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11시 제21대 이재명 대통령 취임
자동차 업계 쌓인 숙제… 美 관세가 최우선 과제
美 IRA 폐지 등 추가협상 남아… 컨트롤타워 역할 기대
"반기업 법안, 때 아냐… 기업들 숨통 먼저 틔워줘야"
제21대 대통령으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당선되면서 컨트롤타워 부재로 갈 곳을 잃었던 산업계에 기대감이 흘러나오고 있다. 특히 트럼프발(發) 관세에 협상 한 번 해보지 못하고 타격을 그대로 흡수해온 국내 자동차 업계에선 정부의 추가 협상을 최우선 과제로 꼽는 분위기다.
다만 노란봉투법, 상법개정안 등 민주당이 전면에서 추진해온 반기업 입법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되며 이에 따른 우려도 동시에 뒤따르고 있다. 글로벌 경쟁 심화에 미국의 자국우선주의가 짙어지고 있는 만큼 당장은 국내 기업들의 숨통을 틔워주는 정책이 우선돼야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해 말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이후 사실상 부재했던 국가 컨트롤 타워가 재건된 만큼, 4일 경재계에서는 기업 혁신을 당부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산업의 성장 엔진을 되살려 경제 재도약을 이끌고, 글로벌 환경 속에서 기업의 대외 통상 리스크를 줄여달라는 주문이 이어졌다.
한경협은 이날 당선 확정 직후 논평을 내고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해 혁신과 도전의 경영이 확산되도록 힘써달라”며 “적극적인 첨단 신산업 육성과 난관에 처한 K-제조업 재건으로 성장 엔진을 되살리는 것이 시급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기업 성장을 저해하는 각종 규제를 과감히 개선하고, 유연한 노동시장과 안정적인 노사관계를 구축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길 바란다”며 “분열된 사회를 하나로 모으고 국민통합을 이뤄 대한민국의 더 나은 미래를 여는 데 힘써달라”고 주문했다.
대미 수출 '1위' 자동차 몰락 막아라
이 대통령의 최우선 과제 중 하나로는 그간 국가 컨트롤 타워 부재로 힘을 싣지 못했던 '대미 협상'이 꼽힌다. 특히 한국의 대미 수출품목 1위인 자동차는 최근 트럼프발 자동차 관세가 시행된 이후 2개월 연속 수출량이 크게 하락한 상태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5월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자동차 수출은 작년 동기 대비 4.4% 감소한 62억달러로 집계됐다. 최대 자동차 시장인 미국으로의 수출은 무려 32% 급감하며 18억4000만달러를 기록했다. 트럼프 자동차 관세가 발효됐던 지난 4월보다 10%포인트 이상 쪼그라든 것으로, 지난 4월 대미 자동차 수출 감소율은 19.6%였다.
미국은 지난 4월부터 수입산 자동차에 25%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으며, 5월부터는 외국산 자동차 부품에도 25%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대미 수출 비중이 최대 85%에 달하는 현대차, 기아, 한국GM 등 완성차 업체는 물론 국내 부품업계까지 관세 부담이 장기화될 수록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는 구조다.
이미 글로벌 모든 국가에 동일한 세율을 적용 중인 만큼, 한국에 대한 관세율 조정을 타진하기 보다는 국내 자동차 업계에 대한 맞춤형 지원이 먼저 이뤄져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당장 타격을 덜 수 있는 금융·세제 지원 등 실질적 지원 방안을 포함한 비상 대응 체계가 시급하다는 평가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울며 겨자먹기로 대미 투자를 늘릴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관세까지 부담해야하는 업체들의 부담을 정부가 덜어주는 것 말고는 당장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며 "관세 부담으로 인한 수익 악화는 향후 미래 시장에 대한 투자를 줄이고, 이는 한국의 기술 경쟁력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난달부터 미국 공화당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IRA(인플레이션 감축법) 폐지 또는 축소 움직임에 있어선 발빠른 대응이 필요해보인다. 미국 상·하원에서 과반을 차지하고 있는 공화당은 조 바이든 전 정부의 IRA 세제 혜택 시한을 6년 앞당겨 내년 12월 31일자로 조기 폐지하자는 법안을 내놓은 바 있다.
법안이 통과될 경우 보조금 혜택을 받던 국내 전기차, 배터리 업체들의 피해는 불가피하다. 현대차그룹은 IRA 시행 이후 6조원을 투자해 미국 조지아 공장을 착공하고, 이후 3년 간 보조금 없이 버티다 올 초부터 5개 차종에 대해 보조금을 지급받게 됐다. 미국 현지 조립이라는 과제를 겨우 엄수한 지 2년 만에 보조금을 받을 수 없게 되는 셈이다.
