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심당도 반한 ‘대한민국 여름딸기’의 힘 [新농사직썰-혁신의 씨앗⑥]

배군득 기자 (lob13@dailian.co.kr)

입력 2025.08.12 09:10  수정 2025.08.12 09:11

단가 50%↑…농가 소득 이끈 여름딸기의 경제학

디지털 육종이 만든 품종 혁신의 현장

감자·배추·메밀이 이끄는 밥상 미래

국립식량과학원 고령지농업연구소는 여름딸기 품종 개발이 한창이다. 최근 개발한 고슬이 탐스럽게 영글어 수확이 한창이다.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

미래 농업의 희망을 싹 틔우는 현장. 농촌진흥청 연구소의 혁신적인 발자취를 따라간다. 농촌진흥청 연구소 곳곳에 숨겨진 혁신의 씨앗들을 찾아, 대한민국 농업의 현재와 미래를 조망하는 기획 시리즈 ‘혁신의 씨앗’을 시작한다. 신농사직썰 시즌4인 혁신의 씨앗은 기초 연구부터 실용화 단계까지, 끊임없이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는 연구자들의 열정과 숨겨진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달하고, 농업 발전을 위한 주요 사업들을 심층적으로 소개한다. 데일리안에서는 ‘혁신의 씨앗’ 시리즈를 통해 우리 농업의 밝은 미래를 조명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강원도 평창의 해발 750m 고지대. 한낮의 기온이 25℃를 넘지 않는 이곳에 들어서면, 대형 비닐하우스 안이 뜻밖의 풍경으로 가득하다. 잘 익은 붉은 딸기가 초록 잎 사이로 주렁주렁 달려 있기 때문이다.


한여름에 생딸기라니. 일반적인 딸기 농가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장면이다. 딸기는 보통 겨울과 봄 작물로, 6월부터 11월까지는 ‘단경기’라 불린다. 국내산 생과 공급이 거의 끊기는 것이다. 그러나 국립식량과학원 고령지농업연구소(이하 연구소)에서는 이 계절의 공백을 메우는 특별한 실험이 매년 이어지고 있다.


조지홍 고령지농업연구소장은 “고랭지는 여름에도 시원한 기온 덕에 겨울 작물의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유일한 무대”라며 “기후변화를 위기로만 볼 것이 아니라, 새로운 작물과 시장을 만드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여름딸기 품종을 연구하는 김도연 연구사가 고슬 품종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
단경기를 깨운 여름딸기


여름딸기의 가치가 시장에 알려진 것은 불과 몇 년 전이다. 해발 500m 이상의 고랭지 기후를 활용해 단경기에도 당도·경도·향이 우수한 생과 딸기를 안정적으로 생산하는 기술이 개발되면서다.


과거 여름철 제과점과 호텔, 카페는 수입산 냉동 딸기에 의존했다. 이런 상황이 고령지 여름딸기가 공급되자 확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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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의 명물 빵집 성심당은 여름딸기를 상품에 적극 활용하는 대표 사례다. 김도연 고령지농업연구소 농업연구사는 “냉동 딸기는 식감과 향에서 한계가 있었는데, 고령지 여름딸기는 차원이 다르다”며 “여름에도 생딸기 케이크를 낼 수 있다는 점에서 농가 매출이 꾸준히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고령지농업연구소 육성 여름딸기 품종은 국내 시장 점유율의 약 절반을 차지했다. 생산량은 ha당 30~50t에 달한다. 봄딸기에 비해 판매 단가는 20~50% 높다. 농가 입장에서는 안정적인 소득원인 셈이다.


연구소가 2010년대 이후 육성한 여름딸기 품종은 14종에 이른다. 주력 품종인 고하, 장하, 미하, 복하, 고슬은 각기 다른 특성과 시장 포지션을 지닌다.


고하는 사계성 품종으로 고온과 긴 낮 시간에서도 꽃이 잘 분화된다. 단맛과 신맛의 균형이 뛰어나다. 장하는 당도와 당산비가 겨울딸기 ‘설향’을 능가해 여름 생과용으로 최적이다.


