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당원들은 패배 의식 속에서 살고 싶지 않았다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5.08.27 07:07  수정 2025.08.27 07:07

변화의 희망을 준 것이 승리의 요인

억지 통합 대신 이해·존중 추구해야

소와 외양간 모두 잃는 상황 피해야

장동혁 국민의힘 신임 당대표가 지난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린 국민의힘 제6차 전당대회 결선에서 당기를 흔들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국민의힘 당 대표 결선에서 장동혁 대표에게 패배한 김문수 후보는 당초 당선이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혔었다. 그런데 결과는 장 대표의 승리였다. 선거일이 가까워질수록 장 대표 쪽으로 표심이 기우는 분위기가 뚜렷해졌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변이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김 후보와 그 지지자들의 충격이 컸을 듯하다.


우선 장 대표는 정치경력에서 김 후보와 비교하면 아주 일천(日淺)하다. 재선도 아니고 1.5선의 국회의원이다. 이에 비해 김 후보는 국회의원 3선, 경기도지사 2선,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장관급), 고용노동부 장관이라는 화려한 경력을 갖고 있다. 당연히 국민의 인지도에서도 큰 차이가 난다.

변화의 희망을 준 것이 승리의 요인

김 후보(이후 김 전 장관)는 경사노위 위원장, 고용노동부 장관 시절 국회 해당 상임위원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대단히 무례하고 험악한 융단폭격식 공격에 의연히 맞서는 기개를 보였다. 일제시대 국적(國籍) 논쟁에서 위축되지 않는 소신 답변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비상계엄 긴급현안질문에서 민주당 서영교 의원이 전 국무위원의 사과를 요구했을 때도 홀로 자리에 앉은 채 거부 소신을 지켰다.


김 전 장관은 6·3대선에 국민의힘 후보로 출마, 이재명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를 8.27%P 차로 압박해 가는 저력을 보였다. 윤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직후 치러진 선거에서 그 정부의 장관이었던 김 후보가 41.15%의 득표율을 기록한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이에 비해 장 대표의 정치경력은 21대, 22대 국회의원이 전부다. 게다가 21대 때는 보궐선거로 국회에 입성했다. 그래서 1.5선으로 불리는 것이다. 국회의원으로서도 국민의힘 사무총장, 원내수석 대변인, 최고위원을 지냈을 뿐이다. 초선 사무총장으로 눈길을 끌기는 했지만, 당직 경력이 그를 대표로 만들어줬다고 보기는 어렵다.


경험·경력·경륜에서 월등한 김 전 장관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변화’의 가능성을 더 자신 있게 보여줬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많은 당원은 극심한 좌절감·패배 의식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다. 그 요구에 (비록 말로써 이긴 하지만) 적극적으로 부응해 간 사람이 장 대표였다.


김 전 장관도 말을 잘하긴 했지만, 그는 대선 패배 후보다. 아무리 그가 희망을 말한다고 해도 그 한계를 뛰어넘기는 어렵다. 그가 당을 이끈다고 할 때 당원 전체가 패배 의식에 갇혀버릴 우려가 없지 않다.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패배 직후 국회의원직과 당 대표직을 장악해 민주당을 권위적으로 이끌어왔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다. 민주당은 압도적 다수 정당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 전 장관은 일단 뒤로 물러나 있을 일이었다. 당원들이 새로운 지도부를 뽑아, 패배를 잊고 다시 승리를 위해 전진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 대선 패장으로 해야 할 도리였다. 낙선에 대한 책임을 떠안아야 했다는 게 아니라 중책을 한 번 맡았으니 다른 사람에게 기회를 양보하는 마음을 가졌어야 했다는 뜻이다.


김 전 장관이 언약의 소중함을 간과한 듯한 인상을 준 것도 감표 요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그는 대선 후보 경선 때 ‘김문수’가 아니라 ‘김덕수’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한덕수 당시 국무총리와의 후보 단일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서 반드시 이뤄내겠다는 다짐이었다. 그러나 막상 후보가 되자 뒷걸음친다는 인상을 뚜렷하게 줬다.

억지 통합 대신 이해·존중 추구해야

김 전 장관은 너무 계산적인 모습을 노출하기도 했다. 그는 한동훈 전 대표 등 윤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섰던 세력을 ‘통합’이라는 명분으로 끌어안겠다고 했다. ‘한동훈’과 ‘전한길’ 가운데 누구를 공천하겠느냐는 질문에 즉각 ‘한동훈’이라고 했다. 반면 장 대표는 ‘전한길’을 선택했다. 찬탄 세력을 지지하는 당원도 물론 많다. 그러나 ‘반탄’을 외쳐온 김 전 장관이 일고의 망설임도 없이 한 전 대표 손을 들어 주는 것을 본 당원들의 마음은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통합’이란 그럴듯한 명제이지만 실현 가능성은 희박하다. 상호 이해와 협조 속에 공존하는 상태를 만드는 것이 최선이다. 그게 민주정치의 요체이기도 하다. 억지로 하나가 되게 하는 것은 민주적 방식이 아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상호 존중하는 데서 당의 존립과 발전의 길을 찾아야 한다.


