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재정명령' 띄운 李대통령…왜?

송오미 기자 (sfironman1@dailian.co.kr)

입력 2026.04.01 00:00  수정 2026.04.01 00:00

1993년 김영삼 정부 금융실명제 이후 33년 만에 가능성?

靑 "하나의 예시…비상 시 모든 수단 동원할 수 있단 것"

野 "헌법 절차 무시 정치쇼…'경제계엄령' 발동 상황 아냐"

李, 석유 90만 배럴이 北 반출 등 가짜뉴스 엄정 대응 지시도

이재명 대통령이 31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뉴시스

이재명 대통령이 중동전쟁 장기화로 인한 에너지 수급 불안에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며 '긴급재정명령' 활용 가능성을 언급했다. 다만 청와대는 당장 긴급재정명령권을 발동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비상 상황에서 모든 정책 수단을 동원할 수 있고, 적극 행정을 주문하며 하나의 예시로 거론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은 31일 오전 청와대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중동 전쟁의 여파로 세계 경제에 비상등이 켜졌다"며 "긴급할 경우에는 헌법이 정한 긴급재정명령을 활용할 수도 있겠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대응책을 고민할 때 일반적으로 보면 기존의 관행이나 통상적 절차에 계속 의지하는 경향이 있는데 좀 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며 "필요하면 입법도 하고, 우리가 가진 권한이나 역량을 최대치로 발휘하도록 노력해야 된다. 기존 관행에 얽매일 필요도 없다"고 했다.


이어 "'법 때문에 안 되는데 어떡하냐'고 하지 말고, 현재의 제도나 법령의 제한을 극복할 방안을 연구해야 한다"며 "입법도 대체할 수 있는 긴급재정명령 제도가 헌법에 있지 않나"라고 재차 강조했다.


그러면서 "필요하면 법도 바꾸고 시행령도 바꾸고 지침도 바꿀 수 있다. 법적으로 허용되는 행위는 관행에서 벗어나더라도 할 수 있다"며 "뭔가 걸리는 게 있으면 각 부처에서 끌어안고 고민하지 말고 국무회의로 가져오거나 대통령실로 가져오라. 비상 입법을 해서라도 해결하겠다"고 했다.


긴급재정명령은 헌법 제76조에 규정된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다. '내우·외환·천재·지변 또는 중대한 재정·경제상의 위기' 등으로 긴급한 조치가 필요하고 국회 입법 절차를 기다릴 만한 여유가 없을 때 대통령이 법률적 효력을 지닌 명령을 내릴 수 있게 한 제도다.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정부가 결정하되, 사후에 국회 보고와 승인을 받아야 한다. 승인을 얻지 못하면 그 효력은 상실된다.


1993년 김영삼 전 대통령(YS)이 금융실명제를 실시하면서 발동한 것이 가장 최근 사례다. 1972년 박정희 정권 시절 '경제 안정과 성장에 관한 긴급명령'(8·3 경제조치)도 긴급명령권의 대표 사례지만, 민주화 이후엔 단 한 차례밖에 없었다.


이 대통령이 긴급재정명령권을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 대통령은 2022년 대선 후보 시절 방역조치 완화와 함께 '50조원 규모 긴급재정명령' 구상을 제시한 적이 있다.


다만 강유정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오후 춘추관 브리핑에서 "경제 위기나 비상 상황에서는 모든 정책 수단을 동원할 수 있다'라는 의미"라며 "(대통령 발언의) 앞뒤 맥락을 보면 관료들이 관행에 얽매이지 말고 해결을 위해 적극적이고 자율적인 대안을 내놓으란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런 도출된 대안을 통해서 특단의 대책을, 비상한 대응을 마련할 수 있으니 그 중 하나의 예시로 긴급재정명령권을 들었다고 할 수 있다"고 했다.


야권은 "정치쇼"라며 비판을 쏟아냈다. 최보윤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헌법 제76조가 규정한 긴급재정명령은 국회가 열려 있지 않거나 집회를 기다릴 여유조차 없는 극한 상황에서만 최소한으로 발동되는 최후의 수단"이라며 "위기 상황을 해결할 실질적 대안이 부재함을 자인하는 꼴"이라고 했다.


최 수석대변인은 "현재 국회는 상시 국회 체제로 운영되고 있으며, 긴급재정명령 발동 시에도 반드시 국회 보고와 승인을 거쳐야 하고 승인 없이는 효력을 유지할 수 없다"며 "이를 무시하고 먼저 비상 카드를 꺼낸 것은 헌법 절차를 무시한 정치적 쇼일 뿐"이라고 했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도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지금이 위기 상황이기는 하나, 국회의 소집을 기다릴 여유가 없을 때나 하는 초법적인 '경제계엄령'을 발동할 상황은 아니다"라며 "게다가 집권 여당이 다수당인데 국회를 건너뛰고 경제계엄령을 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이어 "1997년 IMF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 때도 쓰지 않은 긴급재정명령을 섣불리 시사해 국민과 경제를 불안하게 하지 말라"고 했다.


한편 이 대통령은 최근 논란이 되는 종량제 봉투 수급 문제와 관련해선 "국가 전체적으로 보면 재고도 충분하고 원료도 있다"며 "얼마든지 대응할 수 있는 일인데, 지엽적인 부분에 일부 문제들이 과장되고 있다"고 했다.


최근 온라인상에서 울산 석유비축기지에 보관돼 있던 원유 90만 배럴이 중국 등 제3국을 거쳐 북한으로 유입됐다는 의혹이 퍼지고 있는 것과 관련해선 "베트남이 90만 배럴을 사 간 것인데, 북한으로 갔다고 악의적 헛소문을 퍼뜨리더라"며 "신속하게 수사해 누가 그런 짓을 하는지 밝혀 다시는 이런 짓을 못 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부의 위기 대응 노력과 관련해 온라인에서 무분별하게 허위·가짜 정보들이 유포되고 있는데, 이 점에 대해서도 수사기관들이 엄정하고 신속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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