미하는 과육이 단단하고 안토시아닌 함량이 많아 색이 진하다. 장거리 유통에 강하다. 복하는 고온 적응성이 뛰어나며 수확 공백이 짧아 농가 선호도가 높다. 고슬은 중일성 품종으로 여름과 겨울 모두 재배 가능하다. 수확 기간이 8개월 이상으로 길다.


성심당 등 프리미엄 빵집·호텔·카페에 납품하는 생딸기에서 통상적으로 요구하는 경도 0.9kgf 이상, 10Brix 이상의 당도, 품종 고유 향 유지 기준을 이들 품종이 충족하며 프리미엄 시장에 안착했다.


해발 710m에 위치한 고령지농업연구소는 이상고온 등에 적응하기 위한 다양한 연구를 하고 있다.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
이상고온과 병해도 버텨낸 고랭지 연구의 집념


여름딸기 재배지는 강원 평창·삼척·양구, 전북 무주, 경북 영양, 경남 합천 등 고랭지 전역으로 확대됐다. 연구소는 건강한 원묘 보급, 통상실시권 계약 확대, 해외 로열티 수출 계약 등을 통해 국내외 시장 진입을 가속화하고 있다.


그러나 기후변화로 인한 이상고온과 시들음병 확산은 여전히 도전 과제다. 이에 따라 고온기 수분 관리, 병 저항성 품종 육성, 친환경 방제기술 개발을 병행하며 현장 컨설팅을 강화하고 있다.


연구소는 여름딸기 품종 개발 속도를 높이기 위해 디지털 브리딩을 도입했다. 고온·장일 조건에서도 개화하는 유전자와 관련된 DNA 마커를 이용해 묘목 단계에서 유망 계통만 선발 계획 중이다.


또 당도·경도·향·병 저항성과 연관된 마커를 활용해 표지연관선발(MAS) 기법을 적용한다. 이를 통해 8~10년 걸리던 품종 개발 기간을 절반으로 줄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고령지농업연구소에서 연구 중인 감자 수경재배 모습.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
감자·배추·메밀…고랭지의 ‘3대 축’


고령지농업연구소 연구는 여름딸기에만 머물지 않는다. 국민 식생활의 근간이 되는 감자, 여름배추, 메밀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


감자는 기후변화 대응 품종 개발이 시급하다. 신품종 ‘선풍’은 감자바이러스와 더뎅이병에 강하고 수량이 ‘수미’보다 많다. 모양과 식감도 우수하다. 봄·여름·가을·겨울 재배형에 맞춘 재배기술 표준화, 무병묘 보급, 지역 브랜드화 전략도 병행하고 있다.


여름배추는 반쪽시들음병 방제를 위해 특허 받은 길항미생물퇴비가 도입됐다. 토양 훈증제 병행 처리시 70% 이상 방제가 가능하다. 윤작 시스템과 바이러스 차단 기술, 영상 기반 병해충 경보체계 등 스마트농업 기술을 적용 중이다.


메밀 분야에서는 ▲황금미소 ▲햇살미소 ▲고운미소 등 기능성과 생산성을 겸비한 국산 품종이 개발돼 밀원작물 확대와 자급률 향상에 기여하고 있다.



조지홍 소장이 고령지농업연구소의 비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

조 소장은 고령지농업연구소의 비전을 “생태 보존과 식량안보, 농가 소득을 동시에 달성하는 공익형 농업”이라 정의한다.


그는 “백두대간의 기후자원을 활용해 감자, 배추, 여름딸기, 메밀을 안정적으로 생산하고, 기후위기 속에서도 전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 식량 기반을 지키겠다”며 “친환경 기술과 디지털 육종으로 농업의 미래를 선도하겠다”고 강조했다.


백두대간 해발 710m 이상 고지대에서 여름에도 딸기를 키우는 일은 불가능해 보였던 도전이었다. 그러나 고령지농업연구소 연구진의 집념과 기술은 계절의 경계를 허물었다. 이제 그 현장은 농업의 미래를 앞당기는 혁신의 상징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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