이재명 정권은 국민의힘을 해산하거나(이건 불가능하겠지만 엄포 수단으로서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분열시켜 개헌을 이뤄내려고 가능한 모든 수단을 강구할 것이다. 개헌되면 이들의 권력분립 체제 파괴, 입법 농단, 사법 무력화 등 모든 반민주적 작태를 일괄적으로 정당화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을 게 뻔하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내란 세력 단죄’ ‘내란 정당 해산’ 따위의 위협을 가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당 분열을 획책할 개연성이 높다.


‘통합체제’로 가든 ‘단일대오 체제’로 가든 돌아설 사람은 돌아서고 지킬 사람은 지키게 마련이다. 김 전 장관이 대표가 된다고 해서 한 전 대표가 주장을 철회하고 조건 없이 협조할 리가 없지 않겠는가. 장 대표 체제가 되었다고 해서 찬탄 의원들 모두가 등을 돌린다고 생각하는 것도 비현실적이다. 문제는 개헌저지선 유지 여부이겠는데 비관적으로 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국민의힘 의원들이 자유민주주의 체제 수호의 의지로 뭉쳐서 싸워줄 것이라는 쪽에 희망을 걸고 싶다.


당을 단합시키는 힘은 당에 대한 충성심과 당원들의 지도부에 대한 신뢰에서 나온다. 장 대표는 당이 단일대오를 구축해 여당과 본격적 투쟁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밝혀왔다. “단일대오에 동참하지 않는 의원들은 당을 떠나라”라는 말도 했다. 주로 안철수·조경태 의원 등을 가리키는 말로 들리지만, 그들에게 동조하는 의원들도 없지 않을 것이다. 당내에 저항 세력을 늘리는 것은 바람직한 리더십이 아니다.

소와 외양간 모두 잃는 상황 피해야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동조했다가 당을 떠났던 의원들이 후에 대부분 복당했다. 이번에 찬탄 그룹을 형성했던 의원들도 당을 영영 떠날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을 것이다. ‘탄핵 동참’을 밀어내기의 명분이나 이유로 삼는 것은 소 잃고 외양간까지 잃는 격이 된다. 그것이야말로 민주당이 간절히 바라는 선물이다. 찬탄 의원들이 이성적·논리적으로 공감·동조할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내 이를 가지고 설득해야 한다. 뛰어난 설득 논리로 동조·동참자를 늘려가는 것이 바로 민주적 정치리더십의 정수다.


선거 때문에 뒤숭숭해진 당내 분위기를 얼마나 빨리 안정시키면서 당의 단합된 힘을 대여투쟁으로 돌릴 수 있는가에 ‘장동혁 호’의 성패가 달려 있다고 생각된다. 당내에서 소속 의원들을 비롯한 당원들은 ‘내 집’ 같은 평안함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과객처럼 이 눈치 저 눈치 살피는 사람들로 단일대오가 형성될 수 있겠는가.


옛날에 어떤 사람이 지방관이 되어 고향을 떠나게 됐다. 아침에 길을 나서는데 친구가 와서 축하와 함께 당부의 말을 했다.


“벼슬살이해 가는 데엔 무엇보다 잊지 않아야 할 것이 ‘인내’ 두 글자임을 명심하게.”


“지당한 말씀이네.”


그렇게 작별하고 대문을 나서는데 친구가 다시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단단히 명심해 가는가? 벼슬살이를 하면서 무엇보다 잊지 않아야 할 것이 인내 두 글자라는 말일세. 내 말을 알겠는가?”


“알다마다. 잊지 않음세.”


그 친구는 동구 밖까지 따라와서 또 손을 잡으면서 당부했다.


“벼슬살이 해 가는 덴 무엇보다도 잊지 않아야 할 것이 인내 두 글자라는 걸 잊어선 안 되네. 내 말을 잘 알겠지?”


그러자 신임 관리는 홱 돌아서면서 화를 벌컥 냈다.


“인내 인내, 도대체 나한테 몇 번을 더해야 속이 시원하겠다는 것인가?”


친구가 한숨을 쉬며 탄식했다.


“그것 봐. 명심한다고 했지만 ‘인내’가 얼마나 어려운지 지금에야 알았을 걸세. 내가 인내 소리 겨우 세 번 했는데 자넨 이걸 인내하지 못한 것 아닌가.”(이주홍, 중국풍류골계담)


오랜 옛날얘기지만 그 속에서도 진리를 찾을 줄 아는 것이 리더의 리더다움이다.

글/ 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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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재에서 파면된 내란수괴이고 북한과 전쟁까지 하려했던 반란수괴임에도 반란수괴를 그리워하는 정치인들 무리가 있고 그걸 미화하는 언론이 있다.  북한 기관지인가?
    2025.08.27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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