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양곡법 개정…현장 현실과 괴리감↑
지역특산주 면허, 혜택은 있지만 제약도 커
정부 지원 필요, 단기·장기 대책 요구 목소리
최근 쌀 공급 부족과 가격 급등 현상이 겹치면서 막걸리 산업 전반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일부 지역 쌀만 사용해야 하는 지역 막걸리 양조장은 아예 생산을 멈춘 채 존폐 기로에 몰렸다. 지역 특산물로 지역경제를 이끌어온 한 산업이 또 다시 생존 위기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2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난 5일 정부가 개정한 양곡관리법(양곡법)이 현장의 현실과 괴리를 드러내고 있다. 쌀 과잉 생산을 막겠다며 수급 억제에 초점을 맞췄지만, 정작 이상기후로 인한 작황 부진으로 전국적으로 쌀 부족 현상이 발생하고 있어서다.
개정된 양곡법의 핵심은 ▲벼 재배 면적 사전 조정 ▲쌀 이외 타 작물 재배 농가에 대한 재정 지원 ▲과잉 생산 발생 시 정부 의무 매입 기준 강화 등이다. 쌀 초과 생산으로 발생하는 시장 왜곡과 정부 재정 부담을 줄이겠다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최근 기후 악화로 생산량이 줄면서 일부 지역에서는 일반미 공급이 사실상 끊겼다. 경기도 북부의 파주 지역은 작황 부진으로 당초 목표치보다 수매량이 크게 줄었고, 이로 인해 지역 양조장에 대한 쌀 공급이 중단되면서 막걸리 등 다양한 산업에 직접적인 피해로 이어지고 있다.
막걸리에 쓰이는 쌀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정부가 비축미를 매입해 업체에 공급하는 가공용 쌀(나랏미), 다른 하나는 농민이 직접 재배한 일반미다. 가공용 쌀은 1㎏당 1000원대로 일반 막걸리 회사들이 주로 활용한다. 반면 일반미는 2700원 안팎으로 두 배 이상 비싸고 전통주 업체들이 사용한다.
일반 면허를 가진 업체들은 수입산이나 가공용 쌀을 마음대로 쓸 수 있다. 하지만 ‘지역특산주’ 면허 양조장은 법적으로 제한이 엄격하다. 가공용 쌀이나 수입산은 아예 불가하다. 대신 세금 감면(주세 50%)과 온라인 판매 허용 같은 혜택을 받는다.
‘지역특산주’ 면허는 농민 소득 증대를 위해 도입된 제도다. 예컨대 파주에서 면허를 받으면 파주산 쌀이나 인근 고양·인천·의정부산 원료만 쓸 수 있다. 사과, 포도 등 다른 재료 역시 해당 지역 것만 사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 때문에 지역특산주 제품은 가격대가 다소 높은 프리미엄 시장을 지향한다. 하지만 소비 위축이 이어지면서 제 값을 받기도 어렵다는 게 관계자의 전언이다.
최근 문제는 일반미 생산량이 줄면서 발생했다. 파주 농협은 지난해 기후 악화로 작황이 부진해 당초 목표치보다 약 20% 적게 수매했다. 이로 인해 올해 10월까지 일반미 공급을 중단한 상태다. 현재 경기도 전역에서는 일반미 품귀 현상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지역 양조장이 문을 닫는 황당한 첫 사례가 나타났다. 파주에서 막걸리 양조장을 운영하고 미음넷증류소 양조장은 최근 양조장 문을 닫았다. 오는 10월20일까지 일반미 부족으로 새로운 술 생산이 불가능해 졌다.
송충성 미음넷증류소 양조장 대표(53)는 “파주에서 재배한 쌀로 술을 빚어왔는데, 법을 지키려면 공장을 닫아야 한다”며 “현재 전라도·충청도 쌀이 남아있지만 쓰면 범법자가 된다. 수급 불균형 시 한시적으로나마 타 지역 쌀을 쓸 수 있게 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역특산주를 고집하는 이유는 온라인 판매에 있다. 원칙적으로 주류는 온라인으로 판매가 불가능하다. 전통주는 산업 보호 차원에서 우체국과 농협 등 특정 쇼핑몰에서만 구매할 수 있다. 그러나 전통주 판매 활성화를 위해 2017년 7월부터 일반 온라인몰도 판매를 허용했다.
‘전통주 등의 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제조장 소재지 관할 지역이나 인접 지역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주원료로 제조한 술은 지역특산주로 분류돼 온라인 판매가 가능하다. 주류부문 무형문화재 보유자나 식품명인이 면허를 받아 제조한 술(민속주) 등도 전통주에 해당한다.
일반적으로 전통주는 생산업체들의 규모가 영세하고 생산량이 적어 전국적인 유통망을 갖추기 어렵다. 이 때문에 지역축제는 해당 지역 전통주를 알릴 수 있는 주요 홍보수단으로 활용돼 왔다. 방문객이 특산물과 함께 지역 술을 맛보면서 자연스레 매출로 이어지는 구조다.
송 대표는 “현재 판매의 30~40%가 온라인에 의존하고 있다”며 “대형 막걸리 업체들은 다양한 채널도 확보하고 수출에도 속도를 내고 있지만, 영세한 막걸리 업체들은 유통망 확보나 마케팅·영업 능력이 부족해 대형마트나 편의점 입점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렵다”고 말했다.
업계는 정부에 현실적인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쌀 수급 불균형이 발생했을 때 한시적으로라도 다른 지역 쌀을 활용해 술을 빚을 수 있도록 관련 법을 완화하고, 장기적으로는 ‘일반미 기반 전통주 정책’에 현실적인 기술 개발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는 주장이다.
양조업계 관계자는 “일반미는 가격이 비싼 만큼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품질 경쟁력이 뒷받침돼야 한다”며 “일본 사케처럼 우수한 효모와 발효 기술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비싼 쌀을 써도 국내 시장은 물론 해외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갖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부가 가공용 쌀 지원을 꺼리는 이유가 세금 부담이라는 점은 이해하지만, 그렇다면 일반미로 술을 빚게 하는 대신 연구개발(R&D) 예산을 투입해 품질을 끌어올릴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며 “영세업체 단독으로는 기술 개발이 불가능한 만큼 정부 차원의 미생물 연구와 품질 향상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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