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 배론성지(성지) [한국의 아름다운 성당 50선㊱]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5.08.06 14:00  수정 2025.08.06 14:00

봄빛이 따사로운 날 배론성지를 찾았다. 배론은 마을 계곡이 배 밑창을 닮았다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배론은 약 240년을 이어오는 한국 천주교회 역사와 매우 밀접한 곳으로, 1800년대부터 박해를 피해 숨어들어온 교우들이 모여 형성된 교우촌이다. 교우들은 화전을 일구고 옹기를 구워 생활하며, 궁핍한 가운데에서도 신앙생활을 이어갔다.


최양업 토마스 신부 기념성당 정면 ⓒ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황사영은 배론의 토굴에서 중국 북경교구장 구베아 주교에게 박해 상황과 도움을 요청하는 편지를 쓴다. 백서가 중국으로 전달되는 과정에서 편지 심부름을 맡았던 황심 토마스가 체포되고, 황사영도 곧 체포되어 1801년 11월 5일 서울 서소문 밖에서 대역부도의 죄로 능지처참 된다. 그때 쓰였던 백서 원본은 현재 로마 교황청 바티칸 민속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배를 닮은 최양업 토마스 신부 기념성당 측면 ⓒ


황사영이 숨어서 백서를 쓰던 토굴 ⓒ

배론은 1855년부터 1866년까지 성요셉 신학당이 운영되었던 곳이다. 성요셉 신학당은 한국 교회 최초의 신학교이자 조선 최초의 근대신학교육 기관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1866년 병인박해로 두 분의 교수 신부님과 여덟 명의 신학생이 잡혀가며 신부가 탄생하지 못하고, 신학교는 폐교되고 배론 교우촌도 무너진다.


성요셉신학당 ⓒ

우리나라 두 번째 사제인 최양업 토마스(1821-1861)는 1836년 12월 김대건, 최방제와 함께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중국 마카오에 유학하여 신학교육을 받고, 1849년 4월 15일 중국 상해에서 사제품을 받는다. 그는 귀국 후 11년 6개월 동안 두메산골의 교우들을 사목 방문하며 고된 목자의 삶을 이어갔다. 1861년 6월 15일 경상도 전교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오던 중 과로로 문경에서 선종하였고, 그해 11월 교구장 베르뇌 주교에 의해 당시 신학교가 있었던 이곳 배론에 묻히게 되었다. 우리나라 첫 번째 사제인 김대건 신부가 피의 순교자라면, 두 번째 사제인 최양업 신부는 땀의 순교자라 하겠다. 조선의 가엾은 신자들을 위해 신부님의 흘린 땀과 노고는 성인으로 모시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최양업 토마스 신부 동상 ⓒ

배론성지에는 배의 형상으로 지어진 최양업 토마스 신부 기념성당, 황사영 백서 토굴, 성 요셉 신학당, 최양업 신부님의 묘소가 있다. 또 2020년에는 은총의 성모마리아 기도학교가 봉헌되었다.


성당 내부 ⓒ

마음을 비우는 연못이 있어 연못 속을 들여다보았다. 때마침 피어난 연산홍이 물속에 잠기고, 그 가운데로 예수성심상이 반영돼 지극히 아름답다. 마음을 비우고 그 자리에 예수님의 선하신 마음을 채우고 가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여진다.


마음을 비우는 연못 ⓒ

은총의 성모마리아 기도학교는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신앙 선조들의 정신이 남아있는 배론에서 교회의 전통 안에 잠들어 있던 기도를 배우고, 또 자신만의 기도를 찾고 전념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과 피정이 마련되어 있다. 피정의 집에 며칠 묵으며 기도를 배우고 또 기도에 전념해 볼 기회가 오기를 희망해 본다. 베론은 단풍 든 가을이면 더욱 아름답다.


o 주소 : 충청북도 제천시 배론성지길 296

o 전화 : 043-651-4527

o 주변 가볼 만한 곳 : 의림지, 청풍호, 용추폭포, 단양


홍덕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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