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만큼 뜨겁다…‘덕심’ 증명하는 굿즈 수집 [아트굿즈①]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5.10.03 09:37  수정 2025.10.03 09:37

홍보용에 그치던 굿즈, 공연 산업 핵심 수익원으로

"공연예술, 굿즈로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확장되는 시대"

공연예술 시장에서 ‘굿즈’의 존재감이 심상치 않다. 과거 프로그램북이나 기념 티셔츠 수준에 머물던 MD 상품은 이제 공연의 세계관을 확장하고, 관객의 경험을 일상으로 연장하는 핵심 요소로 자리 잡았다. 이런 변화의 중심에는 팬덤 문화의 영향과 MZ세대의 소비 특성이 맞물려 있다.


올해 8월 국립정동극장이 선보인 '쇼맨_어느 독재자의 네 번째 대역배우'의 NFC 키링 굿즈판매 현장. 출시 당일 오픈런 관객들이 대거 몰렸고, 해당 굿즈는 순식간에 모두 완판됐다. ⓒ국립정동극장

굿즈 문화는 1990년대 아이돌 팬덤에서 시작됐다. 팬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아티스트의 정체성이 담긴 상품을 소유하고 소비함으로써 소속감을 확인하고 팬심을 증명했다. 포토카드, 응원봉, 앨범 등은 단순한 상품을 넘어 팬덤의 유대감을 형성하고 그들의 문화를 상징하는 매개체였다.


이 문화가 공연계로 본격적으로 유입된 것은 2010년대 중반 이후, 뮤지컬 시장의 급성장과 궤를 같이한다. 특히 충성도 높은 팬덤을 기반으로 한 재관람 문화가 정착되면서, 관객들은 공연 보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작품 일부를 소장하려는 욕구를 드러냈다. 제작사들은 이러한 수요에 발맞춰 작품의 서사와 캐릭터, 상징적인 소품이나 대사를 활용한 다채로운 굿즈를 기획, 제작하며 시장의 판을 키웠다.


초기에는 배지, 마그넷, 키링 등 수집이 용이한 품목이 주를 이뤘다. 이후 시장은 급속도로 진화하여 대본집, 악보집, 미공개 사진을 담은 포토북, 향수, 주얼리, 심지어는 극 중 캐릭터가 사용하던 소품을 재현한 굿즈까지 그 범위를 무한히 확장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기존 아이돌 팬덤 굿즈와는 차별화된, 공연 예술의 특수성을 담아낸 ‘아트굿즈’ 시장의 본격적인 형성을 의미했다. 아트굿즈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을 견인한 것 역시 단연 MZ세대다. 이들은 이전 세대와는 확연히 다른 소비 패턴을 보인다. 단순히 상품의 기능적 가치만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상품에 담긴 의미와 스토리를 소비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과 취향을 드러낸다. 이를 ‘가치 소비’ ‘미닝아웃’ 트렌드라고 칭한다.


아트 굿즈는 이러한 MZ세대의 소비 특성에 정확히 부합한다. 잘 만들어진 굿즈는 단순한 기념품이 아니라, 작품에 대한 관객의 애정과 깊은 이해를 증명하는 ‘인증서’와 같다. 이는 타인에게 자신의 취향을 전시하고, 같은 취향을 가진 이들과 연대감을 형성하는 과정이다.


소유를 통해 경험을 영속화하려는 욕구 또한 굿즈 소비의 주요 동기다. 공연은 막이 내리면 사라지는 휘발성 강한 예술이다. 관객들은 공연장에서 느꼈던 강렬한 감동과 여운을 굿즈를 통해 일상에서도 붙잡고 싶어 한다. 책상 위에 놓인 작은 소품 하나, 다이어리에 붙인 스티커 한 장이 그날의 기억을 소환하고, 작품의 세계관 속에 머무는 듯한 만족감을 제공하는 것이다.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에 따르면 굿즈 산업 규모는 이미 2018년 1조원을 넘어섰다. 한 뮤지컬 제작사 관계자에 따르면 일부 대형 뮤지컬의 경우 굿즈 매출이 전체 티켓 매출의 15~20%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굿즈가 더 이상 부가적인 수입원이 아닌, 공연 산업의 중요한 한 축으로 성장했음을 증명하는 수치다.


한 공연 관계자는 “과거에 MD 판매는 총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극히 적어서, 수익보다 홍보용에 그치는 수준이었다. 사실상 특정 배우가 나올 때 팬덤으로 팔리는 경우가 있어 인건비에 비해 부가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던 셈”이라면서 “그런데 현재는 공연 콘텐츠 규모가 성장하면서 굿즈 역시 중요한 수익 구조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고 봐ᅟᅵᆻ다.


굿즈가 ‘기념품’의 개념을 넘어 작품의 서사를 확장하는 ‘2차 창작물’ 혹은 ‘스핀오프(Spin-off)’의 영역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제작사들은 작품 개발 단계부터 MD 기획을 함께 고민하며, 굿즈 안에 본 공연에서는 다 보여주지 못한 비하인드 스토리나 캐릭터의 숨겨진 설정을 녹여낸다.


예를 들어, 극 중 인물들이 주고받았던 편지를 그대로 상품화하거나, 주인공이 쓰던 일기장을 노트로 제작하기도 한다. 관객들은 이 굿즈를 통해 작품의 세계관을 더욱 입체적으로 이해하고 깊이 몰입하게 된다. 최근에는 유명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조향사 등과의 협업을 통해 굿즈 자체의 예술적 가치를 높이는 시도도 활발하다. 이는 굿즈가 단순히 작품의 인기에 기댄 파생 상품이 아니라, 그 자체로 독립적인 가치를 지닌 하나의 콘텐츠로 인정받고 있음을 의미한다.


한 공연 제작사 관계자는 “현재의 아트굿즈 열풍은 아이돌 팬덤 문화의 확산, 자신의 가치를 소비로 증명하는 MZ세대의 등장, 그리고 경험을 소유하려는 인간의 본질적 욕구가 결합한 복합적인 문화 현상”이라며 “굿즈 판매의 열기는 이제 공연의 성공을 가늠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척도다. 공연예술이 무대 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관객의 일상 속에서 굿즈를 통해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확장되는 새로운 시대”라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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