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감에 최태원·정의선 등 기업인 줄소환…재계 "정치적 쇼 우려"

고수정 기자 (ko0726@dailian.co.kr)

입력 2025.10.10 11:57  수정 2025.10.10 11:57

崔, APEC CEO 서밋 의장인데 행사일에 출석 요구 받아

美 관세 리스크 등 각종 불확실성 직면한 상황서 총수 소환

"정치적 목적 앞서는 국감, 국가 경쟁력에 도움 되지 않아"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2023년 11월 28일 오후(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외곽 팔레 데 콩그레에서 열리는 제173차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에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오는 13일부터 시작되는 올해 국정감사에 200명에 달하는 국내 주요 기업인이 증인으로 소환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재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경기 침체, 미국 관세 리스크, '노란봉투법' 등 각종 불확실성에 직면한 상황에서 정치권이 기업 경영에 부담을 주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10일 재계와 정치권에 따르면, 현재까지 국정감사 증인으로 파악된 약 370명이며, 이 중 절반 이상이 기업인이다. 일각에서는 무분별한 기업인 출석 요구를 자제하자는 분위기가 있었지만, 실제로는 역대 최대 규모의 소환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현재까지 채택된 기업인만 200명에 근접해 역대 최다 규모인 지난해(159명)를 이미 넘어섰다. 이는 2년 전인 2023년(95명)과 비교해 두 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아직 17개 상임위원회의 증인·참고인 명단이 완전히 확정되지 않은 만큼, 최종적으로는 기업인 증인이 200명을 훌쩍 넘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번 국감의 기업인 핵심 증인으로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꼽힌다. 최 회장은 계열사 부당 지원 관련 실태 점검을 이유로 정무위원회 증인으로 채택됐으며, 출석일은 28일로 예정됐다.


문제는 이날이 대한상공회의소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공식 부대행사로 주관하는 APEC CEO 서밋 개막일이라는 점이다. 대한상의 회장인 최 회장이 해당 행사의 의장을 맡고 있다. APEC CEO 서밋은 아시아·태평양 지역 경제 분야 최대 행사다.


특히 최 회장이 이끌고 있는 SK그룹은 같은 날 APEC CEO 서밋 부대행사인 '퓨처테크포럼 AI'를 주관하며, 최 회장은 한국 AI 생태계 조성과 비전을 주제로 기조연설을 할 계획이었다. 이 때문에 "국가적 행사를 앞두고 기업인을 국감장에 세우는 것이 타당하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협력사인 이수기업의 노동자 집회 및 책임경영 문제로 행정안전위원회에,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은 중국 알리바바 합작법인의 소비자 정보보호 방안 설명으로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각각 출석을 요구받았다. 김동명 LG에너지솔루션 대표는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로 인한 정부 전산망 마비 사태와 관련해 국감장에 서게 됐다.


이밖에 국토교통위원회는 이해욱 DL그룹 회장과 허윤홍 GS건설 대표 등 10대 건설사 중 8개사 대표를 불렀다.


해킹과 개인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한 기업 증인들도 다수 채택됐다. 김영섭 KT 대표는 정무위와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출석 요구를 받았고, 유영상 SK텔레콤 대표와 홍범식 LG유플러스 대표도 과방위 증인으로 채택됐다. 조좌진 롯데카드 대표, 롯데카드 대주주인 MBK파트너스 김병주 회장도 정무위 출석 요구를 받았다.


국회가 기업인을 출석시켜놓고 별다른 질의 없이 늦은 시간까지 세워두는 관행이 반복돼 왔다는 점에서, 이번 마구잡이식 기업인 증인 소환은 일종의 '정치적 쇼'라는 비판이 재차 제기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지금은 기업들이 생존을 위해 하루하루 버티는 시기"라며 "정책 개선을 위한 건설적 논의보다는 정치적 목적이 앞서는 국감이라면 이는 기업은 물론 국가 경쟁력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국정감사가 기업의 책임을 묻는 자리가 아니라 경제 위기 속에서도 혁신과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기업의 현실을 이해하고 지원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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