 방안은 충분히 거론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공약에 앞서 현재 상황은 더욱 황당하다.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를 운반할 전력망이 부족해 발전소를 지어놓고도 발전을 못하는 전력도 대거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주민반대와 인허가 지연 등으로 인해 주요 송전선로 31곳 중 26곳 건설이 지연된 결과라는 것이다.


AI가 미래라면, 전력은 그 미래를 작동시키는 조건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기술만 말하고, 전기를 준비하지 않는다. AI를 논하려면, 전기를 먼저 묻고 전력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 대만 컴퓨텍스 현장에서 대만 총통, 젠슨 황, 그리고 기업들은 그 당연한 진실을 조용히 보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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