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 ‘바람길’과 함께 떠나는 여행 [공간을 기억하다]

장수정 기자 (jsj8580@dailian.co.kr)

입력 2025.05.23 13:51  수정 2025.05.23 13:52

[책방지기의 이야기㉓] 서울 중랑구 바람길

문화의 축이 온라인으로 이동하면서 OTT로 영화와 드라마·공연까지 쉽게 접할 수 있고, 전자책 역시 이미 생활의 한 부분이 됐습니다. 디지털화의 편리함에 익숙해지는 사이 자연스럽게 오프라인 공간은 외면을 받습니다. 그럼에도 공간이 갖는 고유한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면서 다시 주목을 받기도 합니다. 올해 문화팀은 ‘작은’ 공연장과 영화관·서점을 중심으로 ‘공간의 기억’을 되새기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 세계여행 끝에 얻은 ‘확신’


서울 중랑구 상봉동의 조용한 골목에 위치한 서점 바람길은 2016년, 박수현 책방지기가 375일간의 세계여행을 마친 뒤 열게 된 여행 전문 서점이다. 회사를 다니다가 퇴사한 이후,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확신’을 얻었다. 해외의 여러 서점을 둘러보던 중, 프랑스의 한 동네서점을 방문했는데, 이때 한 어른이 서점 바닥에 앉아 어린아이 셋에게 책을 읽어주는 장면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여행을 마친 뒤 돌아와 약 1년여의 준비 끝에 2016년 11월 바람길을 오픈했다.


ⓒ장수정 기자

서울 연남동을 비롯해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독립서점들이 꾸준히 생겨나는 등 ‘더 잘 될 만한’ 장소를 고민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중랑구에서 쭉 살아온 박 책방지기는 ‘잘 아는’ 동네에서 ‘마을 안 사랑방’을 마련하고픈 바람이 있었다. 당시에만 해도 상봉동에는 동네 서점이 없었고, 이에 바람길이 사랑방 역할을 하며 작은 문화 공간이 되길 바랐다. “북토크도 열고, 작은 사진전도 열면서 주민들에게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공간”을 꿈꿨다는 박 책방지기는 “오픈 당시에도 온라인으로 책을 사는 것이 자연스러웠는데, 이렇게 되면 오프라인 서점으로서의 가치가 충분할 것 같았다”고 말했다.


‘좋아하는 것’들로 서점을 가득 채워 ‘있고 싶은’ 공간으로 만든 것도 박 책방지기의 의도였다. 여행을 전문적으로 다루고, 초록과 노란색 조합으로 서점을 꾸며 ‘개성’을 더했다. 서점 문을 열고 들어서면 한눈에 들어오는 ‘세계 지도’를 통해 서점길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한편 방문한 나라를 기록하고, 앞으로 가보고 싶은 나라도 떠올린다.


◆ 여행 떠나고픈 이들, 한국 찾은 관광객들…여행으로 통하는 바람길


‘동아시아’,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등 대륙별로 구역을 나눈 바람길 서가에서는 여러 나라에 대한 다양한 책들을 만날 수 있다. 단순히 여행 소개 책이 아닌 그 나라를 쉽고, 더 깊게 알 수 있는 재밌는 책들로 호기심을 유발 중이다. 그림과 함께 설명된 책부터 그 나라의 언어가 그대로 담긴 원서 등 박 책방지기가 직접 고른 다채롭고, 흥미로운 책들로만 서가를 채웠다.


이에 대해 박 책방지기는 “거창하게 문화, 역사라고 표현할 수는 없겠지만, 소소한 것들을 알고 여행가면 더 재밌지 않나. 어떤 나라를 방문하기 전 ‘이 책은 보고 가셨으면 하는’ 책들을 선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책을 사고파는 것을 넘어, 함께 모여 후기를 나누며 여행을 더욱 풍성함도 더한다. 바람길에서는 작가를 초대해 독자들과 대화하는 북토크를 비롯해 여행 후기를 나누는 모임, 책과 맥주를 함께 즐기는 ‘책맥’ 등 다양한 모임을 진행 중인데, 20대부터 70대까지 여러 연령대의 독자들이 모인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오신 분을 초대해 그곳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인도 여행만 세 번 하신 분의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고 해당 모임에 대해 설명한 박 책방지기는 “모르는 건 서로 물어보기도 하고, 거창하게 주제를 두고 이야기하는 건 아니지만 소소하게 시간을 함께 보내는 공간을 마련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54개국을 여행하고, 또 독자들에게 들은 경험을 바탕으로 책을 직접 출판하기도 한다. 서울 중랑구를 소개하는 ‘중랑’, 한국에 관심이 있어 찾아온 관광객들을 위한 한식 레시피 소개 책 ‘BOP’, 역사로 만나는 제주 여행 등 여행을 떠나기 전 또는 한국을 찾은 여행객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재밌게’ 전달하기 위한 고민을 이어가고 있다.


한 예로 한식 레시피를 소개하는 ‘BOP’에 대해선 “해외에선 떡볶이, 불닭볶음면 등 한국 음식이 다 맵다고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더라. 그래서 그 외 음식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초록이 들어가는 느낌으로 책을 만들어 봤다”고 설명했다.


이 외에도 봉투에 책을 포장한 뒤 비행기 티켓 모양의 카드를 부착해 재미를 더하는 등 바람길만의 확고한 정체성을 부각하고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하는 시도도 이어나간다.


박 책방지기는 “여행처럼 오시면 좋을 것 같다. 여행 전 정보를 얻는 것도 좋고, 아니면 여행을 오듯이 편하게 서점을 즐겨주셔도 좋다. 혼자 오는 여행, 또는 함께 오는 사람과의 여행처럼 부담감이 없는 서점이 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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