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꽁꽁 숨겼던 '현대차 연구거점'의 개방… 왜?

편은지 기자 (silver@dailian.co.kr)

입력 2025.07.02 08:30  수정 2025.07.02 13:05

현대차·기아 'UX 스튜디오 서울' 방문기

꽁꽁 싸맸던 연구거점, 고객들에 최초 오픈

내 차 기술력 뜯어보기… 혁신 기술 한 곳에

일반 방문객 참여해 요구 사항 등 전달 가능

UX 스튜디오 서울 전경 ⓒ현대자동차




'자동차 속 미래 경험을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 갈 수 있다면?'


만들어주는 대로 타는 게 자동차인 줄 알았던 시대가 변화를 맞는다. 현대자동차·기아가 그간 꽁꽁 숨겨뒀던 연구거점을 모든 방문객에게 오픈하는 파격적인 시도를 감행하면서다.


이 곳에선 내 차에 들어간 기술을 하나하나 뜯어보는 것은 물론, 사용자의 관점에서 꼭 필요한 기능, 아쉬운 점 등을 직접 전달할 수 있다. 'UX(User Experience·사용자 경험)'의 의미와 가치를 그대로 살린, 말 그대로 사용자가 직접 경험을 선택하고 만들어가는 공간인 셈이다.


지난 1일 방문한 현대차 강남사옥 1층에는 오는 3일 공식 개관하는 'UX 스튜디오 서울'이 웅장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전면의 유리 통창 속에는 거대한 기계와 레이싱 게임을 연상케하는 각종 시설들이 수많은 행인들의 눈길을 빼앗는다. 2021년 서초구에 개관했던 UX 스튜디오를 강남역2분거리로 이전한 효과가 개관 전부터 드러나는 듯 했다.


눈에 띄는 외관과 강남역이라는 접근성에 집중한 건 이 곳의 쓰임새가 완전히 변화했기 때문이다. 기존 UX 스튜디오는 현대차·기아의 연구원들이 차량 UX 개발 과정에 활용하던 사내 협업 플랫폼이었다. UX 연구의 핵심인 사용자 조사 역시 특정 고객만 비공식적으로 초청해 운영해왔다.


하지만 앞으로는 기술 유출 등을 우려해 꽁꽁 싸맸던 이 곳에 누구든지 발을 들일 수 있다. 지나가다 호기심에 문을 열고 들어가 자유롭게 구경할 수 있고, 현대차가 테스트 중인 기술들을 미리 체험하고 의견을 낼 수도 있다.


현대차 연구원들은 이렇게 모인 사용자 의견을 개발에 참고하고, 향후 미래 기술에 반영하기도 한다. 일반 고객이 차량 UX 개발 과정에 실질적으로 참여하고 피드백을 제공하는 연구 플랫폼은 전세계 자동차 브랜드 가운데 UX 스튜디오 서울이 세계 최초다.


김효린 현대차그룹 AVP본부 피쳐전략실 상무는 "UX 스튜디오가 추구하는 가치를 기반으로 사용자들의 목소리에 더욱 집중하기 위해서 이곳에서 다양한 연구들을 진행해 나갈 예정"이라며 "국내뿐 아니라 유럽, 프랑크푸르트, 미국, 중국 UX 스튜디오에서도 함께 진행되고 있으며 이를 통해 글로벌 고객의 목소리도 차량 개발에 반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UX 테스트존 ⓒ현대자동차


UX 스튜디오 서울은 크게 UX 전시 콘텐츠를 체험하고 리서치에 참여할 수 있는 1층 '오픈랩'과 몰입형 UX 연구 공간인 2층 '어드밴스드 리서치 랩'으로 나뉜다. 1층은 고객 모두에게 열린 개방형 체험공간이며, 2층은 고객의 목소리를 기반으로 현대차·기아 연구원들이 연구를 수행하는 공간이다.


UX 테스트 존은 모빌리티 UX 연구 과정에 대해 방문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공간이며 ▲UX 인사이트 ▲UX 콘셉트 ▲UX 검증 구역으로 구성된다. 현대차∙기아의 UX 콘셉트가 어떻게 개발되고, 구현, 검증되는지 순차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고객들이 UX 테스트 존에서 체험을 통해 보여주는 다양한 행동 데이터들은 향후 차량 개발에 직접적으로 반영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먼저 UX 인사이트 구역에서는 전반적인 UX 연구 과정을 대형 디스플레이의 콘텐츠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도어, 시트, 무빙 콘솔 등 다양한 UX 콘셉트가 반영된 모형을 체험해볼 수 있으며 모빌리티 사용자 경험에 대한 방문객의 아이디어도 남길 수 있다.