IRA 폐지가 현실화된 이후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의 경쟁력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IRA 폐지는 트럼프 대통령이 공약에서부터 내걸어온 만큼 업체들의 대비태세를 갖출 수 있었지만, IRA 폐지 이후 시장 변화와 글로벌 전기차 시장 재편에 대해선 발빠른 대비가 쉽지 않아서다.
업계에서는 IRA 폐지 이후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 양극화 현상이 일어나며 중국이 빠르게 몸집을 불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미국 전기차 시장이 축소되는 반면, 유럽은 물론 베트남, 인도, 태국 등 신흥국의 전기차 시장이 빠르게 확대될 것이라는 예상이다. 전기차 시장이 미국과 그 외 국가로 나눠질 경우, 미 관세에서 자유로운 중국 전기차 업체들의 글로벌 장악은 어느때보다 쉬운 구조가 된다.
업계 관계자는 "트럼프 초기 관세 협상에서 국가 컨트롤 타워의 부재가 얼마나 큰 타격을 가져오는지 기업들은 이미 목격했다. 협상의 여지가 남은 분야에서 얼마나 지혜롭게 풀어내는 지가 관건"이라며 "정부가 주체적으로 협상력을 높여 경쟁이 심화된 글로벌 시장에서 기업들의 숨통을 틔워줄 수 있어야한다"고 말했다.
반기업 입법이 발목 잡을까… 기대 속 산재한 우려
국정 컨트롤 타워로서의 역할을 기대하면서도 이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던 반기업 입법들이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도 공존한다.
이 후보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에 가로막혔던 상법 개정안과 이른바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의 재추진을 공약한 바 있다. 이 후보는 상법 개정안 재부결 후에도 계속해서 재추진 의사를 밝혔고, 대선 전날인 지난 2일 한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서는 "(취임 후) 2∼3주 안에 (상법 개정안을) 처리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대통령실 정책실장으로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는 이한주 더불어민주당 민주연구원장은 4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일명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의 재처리 여부에 대해 "바로 할 것"이라고 했다.
노란봉투법과 상법개정안은 경재계가 크게 반발했던 법안으로, 국내 기업들의 경영 환경과 노사관계에 큰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노란봉투법은 사용자 정의를 확대하고 노조 활동으로 인한 노조의 손해배상책임을 제한하는 것을 골자로 한 법안으로, 하도급 노동자에 대한 원청 책임을 강화하고 쟁의행위 범위를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재계는 사용자의 개념을 '근로자의 근로 조건에 대해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자'로 모호하게 정의한 것이 죄형법주의에 반할뿐더러 법안이 불법 쟁의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청구를 제한해 노사분규와 불법행위를 조장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상법 개정안 역시 거대 야당 주도로 최근 국회에서 통과했으나 한덕수 전 대통령 권한대행이 거부권을 행사해 가로막혔다. 상법개정안은 이사 충실 의무 대상을 기존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자는 내용을 담은 법안으로, 입법 취지는 모든 주주의 이익을 공정하게 대우하자는 것이지만 기업의 의사 결정이 저해될 우려가 크다는 것이 산업계의 시각이다.
현재 대내외적으로 비용부담이 증가한 상황에서 이 후보가 제시한 주 4.5일제와 정년 연장도 기업들에겐 큰 걱정 거리다. 실제 올해 임단협(임금 및 단체협상)을 앞둔 현대차 노조는 정년 연장과 주 4.5일제를 올해 요구안에 반영한 상태다.
이에 업계에선 정부가 기업들의 숨통을 틔워주기 위해선 친노동 정책을 밀어붙이기 보다는 경영 환경을 보전해주는 방향이 우선돼야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정 컨트롤 타워가 부재했던 시간 동안 크게 흔들린 국내 기업들이 또 다시 스스로 위기를 헤쳐가야하는,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우려다.
경재계 관계자는 "노란봉투법, 상법개정안 등 민주당을 주축으로 추진됐던 반기업정책들은 기업들이 트럼프에 맞서고, 글로벌 시장에서 피튀기게 경쟁 중인 지금 시점에서는 때가 아니다"라며 "새정부가 국가 협상 테이블에서 국내 기업들을 끌어안고 목소리를 내주길 기대했던 기업들은 또 다시 혼자서 살 방법을 찾아야하는 상황을 맞게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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