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쿨 오브 락’ (쏙) Black Sabbath ‘Iron Man’
무더웠던 7월의 첫 주말, 세계 음악계의 이목이 그레이트 브리튼 섬으로 쏠렸어. 영국에서 ‘빅 이벤트’가 두 개나 있었거든. 첫째, 영국 남서부 웨일스의 카디프에서 열린 오아시스 재결합 투어 첫 공연(4일·이하 현지시간). 리엄과 노엘이 손잡고 나온 장면으로 이미 ‘게임 오버’였달까. 둘째, 헤비메탈 역사에 한 획을 그을 만한 이벤트가 있었다고. 5일 영국 중부 버밍엄의 빌라 파크 스타디움에서 열린 10시간짜리 릴레이 콘서트 ‘Back to the Beginning’이야.
1968년 결성돼 ‘헤비메탈의 아버지’라 불린 전설적 밴드 블랙 새버스의 마지막 공연이었지. 약 9시간 동안은 후배 밴드들이 각자의 대표곡과 블랙 새버스 커버 곡을 부르며 바통을 이어가는 헌정 무대가 계속됐어. 밤이 깊어갈 무렵, 마지막 순서로 블랙 새버스의 보컬인 오지 오스번의 무대, 그리고 피날레로 블랙 새버스의 무대가 이어졌어.
마스토돈, 라이벌 선스, 앤스랙스, 헤일스톰, 램 오브 갓, 앨리스 인 체인스, 고지라, 판테라, 툴, 슬레이어, 건스 엔 로지스, 메탈리카…. 나열만 해도 숨이 가쁘고 가슴이 웅장해져 오는 라인업이 버밍엄의 낮을 더 뜨겁게 폭발시켜 버렸지.
저 스타디움을 가득 메운 4만2000명 중 하나였다면 정말 좋았겠지만 내 거처는 서울. 그 대신 공식 온라인 스트리밍으로 즐겼어. 실시간으로 한 번, VOD 형태로 두 번. 10시간짜리를 세 번 보니 주말이 어느새 다 가버렸지. 그 메탈의 도가니탕이 먹어도 먹어도 물리지 않더라고. ‘그래! 이게 생(生)이지. 은근슬쩍 끼워 넣는 미리 녹음된 음원 같은 거 말고! 기타 두 대, 베이스 한 대, 드럼 한 대! 이게 라이브지!’
출연진이 바뀌는 무대 교체 시간에는 상업 광고 대신에, 블랙 새버스에 대한 팬들의 헌정 영상이나 파킨슨병 환자와 소아 환우를 조명하는 영상이 이어졌어. 그 중 현장에 못 온 쟁쟁한 음악가들의 인사도 있었지.
배우 잭 블랙은 소년 소녀 메탈 신동들로 구성된 슈퍼 밴드와 함께 ‘Mr. Crowly’의 헌정 무대를 보여줬어. 반사적으로 영화 ‘스쿨 오브 락’(2003년)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지.
영화에서 잭 블랙이 연기한 듀이는 ‘워너비 로커, 현실은 루저’야. 버젓한 로커가 못 된 한을 초등학교 교실에서 푸는 역할. 오합지졸 초등학생들을 훈련시켜서 끝내주는 록 밴드로 만드는 게 영화의 줄기야. 명장면이 가득하지만 듀이가 학생들에게서 한 줄기 빛을 보는 장면을 잊을 수 없어.
영화 초반, 듀이는 말 안 통하는 꽉 막힌 학교에서 푸념이나 하며 오줌을 누고 있어. 그러다 문득 화장실 위층에서 들려오는 어렴풋한 음악 소리에 홀린 듯 소리의 근원을 찾아나서지. ‘진앙지’는 음악 연습실이었고 아이들은 제법 그럴듯한 실력으로 클래식 곡을 연주하고 있어.
그 곡은 다름 아닌 스페인 작곡가 호아킨 로드리고의 1939년 작품 ‘아란후에스 협주곡’이야. 협주곡이지만 피아노나 바이올린이 아니라 기타가 메인 악기라는 점에서 클래식 협주곡 가운데서도 특이한 케이스지.
잭 블랙 선생의 시선은 처음엔 피아노, 그 다음 심벌즈, 그리고 첼로, 마지막으로 클래식 기타로 이동해. 특히 클래식 앙상블과는 맞지 않게 과도한 텐션으로 심벌을 때리는 ‘예비 드러머’ 학생, 상당히 유려한 왼손 플레이를 선보이는 ‘예비 기타리스트’ 학생에게 눈길이 오래 머물러.