다음으로 UX 콘셉트 구역에는 나무로 만든 '스터디 벅'이 구현돼 있다. 이 안에서 차량 공간 구성, 시트 및 수납 기능, 이동 콘솔 등 다양한 UX 콘셉트를 직접 확인할 수 있으며 VR 기기를 통해 차량에 적용된 UX를 몰입감 있게 경험할 수 있다.


가상 주행 환경을 체험할 수 있는 '검증 벅'ⓒ데일리안 편은지 기자


UX 검증 구역에서는 '검증 벅'을 통해 주행 시뮬레이션을 체험할 수 있다. 가상 주행 환경이 전방 LED 월에 표시되며, 검증 벅에 탑승해 실제 운전 상황처럼 다양한 기기를 조작해 볼 수 있다. 특히 아이트래커를 활용해 운전자의 시선 데이터를 수집하여 기능 동작과 시선 분산에 따른 사용성 지표를 도출하고 테스트 결과를 검증할 수 있다.


현대차그룹이 전사적으로 힘을 쏟고 있는 'SDV(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 기술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됐다. SDV 존에는 지난 3월 최초 공개된 E&E(전기·전자) 아키텍처 전시물이 전시됐다. E&E 아키텍처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분리(디커플링) 구조를 바탕으로, 제어기를 고성능 컴퓨터(HPVC)와 존 컨트롤러로 통합한 설계 방식이다.


E&E 아키텍처를 도입하면 기존 차량 아키텍처 대비 제어기를 약 66%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와이어링 하네스를 감축해 시스템 복잡성을 낮추고 경량화 할 수 있다. 동시에 지속적인 업데이트를 통해 항상 최신의 차량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플레오스 커넥트가 장착된 아이오닉6 모델.ⓒ데일리안 편은지 기자


SDV 시대에 사용자가 가장 크게 체감할 수 있는 차세대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플레오스 커넥트’도 직접 경험이 가능하다. 이 곳에는 플레오스 커넥트가 장착된 아이오닉6 모델이 전시돼있는데, 외관은 길거리에서 보이는 아이오닉6와 같지만 내부에는 마치 테슬라와 같은 널찍한 디스플레이가 사용자를 맞이한다.


플레오스 커넥트는 모바일과 차량 간 연결성을 강화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 맥락 인식 기반 음성 어시스턴트 '글레오 AI'가 탑재됐는데, 차량 내부에 앉아 '글레오, 창문 닫아줘'라는 명령을 하니 즉각적으로 제어를 해냈다. '글레오, 주유구와 트렁크 열어줘'라는 복합 명령도 똑똑하게 수행해낸다.


현대차∙기아의 사용자 경험 변천사가 기록된 박물관 격의 공간도 마련됐다. 인체의 다섯 가지 감각을 테마로 운전자 시점에서 교감할 수 있는 기획 전시가 열리며, 첫 전시 주제는 ‘시각의 경험’으로 현대차∙기아의 클러스터, 센터페시아 등 정보 전달 장치의 변화를 전시하고 기술의 진화 과정을 소개한다. 1990년대 그랜저 내부의 계기판과 최신형 그랜저의 계기판을 한눈에 보고, 변화를 즉각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식이다.


연구 고도화가 이뤄지는 피처개발룸ⓒ데일리안 편은지 기자


고객들의 경험과 목소리를 바탕으로 2층에선 보다 심도있는 연구가 이뤄진다. 2층에는 총 5개의 피쳐 개발룸이 자리하고 있는데, 보안 구역으로 운영된다. 고객의 실질적인 피드백을 바탕으로 연구원과 특정 고객이 아이디어를 고도화시키는 과정이 이곳에서 이뤄진다.


피쳐 개발룸은 ▲자율주행 UX ▲고성능 차량 UX ▲인간과 기계의 상호작용 등 각 분야별로 세분화된 연구공간이다. UX 연구원들의 실질적인 업무가 진행되는 곳으로, 특정 테마를 중심으로 빠르게 UX 콘셉트를 개발해 검증할 수 있도록 가변적으로 구성된 점이 특징이다.


예를들어, 피쳐 개발룸 중 하나인 '엔터 앤 엑싯(Enter&Exit) 룸'에서는 차량을 타고 내리는 경험, 트렁크, 주유구 등 외관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경험에 초점을 맞춘 연구가 진행된다. 일례로, 전기차 충전구가 특정 상황에서 열리지 않는다는 고객의 건의사항을 이곳에서 논의해 실제로 개선하기도 하고, 문이 잠긴 상태에서 트렁크를 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기도 했다.


이 곳에서 만난 현대차 연구원은 "문을 편하게 열고 닫고, 출발하기 전까지 사용자의 차량 이용 준비 과정들을 세세하게 다룬다. 기존에는 개발 시스템들이 하드웨어적이거나 혹은 기능 단위로 개발을 하다보니 기능과 기능 사이에 연결해 주는 그 과정들에서 조금 떨어지는 포인트들이 있었다"며 "사용자에게 자연스럽게 매끄러운 경험을 전달해 주고자 이런 것들을 하나하나 세세하게 뜯어보고 있다"고 말했다.


시뮬레이션 룸ⓒ데일리안 편은지 기자


피쳐개발룸에서 세심한 논의를 거친 기술은 시뮬레이션 룸에서 사용성 테스트가 이뤄진다. 고객의 목소리를 반영했을 때 사용성이 얼마나 개선될 수 있는지 등을 평가하는 곳이다.


특히 이 곳에선 준중형 세단에서 대형 SUV까지 차체 높이, 시야각 등 변형이 가능해 현대차그룹의 모든 모델의 상황을 구현할 수 있다. 가변 테스트 벅, 차량 움직임을 세밀하게 모사하는 6축 모션 시뮬레이터, 730개의 LED 모듈로 구현한 시야각 191도의 대형 커브드 디스플레이는 실제 운전하는 것과 유사한 평가 환경을 마련해준다.


테스트 차량의 몰입감을 위해 서울, 미국 샌프란시스코, 인도 델리 등 전 세계 주요 도시의 실제 지도를 기반으로 가상 환경을 구현하기도 했다.글로벌 유명 모터 레이싱 서킷도 동일하게 내재돼 있어 고성능 차량의 UX도 평가할 수 있다.


시뮬레이터 운행 중에는 벅 내부에 설치된 카메라와 센서를 통해 운전자의 행동과 주행 데이터가 취득되고 이후 데이터베이스에 모두 저장된다. 눈의 깜빡임부터 시선 처리, 핸즈 온오프 상황, 가속페달과 브레이크 페달을 밟는 정도와 시간, 토크 등이 세세하게 기록된다. 여기에서 얻은 데이터는 향후 자율주행, 스마트주차 등 기술을 개발하는 데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시뮬레이션 룸에서 가상 시뮬레이션을 마친 이후 기록된 운전자 데이터ⓒ데일리안 편은지 기자


전세계 완성차 브랜드들이 '기술 유출'을 우려해 숨겨뒀던 연구거점을 흔쾌히 개방한 바탕에는 '보다 많은 고객 데이터를 수집하겠다'는 욕심이 깔려있다. 미래 모빌리티로 평가받는 SDV, 자율주행 분야에서는 결국 사용자들의 수많은 데이터가 안정성을 담보하는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테슬라가 한 발 앞섰을 뿐, 아직까지 승자는 없는 시장인 만큼 개발 속도를 높이기 위한 시도로도 풀이된다. 연구 과정을 공개하고, 고객의 피드백을 즉각적으로 반영하면서 기술 개발 과정에서 오류를 줄이고, 안정성과 완성도를 높이겠다는 것이다.


방문객들에게 미래 기술력을 미리 체험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현대차그룹에 대한 신뢰도와 기대감을 높이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 현대차그룹으로선 빠른 피드백과 데이터 확보를, 고객으로선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를 높이는 효과를 함께 가져가는 셈이다.


UX스튜디오 서울 관계자는 "자율주행, SDV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지면서 고객들의 데이터가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더 많은 데이터를 확보하면서도, 미래 기술이 어떤 반응을 얻는지 바로 확인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이 공간의 개방이 필요했다"며 "자동차 속에서 할 수 있는 경험이 폭이 넓어지기 때문에 더 많은 소비자들이 관심을 가질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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