흥분한 블랙 선생. 카페인 과다처럼 신이 나서는 자기 차에서 전기기타와 건반 등속을 교실로 분주하게 날라 와.
교실에 와서는 ‘너희, 그렇게 연주 잘한다는 얘기 왜 진작 안 했냐’고 다그치며 기타 학생부터 앞쪽으로 호출하지. 단아하게 클래식 기타를 연주하던 그에게 전기기타를 들려주고는 가장 먼저 가르치는 곡이 뭐야?
‘Iron Man’! 블랙 새버스의 ‘Iron Man’이야. 그 다음으로 딥 퍼플의 ‘Smoke on the Water’, 다음으론 AC/DC의 ‘Highway to Hell’을 가르치지. 한 번 듣고 바로바로 따라 치는 학생. 블랙 교사의 흥은 더해만 가. 피아니스트 학생을 신시사이저 앞에 앉히고는 도어스의 ‘Touch Me’의 오르간 악보를 들이밀지. 역시 그루브를 제대로 타는 학생. 블랙은 ‘로런스는 피아노 천재/내 공연에서 빛날 거야’라고 개사까지 하며 그를 독려하지.
이 짧은 장면에서 나는 이미 어둠의 시초, 헤비메탈의 아버지 블랙 새버스에 대한 감독과 배우의 절절한 헌사를 보고 말았던 거야. 무슨 일에든 순서가 중요해. ‘Iron Man’-‘Smoke on the Water’-‘Highway to Hell’. 이 영화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밴드 음악은 AC/DC의 것들이지만 가장 먼저 전기기타를 가르치는 장면에서 ‘ABC’의 순서는 블랙 새버스-딥 퍼플-AC/DC인 거라고! A~Z에서 A가 새버스, 알파부터 오메가 사이에서 알파는 바로 새버스인 거라고!
이제 드디어 블랙 새버스의 기타리스트 토니 아이오미 이야기를 할 시간이야. 그의 별명이 다름 아닌 리프(riff)의 신이야. 리프야말로 헤비메탈을 헤비메탈로 만드는 핵심 요소지. 몇 개의 음으로 두서너 마디 연주하는 반복 악절. 극도로 미니멀한 음과 리듬 속에 음계, 화성, 리듬의 핵심을 꿰뚫어서 사람 미치게 하는 감성과 그루브를 만들어내는 게 고갱이지. 그 간단해 보이지만 어려운 일의 개척자이자 선구자가 바로 토니 아이오미야. ‘Iron Man’과 ‘War Pigs’의 리프를 들어봐, 아니 느껴봐 봐. 베토벤의 ‘운명’에도, 드보르자크의 ‘신세계로부터’에도 결코 무릎 꿇지 않을 저 웅장한 미니멀 감성 폭풍을….
5일에 열렸던 ‘Back to the Beginning’ 공연 이야기로 돌아가 볼까. 공연 제목은 ‘시작으로 돌아가다’를 의미해. 후배 밴드들에겐 헤비메탈의 시초를 만나러 오는 연어 같은 여정이 된 셈이고, 블랙 새버스의 멤버들에겐 자신들의 고향인 버밍엄 애스턴으로 돌아오는 길이기도 해. 하지만 음악적으로 따지자면 이 장르의 기본인 리프로 돌아오는 귀향길이라고도 할 수 있지. 10시간의 무대는 그대로 수십, 수백 가지 각종 리프의 향연이 돼버렸거든.
대장정의 피날레에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블랙 새버스의 네 멤버. 발라드 곡을 연주해서 쇠한 기력을 감추거나 관객 눈물이나 짜내려는 수작을 부리지 않았어. 단 네 곡짜리 무대였지만 쫀쫀하게 리프 중심의 메탈을 짜 넣었지.
‘War Pigs’, ‘N.I.B.’, ‘Iron Man’, ‘Paranoid’.
우리, 사는 게 힘들 땐 시작으로 돌아가자. 현대 사회의 복잡한 코드 진행과 기나긴 기타 솔로에서 길을 잃었다면 말이야. 그저 펄펄 끓는 두서너 음으로 족했던 시절로 돌아가자고. 맨 처음 이 삶의 노래가 시작된 곳으로. 뜨거웠던 리프의 시대로…!
임희윤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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